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신체를 통해 순간의 말을 한다는 것, 무용가 이선아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용가 겸 아티스트 이선아입니다.
-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무용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네요. 하하.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춤과 무대에 관심을 가졌어요. 지방에서 자라다 보니 순수 예술로서의 무용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고 무대에 서는 걸 즐겼던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늘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이 담겨 있을 정도로 무대를 좋아했거든요.
이후 서울에 와서 대학 생활을 하며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대중문화 쪽 춤에 관심을 갖고 배우러 다녔지만 우연한 여러 계기로 순수 예술 무용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예술의 영역에서의 무용을 접하고 매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순수 예술 무용은 단순히 신체를 갖고 춤을 춘다는 행위를 넘어서서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말 ‘표현’하는 행위잖아요. 그렇게 신체를 통해 ‘말’을 한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즉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무척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했지만, ‘무용’은 오히려 조금 늦게 접하고 시작한 케이스였던 같아요.
전시 [농사 짓는 몸_듣는 산책]이 탄생하게 된 시간들
- 전시 [농사 짓는 몸_듣는 산책]이 개막 했습니다. 벌써 두 번째 개막인데, 처음 해당 전시를 기획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때 농촌이 있는 지방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으셨다보니 농사 풍경은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긴 했지만 저에게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었죠. 이후 서울에서 계속 지내다가 약 3~4년 전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농사짓는 풍경을 다시금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어요.
제가 그동안 계속 다뤄온 작업의 주제는 ‘감각’이었어요. 신체가 어떤 감각을 경험하면, 그 기억이 몸에 남아 있다가 특정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그 과정을 늘 흥미롭게 바라봐왔어요. 이 관심은 일상생활 속 다양한 경험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홍동에서 지낸 후에는 ‘농사’라는 일상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된 뒤에는 자연스럽게 농부의 노동과도 연결이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농부님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말투가 신체적인 관점에서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농사에 관한 책은 많지만, 실제 농사 기술은 대부분 몸으로, 그리고 말로 전해진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죠. 예를 들어, 선생님이 “씨앗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간격으로 심는다"라고 말씀하실 때, 평생 농사일로 단련된 손이 직접 그 감각을 전하고 계셨거든요. 이건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몸을 통해 체득되는 지식이라는 걸 강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순간은, 평소에는 연로해 보이던 어르신들이 논밭에 들어서는 순간 날렵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시는 모습이었어요. 노동을 통해 길러진 신체의 감각이란 어떤 것인지를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며, ‘농부의 감각’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러한 관심이 이어져서 2023년부터 본격적인 리서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마을에 있는 농업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실습에 동행하면서 농사 현장을 기록했습니다. 직접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움직임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고, 말씀을 녹음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어요. 그렇게 1년 넘게 리서치를 하다 보니, 단순히 농부들이 경험하는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그분들이 농사를 통해 체득해 온 삶에 대한 감각, 생애 감각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소리’라는 매체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리가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느껴요. 단순히 보여주거나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고 즉각적으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거든요. 눈을 감고 소리만 들었을 때, 평소에는 잘 포착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되살아나면서 몸이 빠르게 그 순간, 혹은 장소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러한 저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전시를 열게 되었던 것 같아요.
- 농사 현장에 대한 리서치는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진행하셨나요?
당시에는 약 1년 정도 리서치를 진행했어요. 봄, 그러니까 2월이나 3월쯤 파종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농사의 주기를 따라 1년을 쭉 따라갔습니다. 주로 벼농사가 중심이었고, 그 외에 밭농사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어요. 벼농사는 보통 10월, 늦어도 11월이면 수확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저는 10월 말까지 리서치를 이어갔습니다.
