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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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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번 주는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아요.”

 

최근 H가 내게 보내준 필담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입시용 소설을 가르치고 있었고, 서로 수업 내용을 적기 전 필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녀의 내용은 이랬다. 마음이 불안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이후 보내준 소설은 이전에 그녀가 내게 보내준 작품보다 완성도가 떨어져 있었다. 최대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로선 입시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고, 인간적인 마음으로서는 심심한 위로를 했다. H와 다른 결이겠지만 나 역시 편치 않은 마음이 있었다. 왜 입시용 글을 배우고 가르쳐야만 하는가, 라는 과외 선생으로선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의문.

 

 

 

싫다면, 최대한 끝까지 싫어해보세요


 

몇 년 동안 10대와 20대 입시생, 그리고 30대와 40대 소설과 시를 가르치면서 재차 각인된 것은 입시를 위한 글과 쓰고 싶은 글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한 괴리감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로 산문을 제출하고, 여러 대회에서 글을 써 상을 받았으니까. 그럴 때면 이 대회에서, 혹은 이 대학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글을 꾸려내야 했다. 나인 척하는 비슷한 자아를 꺼내 만드는 이야기. 이로 인해 본질적인 나와의 거리감. 그래서인가, 학생들이 이러한 걱정을 토로할 때면 두 가지를 다 잡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혼란스러워하던 그때를 닮은 것 같기도 해서.

 

이에 비롯해 나의 경우는 그들에게 두 가지의 이야기를 제안한다. 하나는 마음 속 ‘나’를 놓지 않기, 하나는 입시용 글을 계속 꾸려나가기.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차후에 쓸 수 있으니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데 차곡차곡 파일을 쌓아두기. 그러면서도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쓰기 위해서 다른 집단의 글 스타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초에 등단 제도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인스타그램이나 독립 출판 등으로 작가가 되는 길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이전에는 글을 쓰고 작가가 되려면 공모전이나 출판사 등에 투고하고 신문사에 발표될 정도로 큰 의미인 ‘등단’이란 것을 해 작가 타이틀을 얻어야 했다. 등단이라는 언어 자체는 평지보다 높은 단상에 오른다는 의미인데, 그렇게나 구분짓고서도, 심지어 그렇게나 노력해 등단하고서도 수상하는 데선 부끄러워하고 부족한 티를 내는 게 한때 트렌드였다고도 한다. 독창적인 자신만의 생각을 꾸려낸 작품 앞에서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니, 개인적으로는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써낸 글도 트렌드를 무의식으로 따르게 될까 하는 불안과 함께.


비슷한 의미로 글을 원하는 대로 쓰기 위해 틀이 깊이 다져진 입시용 글을 쓰는 데에 이어진 고민에 관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나도 이해되는 것이라고. 그럴 땐 두 가지의 글을 둘 다 적어보세요, 라고. 틀에 박힌 걸 싫어할 수밖에 없으니까, 최대한 끝까지 싫어해보세요. 그 감정을 억누른다면 입시가 끝나고 나선 오히려 제 글을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리고끝까지 싫어해본 사람만이 그 감정에 대해 알고 쓸 수 있어요.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오히려 글이 써지지 않을 경우엔 마음에 대해 이런 서두를 꺼냈다.

 

’저는 말이죠, 자기 전에 꼭 침대에 누운 채 방문에 붙인 달력을 오랫동안 보아요.‘

 

요지는 이거였다. 불안한 마음은 내 무의식을 의식이 오랫동안 들춘 것일 뿐이고, 정작 나는 내 집에, 방에, 지금 이 시간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라고. 당장의 불안함은 최대한 감정을 곱씹어 깊어지더라도, 없는 것, 지나간 것을 불안해하지 말라고.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불안 덜기


 

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사랑한다. 그것이 인간성이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불완전하기에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그 사이에서 비집고 나오는 생각과 마음이 새로운 감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입시로 허덕이지 않더라도 현재의 삶을 살기 벅차다면, 그 삶과 진짜 나의 삶을 분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쉬었는데 힘들다면, 아주 오랫동안 힘들었기에 고작 하루로 평안해지기 어려운 탓일 수도 있다.

 

나는 내 과외 학생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으로서 해주어야 할 말과, 비슷한 생의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줄 것이라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힘들어할 땐 나도 이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속이 시원하게 말하기도 한다. 취미로 글을 배우는 학생이 스트레스를 받을 땐 글은 즐거워야 하니 잠시 휴식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빼먹지 않는 것은,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즐겁게 해낼 것‘, ’그리고 그 노력을 스스로 헛되다 생각하지 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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