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하게 생긴 물체.' 괴물의 사전적 정의는 넓다. 그래서인지 별의별 게 괴물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사람들은 용이나 인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상 속 동물은 물론, 이야기 속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온갖 기묘한 존재들을 통틀어 괴물로 일컫곤 했다. 시간이 흘러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곳곳에 cctv가 즐비한 2025년 한국에서 괴물은 낯선 존재다. 오히려 이제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지칭할 때 괴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괴물이 자취를 감춘 세상에, 손창은(Zoe) 작가는 이들을 다시 불러 오는 사람이다. 그림책 작업을 위해 전설 속 동물을 찾아보다가 중국의 고서 『산해경』에 매료되었다는 그는 동양의 신화와 전설 속 동물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되살리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파주 헤이리마을 '갤러리 그안'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 <조용한 괴물들展>은 '휴매니멀', '신화 속 상상동물들', '몽룡'까지 그의 몇몇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작업물들을 한데 모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상상의 존재들을 자신만의 해석을 거쳐 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작업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모습의 상상동물들이 반긴다. 인형처럼 패브릭으로 만든 작품부터 네모난 액자 안에 넣어 사진처럼 연출한 작품도 있고, 나뭇가지와 함께 조합해 마치 리스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다. 익숙한 동물도 그렇지 않은 동물도 있는데 이들은 서양 매체가 주로 보여주는 상상동물의 이미지와 달리 정적이고 차분하다. '조용한 괴물들'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조용하게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작가가 표현한 상상동물로는 우선 기린이 있다. 옛날 동양에서 기린이라 하면 거북, 봉황, 용과 함께 전설 속 신령한 네 동물 중 하나로, 사슴과 말을 섞은 듯한 생김새에 날개가 달렸다고 전해진다.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길한 동물이었던 기린을 작가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재앙을 막는다는 해태, 여우 같은 얼굴에 날개가 달린 폐폐, 온갖 쇠붙이를 먹어치우지만 화재를 예방해 준다고도 알려진 불가살이, 사람을 속이고 홀린다는 구미호도 있다. 꼭 길한 동물만 있는 것도 아닌데 손창은 작가가 작업한 상상 속 동물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 상관없이 모두 정겹게 다가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정겨움의 이유는 소재에서 찾을 수 있다. 패브릭 작업을 한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느질로 마감한 데다가 안에는 솜이 들어 있어 푹신푹신하다. 관절 부분에는 단추를 달고 눈코입도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표현해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있다. 나무와 함께 조합된 작품의 경우 실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무라는 소재가 주는 특유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이렇게 부드럽고 푹신한 육체를 얻어 우리 앞에 나타난 괴물들은 더 이상 무섭거나 낯설지 않다.
친근해 보이는 상상 속 동물들을 감상하다 건너편 벽으로 시선을 옮기면 사뭇 다른 결의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휴매니멀 시리즈'로, 동물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존재들을 클레이와 패브릭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앞선 작품의 상상동물들이 인간과 온전히 구분되는 동물의 영역, 말하자면 자연에 머물렀다면 휴매니멀은 인간의 영역에 발을 걸친 형태다. 인간이기에는 너무나 동물 같고, 동물이라기엔 너무나 인간 같은 이들은 아무데도 속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안겨준다.
그래서일까 이 휴매니멀들은 자유롭지 못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캔버스를 긁거나 뜯어낸 듯한 거친 바탕 위에 자리하는데, 어두운 색에 거친 캔버스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고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대부분 여러 가닥의 그물이나 실, 끈 같은 것들이 몸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중 뿔과 네 발, 꼬리를 갖고 있지만 사람의 얼굴을 가진 휴매니멀을 표현한 작품은 제목부터 '덫'이다. 예부터 사람에게 포획당하는 이야기가 많았던 인어를 묘사한 작품 제목은 '박제된 죽음'이다. 자연의 일부를 그대로 떼어 가져온 것 같던 '신화 속 상상동물들' 시리즈와 달리 이 휴매니멀들은 억지로 이곳에 잡혀와 붙들려 있는 것 같다.
포획되고 구속된 듯한 몸과 대조적인 것은 하얀 클레이로 표현된 얼굴이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어 평온해 보이는 희고 깨끗한 얼굴은 동물의 형상을 한 몸과 대비되며 작품에 개성을 더한다. '휴매니멀 시리즈'를 감상하다 보면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데 이 생각이 좀 더 확장되는 작품이 있다. 휴매니멀 시리즈 안에서도 유독 결이 달라 눈에 띄는 작품, '영혼, 혹은 심장을 채집한 목걸이'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이 작품은 전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이면서 시선을 한눈에 끈다. 캔버스 위에는 동물이 아니라 눈을 감은 얼굴과 손 하나가 두드러져 있을 뿐이다. 괴물로 여겨지는 상상동물로 가득한 전시장에서 이 작품의 존재 의미를 묻다가, 언제부터 인간은 동물이 아니었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인간과 동물을 가장 엄격하게 구분 지으려 하는 것은 인간일 테다. 그렇다면 수많은 상상 속 동물들 역시 결국에는 인간의 편의에 따라 정의되고 묘사되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인간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기준으로 이들을 판단해 왔지만, 정작 이 '괴물'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또 어떤 이야기를 품은 존재인지 고민해볼 기회는 없었던 셈이다.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단편애니메이션 <숨바꼭질>에서는 상상동물들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신화 속 상상동물'의 파생 프로젝트 '몽룡'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에는 소녀 노아가 우리 옛이야기 속 상상동물인 구미호, 해태, 기린, 용, 불가살이를 만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노아는 처음엔 이 낯선 동물들을 두려워하지만, 곧 이들이 사람들에게 쫓겨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이들은 누구보다 수줍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는 것이다.
한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세를 불려나갔을 괴물들은 이제 인터넷을 기반으로 퍼져나가는 더 자극적인 괴담에 밀려 조용히 잠들어 있는 신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사람들의 기억에 붙어 사는 이들은 그들을 말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면 사라져버리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계속 진행 중인 '몽룡 프로젝트'는 우리의 오래된 괴물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제는 위협도 유희도 되지 못하는 상상 속 동물들에게 다시 몸을 주고 움직임을 부여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몽룡 프로젝트로 개발된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과 굿즈로도 제작될 계획이다. 유니콘이나 케르베로스나 같은 서양의 상상 속 동물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활발하게 만들어지듯, 우리의 상상 속 동물들도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손창은 작가만의 시선이 담겨 친근하게 다시 태어난 괴물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