리서치가 끝난 뒤에는 논이 비워지는 시기에 맞춰 관객들을 초대해 소리를 듣는 워크숍을 열었어요. 저에게는 그 시간이 굉장히 풍요롭고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현장이 아닌, 전혀 다른 전시장이라는 내부 공간에서도 관객이 풍경이나 감각과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죠. 그 물음이 작업의 다음 방향을 결정짓게 되었고, 그렇게 전시장으로 작업을 옮기기 시작한 게 작년부터예요.
현재도 리서치는 계속되고 있어요. 더 많은 소리, 더 다양한 감각의 장면과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싶거든요. 하하. 두 번의 전시를 열었지만 사실 이 작업은 저에게는 ‘이제 막 시작된 일’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 농촌 풍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과 실제로 농사엥 참여했을 때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을까요?
정말 많은 장면이 있었어요.
처음에 마을에 와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낯선 마을을 계속 걸어 다녔어요. 아는 사람도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논밭을 따라 산책하듯 걸으며 풍경을 관찰했죠. 멀리서 보면 논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쭈그리고 앉아 계시거나, 엉덩이만 살짝 보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는 단지 ‘힘들겠다’, 혹은 ‘자연과 함께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정도의 막연한 인상만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논밭에 들어가 저도 쭈그리고 앉아보니 감각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그 순간 확 밀려오는 풀 냄새, 작물의 자람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감촉 같은 것들이 피부로 생생하게 전해졌으니까요.
특히 저에게는 한여름의 김매기 작업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저는 자연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로 5년 차가 되었어요. 자연농법은 기계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진행하거든요. 8월,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논에 들어가 김을 매야 하죠. 농촌의 논은 그늘 하나 없이 몇 천 평이 펼쳐져 있어서, 아침에 논을 바라보면 어디서부터 들어가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막상 벼가 자란 논에 쭈그리고 앉아보면, 논바닥에 자작하게 고인 물에서 습기가 올라와서 의외로 꽤 시원해요. 바람이 살짝 불 때 느껴지는 미세한 바람 한 점이 너무나 소중하고 시원하게 다가왔죠.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벼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 논 한가운데 앉아 바라본 풍경은 멀리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벼의 높이 안으로 제 몸이 들어가며 자연과 직접 연결되는 느낌이 저에게는 무척 즐겁게 다가왔어요.
사실 처음에는 리서치를 위해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농사에 직접 참여하며 이런 경험들을 겪고 나니 제 생각도 달라졌어요. 함께 일하는 농부님들의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직접 경험하고 나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를 들 수 없더라고요. 그분들이 땀 흘려 일하시는 옆에서 제가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일이 부적절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제가 조심했던 건, 농촌의 노동을 낭만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농촌을 단순히 한가롭고 여유로운 공간으로만 묘사하거나, 노동을 신성시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농사를 배우고, 직접 짓고, 몸으로 경험하면서 '진정한 농사'에 대한 감각을 쌓아가고 있어요.
- 앞서 농사의 감각을 공유하고 싶어 이번 전시를 시작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는 정말 수많은 경험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특히 전시장으로 가져오고자 했던 감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제가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농부의 몸이 현장에서 감각하는 순간’이었어요. 농부의 몸은 단순히 움직이는 신체가 아니라, 바람을 맞고, 흙을 만지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감각의 주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감각하는 그 몸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볍씨를 파종하고 싹을 틔우는 과정이 있어요.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논으로 옮겨 심어야 하는데, 이때 논에는 물을 가득 대어 촉촉하게 해요. 농부들이 논에 들어서는 순간, 발이 훅훅 빠지고, 몸의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해요. 발을 옮길 때마다 진흙의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지고, 못자리를 옮기는 작업처럼 여러 명이 두 줄로 서서 동시에 논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의 몸이 푹푹 꺼지며 마치 군무처럼 모두가 함께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펼쳐지죠. 그 모습이 저에게는 너무나 인상 깊고 아름답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은 저는 소리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물을 머금은 논 위를 걸어 다닐 때의 소리, 진흙 속을 걷는 발소리, 거친 숨소리 같은 것들을 모두 마이크에 담았습니다. 바람 소리도 녹음했는데, 이 바람은 계절마다 결이 달라요. 봄과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바람의 무게나 잎이 흔들리는 소리조차 달라지더라고요. 이 소리들을 저는 일부러 예쁘게 다듬지 않았어요. 때로는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농부의 몸이 경험하는 실제 감각 상태를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관객이 이 소리들을 들으며 최대한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 몰입을 통해, 농부의 몸이 경험하는 순간들을 비로소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어요.
