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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024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호평을 받은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는 역사적인 사건과 서사를 통해 전쟁의 본질을 묻는다. 정치와 전쟁의 복잡성을 두 소년의 놀이와 성장을 통해 풀어내며, 1960년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현대 사회가 직면한 폭력의 문제를 예리하게 조명한다. 이 연극은 고전 전쟁 서사와의 공명을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2025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첨단 기술 전쟁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비인간화되어가는 현대전의 양상과 전쟁이 초래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통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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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놀이가 전쟁이 될 때


 

연극은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두 보이스카우트 에이스와 그레스호퍼(이하, 홉)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대통령 린든 B. 존슨이나 신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소년들의 상상에서 시작해, 정치와 사회적 변화, 남성성, 성장의 아픔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전쟁과 애국심,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상실감은 타이어 뒤에 숨거나 놀이로 위장되어 드러난다. 순수한 우정과 미묘한 경쟁, 시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장난스럽고도 예민하게 그려지며, 개인의 삶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의 혼란을 포착한다.


무대 연출은 미니멀리즘과 창의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낡은 트럭 타이어 하나가 유일한 소품이지만, 이는 오히려 연극의 강점이 된다. 두 배우는 뛰어난 신체 연기와 상상력으로 타이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이는 때로는 은신처가, 때로는 전투기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속에 무한한 세계를 펼친다. 이러한 극적 미니멀리즘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더욱 깊은 몰입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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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는 여러 층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군사 훈련의 장애물 코스에서 체력과 인내심을 시험하는 도구로서, 두 소년이 타이어를 뛰어넘고 기어들어가며 균형을 잡는 행위는 군사 훈련의 모방이자 전쟁에 대한 그들의 순진한 동경을 보여준다.


또한 타이어는 전쟁의 기계적 속성을 상징한다. 군사 차량의 부품이 놀이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은 전쟁의 잔혹한 현실이 어떻게 놀이로 미화되고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소년들이 타이어로 전투기나 탱크를 상상하는 장면은 전쟁의 폭력성이 어떻게 무해한 놀이로 포장되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흙투성이가 된 무릎과 셔츠, 체크무늬 스카프, 낡은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비틀즈의 노래, 주머니 속 구슬과 양철 병뚜껑, 옷깃에 묻은 풀잎 자국까지—이 섬세한 디테일들이 소년들의 순수하고 활기 넘치는 세계를 생생하게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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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비틀즈의 음악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1960년대 비틀즈는 'Revolution'과 'All You Need Is Love' 등의 곡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소박한 하모니카 선율은 전쟁의 폭력성과 대비되는 평화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하모니카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자주 휴대하던 악기이기도 했다. 전투와 전투 사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주하던 하모니카 소리는 전쟁의 비인간성 속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인간성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극의 하모니카 연주는 전쟁의 비극성을 한층 더 부각시키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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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두 명의 여성 연기자만이 오른다. 이는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구성되고 수행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주디 버틀러에 따르면 젠더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닌 반복적 수행을 통해 구성되는 사회적 구조물이다.

 

연극에서 두 소년이 보여주는 전쟁 놀이는 '군인다움'과 '남성다움'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과정이다. 타이어를 이용한 군사 훈련의 재현과 전투 놀이의 반복은 군사화된 남성성을 체화하는 수행적 행위다. 이는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적 남성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수행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학습된' 것임을 작품이 효과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소년들은 전쟁 영화, 뉴스,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접한 '군인다움'의 모델을 모방하고 반복하며, 이를 통해 특정한 형태의 남성성을 구축해간다.


그러나 작품은 동시에 이러한 군사화된 남성성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폭로한다. 순수한 놀이에서 시작된 전쟁 수행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젠더 수행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권력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버틀러의 이론이 지적하듯, 이러한 젠더 수행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사회적 규범과 권력 관계에 의해 강제되는 측면이 크다. 연극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이러한 강제된, 때로는 파괴적인 남성성의 수행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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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서사 중에서도 <소년에게서 온 편지>가 특별한 이유


 

<소년에게서 온 편지>는 전쟁 서사의 변천과 계보 속에서 현대적 시각으로 전쟁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특히 소년들의 '전쟁 놀이'와 실제 전쟁의 대비를 통해, 순수한 동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파괴적 현실이라는 전쟁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미디어 속 전쟁은 시대마다 주제와 시각, 기술적 구현 방식에서 뚜렷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초기 전쟁영화는 국가와 이념적 대의를 강조하며, 전쟁의 정당성과 영웅성을 부각했다. 여기서 전쟁은 집단적 헌신과 고귀한 희생,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관객들에게 애국적 감동을 전했다.


