숨죽이면서 보게 되는 영화였다. 불안한 세 사람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는 천천히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청춘들이 겪는 불안, 우울, 고통 등 숨기고 싶은 감정들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삶에서 마주한 방황은 결국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만, 다시 각자만의 방식으로 삶을 찾아가는 과정과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아릴듯한 추위의 중국 연길에서 만난 세 사람이 있다. 그곳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나나’, 이모가 운영하는 식당 일을 도와주는 그녀의 친구 ‘샤오’, 친구의 결혼식 차 연길에 방문한 ‘하오펑’이 그 주인공들이다. 하오펑은 나나가 가이드를 하는 투어에 함께 하며 그녀를 처음 만난다. 나나는 여행 중 휴대폰을 잃어버린 하오펑에게 샤오를 소개해 주며 세 사람은 부쩍 가까워진다. 그렇게 일주일 간 함께 한 그들은 짧은 만남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얼음처럼 오랫동안 굳어진 삶
세 사람의 삶은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단하게 언 얼음처럼 삶도 굳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나’는 과거 유망한 피겨 스케이터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고 만다. 고향을 떠나 연길로 온 그녀는 부모님, 친구들과 왕래도 하지 않으며 가이드로서 생계를 유지한다. ‘샤오’는 미래를 위해 목표 의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사는 인물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없었던 그는 이모의 식당 일을 도와주며 주어진 현실에 안주한 채 살아간다. ‘하오펑’은 부모님의 압박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금융권에 종사하게 되지만 번듯한 삶과 달리 그 이면은 그렇지 않았다.
세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잊은 채 그저 현실에 발이 묶여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오랜 세월 동안 당연시 여긴 지금의 삶은 성장하는 방법을 까먹게 만들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기도 하였다.
또한 세 사람의 삶은 청춘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이로 인한 방황을 보여주었다. 한 꿈을 향해 달려갔다가 예기치 못한 좌절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삶, 뚜렷한 꿈이 없어서 원하는 미래를 찾지 못한 삶, 주변의 기대 때문에 원치 않은 것을 해 나가는 삶 등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물이 얼어서 얼음으로 되면 움직이지 않듯이 흘러가던 삶도 정체되고 만다.
흘러가는 물처럼 바꿀 수 있는 삶
나나, 샤오, 하오펑은 꽁꽁 언 삶을 어떻게 녹여나갔을까. 이는 세 사람이 함께 하였기에 가능했다. 위태로운 삼각관계는 불안정하게 보였지만 이는 서로가 새로운 진심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나나와 하오펑은 내면에 깊숙한 상처가 존재했다. 두 사람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면서 서로가 가진 내면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어루만진다. 서로 다른 아픔이지만 아픔을 가진 사람만이 그 감정을 알듯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슬픔을 이해하고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나를 좋아하던 샤오는 나나와 하오펑의 관계를 알아차린 뒤 복잡한 심경에 빠진다.
그리고 하오펑과 샤오는 자신의 삶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살아온 하오펑은 나나와 샤오를 만나면서 잠깐의 일탈을 한다. 클럽에 가고 술을 진탕 마시며 마음껏 취한다. 서점에서 몰래 책을 훔치려 하고, 그토록 가고 싶던 백두산에도 간다. 그저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며 자유를 느껴본다.
그런 하오펑에게 샤오는 말했다. “꼭 변해야 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사실 이 말은 샤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오펑과 달리 누군가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 산 그였지만 평생을 연길에 살면서 새로움을 찾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를 경험한 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자신의 길을 걸어나간다. 이전보다 달라진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간다. 나나는 오랜만에 가족과 전화를 하고, 숨겨 놓았던 스케이트 화를 다시 꺼내며 이전의 아픔을 놓아준다. 샤오는 큰 결심을 한 듯 오토바이를 타고 연길을 떠나고, 하오펑은 계속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놓은 채 떠난다. 이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암시하는 바이다.
얼어붙었던 그들의 삶이 만남을 통해서 녹아내리며 그 속을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오랫동안 굳어진 삶에 낙담하지 말자. 강력한 내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그 삶을 부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