이 전시의 전체 주제를 ‘듣는 산책’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저는 산책이라는 행위가 공간과 시간 속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꼭 농촌이 아니더라도, 일상이나 감각, 삶과 생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농사를 짓는 과정 속에도 그런 여백이 있었어요. 농부님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저 역시 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경험했던 생애 감각,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여백 같은 것을 전시를 통해 관객과도 나누고 싶었어요. 그런 감각이 이번 작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사실 갖고 오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아서, 두 번의 전시를 한 아직은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순간들을 전달하는 첫 발자국일 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앞서 '듣는 산책'이라는 전시 주제에 대해 짧게 언급해 주셨는데, 전시명에 대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사실 저는 처음 전시를 봤을 때 '산책'이라는 단어가 매우 인상 깊었거든요. 농사라는 키워드는 고단함과 신성함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하지만 산책은 일상의 여유를 떠올리게 해요. 고단함을 품은 농사와 여유를 상징하는 산책을 어떻게 연결 짓게 되셨는지, 산책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산책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에요. 꼭 작업을 구상하거나 생각을 정리하려고 일부러 산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농사뿐 아니라 우리의 삶 대부분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쁘고 고단하잖아요. 그런 일상 속에서 산책은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을 위해 바쁘게 걷는 것과 산책을 하며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고, 산책을 할 때는 평소에 잘 인지하지 못했던 소리나 바람, 냄새 같은 감각들이 열리게 돼요. 저는 이 감각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 그 틈을 ‘산책’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농부님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또 제가 직접 농사에 참여해 보면서도 느낀 점이 있어요. 농사는 분명 고단하고 힘든 과정인데 그 안에는 확실히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제가 일부러 미화하거나 낭만적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것이 농사라는 일이 지닌 본질적인 좋은 면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의 순간순간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여름 논에서 일하다가 잠깐 부는 바람이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진다든지, 자연 속에서 계절이 변하면서 만들어내는 풍성한 변화와 그로 인한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유독 그래요. 또, 농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반드시 함께 지어야 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과 만들어지는 관계나 경험 또한 매우 특별하거든요. 저는 그 순간들이 산책을 떠올릴 정도로 참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결국은 수많은 산책의 시간 속에서였어요. 서울에서 [매봉댄스 1234]라는 퍼포먼스 작업을 하던 때도 산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코로나 시기 모든 활동이 멈췄을 때, 저는 집 뒤에 있는 작은 산에 매일같이 올랐어요.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다 보니 처음에는 몰랐던 아주 미세한 변화들, 숲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의 흐름이 점점 더 감각되더라고요. 이런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일상적인 공간이 조금씩 다르게 인지되는 그 감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이 저의 이전의 작업에서 지금의 작업으로, 그리고 이번 전시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또, 그냥 [산책]이 아닌 [듣는 산책]인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 전시에서 ‘듣기’라는 감각을 무척 중요한 주요 매개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듣는 산책2025_움직임]이라는 작품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녹음한 소리를 무용수에게 들려주고, 무용수는 그 소리를 따라 즉흥적으로 몸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어요. 사전 지식 없이, 그저 그 순간 들리는 자연의 소리들을 들으며 무용수는 소리를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따라가려는, 즉 감각을 따라가려는 움직임을 하게 되어요. 관객은 이 과정을 영상으로 보게 되고 그 결과, 관객의 몸 또한 영상 속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저는 이 전체 과정을 하나의 안무라고 생각해요. 소리를 듣고, 몸이 반응하고, 또 다른 몸이 그것을 지켜보며 감각하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러한 감각의 순간은 결국, 일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산책’이라는 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느꼈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듣는 산책]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전시 [농사 짓는 몸_듣는 산책]을 함께, 차근차근 살펴봅니다