그러나 거듭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러한 양상은 급격히 변화한다. 전쟁의 참혹함, 인간성의 붕괴, 무의미한 죽음에 대한 반성적 시각이 전면에 부상하며, 반전주의적 경향이 주류가 된다. 미디어는 더 이상 영웅만을 조명하지 않고, 전쟁의 피해자와 비극, 도덕적 딜레마에 주목하게 된다.


최근의 전쟁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전쟁 그 자체와 인간 경험의 본질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도입, 다양한 시각과 리얼리즘의 심화는 전쟁의 현실을 더욱 입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장르를 넘어, 사회적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문화적 텍스트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수잔 손택은 이러한 변화가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본다. 초기 전쟁 서사가 영웅적 서사와 애국심을 강조했다면, 현대의 전쟁 서사는 피해자의 고통을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전쟁의 참상을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과 관련이 있으며, 동시에 관객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은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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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소년에게서 온 편지>는 돋보인다. 연극은 <서부전선 이상 없음>, <풀 메탈 재킷> 등 반전주의 작품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하여 의도적으로 기시감을 만든다. 이를 통해 맥락화를 시도하면서도, 전쟁을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하는 '고통의 스펙터클화'를 피하고 전쟁의 본질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선, <서부전선 이상 없음>에서는 어린 10대 친구들이 영웅이라는 꿈을 안고 입대하지만, 전쟁 속에서 모두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다는 설정을 가져온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 참호 속 병사들이 겪는 '전체 세대의 환멸과 상실'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국가나 명예, 이념이 어떻게 소년병들의 신념을 파괴하는지, 구조적 모순과 집단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1930년대와 2020년대에 각각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특히 영화의 첫 장면은 전사자들의 군복을 세탁하여 입대자들에게 다시 보급하는 1차 세계대전 독일의 현실을 보여주며 시작되는데, 연극에서는 홉이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을 회상하는 독백에서 이 장면을 언급하며 오마주한다.


또한, 연극은 <풀 메탈 재킷>의 '훈련소'와 '실전'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차용한다.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이 영화는 연극과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공유한다. '훈련소'와 '실전'이라는 두 시간선을 교차하며, 개인을 인간적으로 파괴하는 '시스템의 폭력'에 초점을 둔다. 신병들이 자아를 잃고 '살인 기계'로 변하는 과정을 냉소와 풍자로 해부한다.


연극에는 총 세 가지의 시간선이 존재한다. (1) 두 친구가 전쟁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 (2) 베트남 전쟁 (3) 홉의 독백이다. 극의 큰 흐름과는 관계없는 홉의 독백을 제외하면 (1)과 (2)가 남는다. (1)의 경우 대부분이 타이어 소품을 활용한 수영, 시가전 등 '전쟁 놀이'로, 이는 일종의 훈련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놀이가 실제 전쟁의 잔혹한 현실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드러낸다. 관객들은 인간성이 해체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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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계, 반복되는 ‘승리’의 환상


 

연극은 1960년대 베트남전의 상처를 다루지만, 2025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세계와 놀랍도록 정확히 겹쳐진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전, 비국가 행위자들의 부상,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폭력의 순환 속에서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성의 상실과 윤리적 딜레마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두 소년의 순수한 놀이가 전쟁의 폭력으로 변질되는 과정이 보여주듯, 오늘날의 전쟁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비인간화되고 있다. 드론, 인공지능, 로봇, 정밀유도무기, 사이버전, 위성·정보전 등이 전장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드론이 러시아군 손실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드론 스웜(군집), 자율작전, AI 기반 지휘통제가 실전에서 활발히 활용됐다.


변화한 전쟁의 양상은 화면 속 점으로 표시되는 목표물이 실제 인간의 생명이라는 사실은 희미해지고, 전쟁은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실은 전쟁의 잔혹성을 은폐하고, 우리를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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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은 실제적인 공포다. 2020년대는 냉전 이후 가장 많은 무력 분쟁이 발생한 시기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국가 간 무력 분쟁은 59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으며, 2022~2024년은 냉전 이후 가장 폭력적인 3년으로 기록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인도-파키스탄 국경 충돌, 수단 내전에서만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쟁은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적,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곡물·에너지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전쟁 지역은 5년 내 GDP가 평균 30% 감소하는 충격을 받았다. 2025년 현재 3억 50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며, 특히 수단, 중동, 우크라이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규모 난민, 식량·보건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연극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희생되는 개인의 삶,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폭력,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분쟁의 순환은 과연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 전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엄성, 평화로운 일상,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까지도 희생해야 하는가? 2025년,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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