- 서울로 전시 공간을 옮기며, 어떤 전시장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싶으셨는지, 즉 전시 공간에 대해서는 어떤 점들을 고려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시 공간은 가능하면 넓었으면 좋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여백이 많은 공간이길 바랐고, 그래서 실제로 설치를 마친 뒤에는 오히려 “너무 많이 채운 게 아닐까?”, “조금 더 비워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전시 구성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공간의 ‘입체성’이었어요. 대부분의 전시장은 하나의 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저는 처음부터 공간이 나뉘어 있기를 바랐어요. 특히 ‘소리를 듣는 공간’과 ‘움직임을 보는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두 감각을 분리함으로써 관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각을 경험하길 원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입체성을 통해 전시장 안에서의 이동 동선도 다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이 단순히 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간을 걸어 다니며 감각을 몸에 새겨가는 방식이었으면 했습니다. 가능하다면 야외 공간까지 포함된 전시도 상상해 봤고요. 아주 넓은 정원이 있는 전시장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진행했던 전시는 저희 마을에 있는 시골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열렸어요. 층고가 낮고 일반적인 전시장보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오히려 옛 마루나 미닫이문, 창호지 문 같은 구조들이 남아 있어서 독특한 매력이 있었어요. 본채와 별채로 공간이 나뉘어 있었고, 네 개의 방과 가운데 마당, 그리고 옥상까지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입체적인 관람 동선이 만들어졌거든요.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입체성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된 CN 갤러리가 그런 면에서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3층으로 이뤄져 있고, 입체성이 명확하게 있으니까요. 거기다 저는 충남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인데, 이 갤러리는 충남문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공간이어서 더 반갑게 느껴졌고요. 공간 자체는 소박하지만 마당이 있고, 3층 구조로 되어 있어 동선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너무 좋았어요.
특히 저는 옥상 공간이 마음에 들었어요. 전시장 내부에서는 하얀 벽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다가 마지막에 옥상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 순간 관객은 전시장에 들어오기 전에 걸어왔던 그 길을 옥상에서 다시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전시를 통해 여러 ‘듣는’ 감각을 경험한 이후라, 같은 길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 이 전시의 완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이번이 두 번째 전시인만큼, 첫 번째 전시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이번에 보완한 부분이 있었을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무용가인데, 관객과 최대한 연결되는 작업을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전시를 준비하고, 영상을 만들고, 소리를 제작하는 일을 하게 되었었잖아요. 하하. 그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작년 첫 전시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고, 제가 상상했던 것에 비해 구현이 쉽지 않았어요. 기술자가 아니다 보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작업을 진행했는데, 특히 ‘소리를 관객에게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에 대해 시행착오가 유독 많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관객이 자신의 헤드셋이나 기기를 가져와 QR코드를 스캔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고, 마당이나 툇마루 같은 야외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구성했었는데 연결이 어렵거나 링크 접속이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있었고, 기기 간 충돌 문제도 발생했었죠.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직접 사운드 송출에 관련해 조사하고, 업체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시스템 사용법과 음향 질을 체크했어요. 다행히, 적절한 업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관람객이 별다른 조작 없이 헤드셋만 착용하면 자연스럽게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해서 감각하는 순간에 방해요소를 줄이고자 했어요.
특히 작년 전시 이후에, 영상을 더 크게 걸고 싶었어요. 무용수의 세밀한 감각을 관객이 함께 몰입하며 따라갈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이번 갤러리는 3층으로 구성된 반면, 직사각형의 좁은 폭의 공간이었고, 모든 전시장에 통창이 있어서, 원하는 크기의 영상을 구현하는데 있어,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설치 구상 기간동안, 전시장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쳤어요. 그래서 결국, 1층과 2층 각 전시장마다 커다란 가벽을 직접 설치하게 되었고, 전체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도 영상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천도 직접 제작하여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공간에 직접 들어와서야 부딪히게 된 어려움이었는데요. 전시라는 것이 새로운 공간과 만날 때마다 변화하고 진화해간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인 것 같습니다. 과정은 물론 힘들었지만요.
- 그렇다면 서울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열며 유독 기뻤던 순간, 혹은 이유가 있다면.
작년 10월 첫 전시 당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누군가에게는 농사와 노동이 일상인데, 내가 이걸 예술로 다루는 방식이 과연 괜찮을까?”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거든요.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저희 마을 분들을 초대해서 먼저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 마을에서 먼저 전시를 열고 오프닝 퍼포먼스도 제가 직접 출연했어요. 이후에는 관객분들과 작가와의 대화처럼 긴 시간을 함께 나누며 제가 어떻게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접근했는지, 또 관객이 어떤 감각을 받았는지에 대해 소통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마을 주민분들께서 많이 공감해 주시고, 좋아해 주셨었죠. 그때 “언젠가 서울이나 도시에서도 이 작업을 꼭 선보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올해 서울에서 좋은 공간에서 전시를 열게 되어 저 역시 매우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어요.
- 전시를 모두 준비하고 완성되었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역이나 섹션이 있을까요?
가장 애정하는 공간을 하나 꼽자면 저는 아무래도 [듣는 산책_소리] 섹션의 ‘소리를 듣는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관객분들이 이 공간에서 오래 머물며 자신의 감각이나 내면의 심상과 깊이 만나는 순간을 충분히 누리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 섹션에서의 경험만큼은 정말 놓치지 않으셨으면 해요. 사실 아무래도 전시에서는 시각적으로 영상이 더 많은 주목을 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리를 듣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 공간에서 관객이 조용히 머무르며 자신의 감각을 충분히 느끼셨으면 해요.
그 외에는 무용수들의 영상 부분도 함께 언급하고 싶어요. 영상이 크게 설치되어 있지만, 그 외에도 곳곳에 배치된 작은 모니터를 통해 클로즈 업된 장면들도 함께 볼 수 있거든요. 저는 이곳에서 관객분들이 무용수들의 움직임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소리를 따라가며 감각을 좇고 있는 몸의 상태와 그리고 그 감각이 발생하는 순간을 바라봐 주셨으면 해요. 예를 들어, 무용수가 움직이다가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잠깐 멈칫하는 순간이라든지, 아주 짧게 흐름이 끊기는 듯한 장면들을 말이에요. 하하. 저는 오히려 그런 찰나의 순간들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관객분들도 각자 그런 감각과 연결되는 자신의 순간들을 포착해가셨으면 좋겠어요.
- 저는 이번 전시에서 2층 헤드셋 공간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물소리와 바람 소리 등을 들으며 농사의 순간을 함께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주말농장에서 작은 텃밭을 가꿨던 경험이 함께 떠올랐거든요. 저에게는 ‘추억’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었죠. 감각이라고 하면 흔히 오감을 떠올리게 되는데, 소리에 집중하신 이유와 함께 다른 감각을 접목할 생각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그게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지점이에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 각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 짓고, 자신만의 순간을 상기하거나 치유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하하. 실제로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다른 감각에 대한 기대나 궁금증을 표현해 주셔서 저도 굉장히 반갑게 느끼고 있어요. 이 작업은 저에게도 일종의 ‘시작’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더 확장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 역시 계속 고민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다만 처음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모든 것을 설명하거나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감각 그 자체가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였어요. 그 질문 속에서 ‘소리’야말로 감각을 가장 능동적으로 열어주는 매개라는 생각이 들어서 첫 시작은 소리로 정했던 거였어요. 사실 저는 무대 공연 작업도 해본 경험이 있는데, 무대 위에서는 농사를 주제로 움직임이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지만,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긴 어렵거든요. 무대에 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점이 늘 아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관객이 조금 더 능동적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은 없을까?”라는 고민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런 고민이 이어지며 지금과 같은 작업 방식을 시도하게 된 것 같아요.
소리를 듣는다는 건 결국 관객이 스스로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상상을 시작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만들어낸 심상이 이 전시 공간에 머물고 떠오르는 그 순간, 저는 그것이 바로 관객이 무대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이번 전시도 저는 '전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무대’로 상상하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관객이 소리를 통해 심상을 만들고, 그 심상이 무대를 완성한다고 보고 있고요.
사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초기에는 제가 농사지었던 실제 논을 무대로 삼아 관객을 초대한 적도 있었어요. 수확 후 볏짚이 덮인 논에 관객들이 와서 소리를 들으며 걷거나, 누워 머무는 워크숍을 진행했었죠. 그때의 경험도 굉장히 인상 깊었지만, 한편으로는 시각적인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서 오히려 감각과 소리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점도 분명히 있더라고요.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너무 선명할 때, 사람은 상상이나 심상에 머무르기보다는 현실에 끌려다니게 된다는 것이 와닿았어요.
그래서 현재로서는 ‘소리’가 관객이 능동적으로 감각을 열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적절한 매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앞으로는 다른 감각들과의 결합도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향기’ 같은 감각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아직은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가는 중이지만, 소리에 이어 다른 감각들로도 확장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저 역시 계속 열어두고 탐색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다, 우리의 모든 감각이 무용이 되는 순간
- 앞서 인터뷰 초반 때, 짧게나마 '즉흥 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번 전시장 내부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즉흥 무용인데, 작가님께 '즉흥'이란,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의 '즉흥'이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즉흥을 추는 그 시간 자체를 무척 좋아해요. 제 안에서조차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움직임이 불쑥 나올 때가 있고, 반대로 움직임을 통해 제 내면의 어떤 상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전부터 안무를 할 때 즉흥적으로 움직임을 찾아가는 방식을 자주 사용해왔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하지 않았던 움직임들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니까요.
다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전시 작업에서는, 즉흥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즉흥에서의 춤 자체나 무용의 방식이 핵심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상과 노동 속에서, 특히 농부가 경험하는 감각과 그 순간의 상태를 관객이 어떻게 느껴볼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 감각을 관객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이번 전시이자 제가 최근 살펴보고 있는 ‘무용’의 형태예요.
물론 이렇게 어렵게 무용의 시선에서 접근을 하지 않더라도 가장 확실하게 농부의 감각과 관객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방법은 관객을 논밭으로 초대해서 직접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겠죠. 하하.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렵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현장에서 포착한 흥미로운 감각들을 소리로 녹음한 뒤, 그 소리를 무용수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무용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즉흥적으로 반응하고, 그 소리를 따라가려는 집중 속에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몸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요. 예를 들어 눈동자가 움직이거나,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변하는 식의 반응이 일어나는 거죠. 저는 그런 상태를 ‘안무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소리 섹션이 전시장 초입에 먼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무용수의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정보라고 하셨고, 청각에 집중하기를 바라셨음에도 움직임 섹션을 가장 먼저 배치하셨는데, 혹시 현재의 공간 배치에는 어떤 의도가 있으셨을까요?
사실 그 부분은 저도 정말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작년 첫 전시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들이 나뉘어 있고 마당이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관람 동선을 어느 정도 의도에 맞게 설계할 수 있었어요. 물론 관람객이 꼭 그 순서를 따르진 않았지만,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배치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공간 구성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실제로 전시 직전까지도 여러 차례 수정을 반복했어요. 초기에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1층 입구에 소리 섹션을 배치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려했었고요. 하지만 지금의 전시장 구조상 1층은 너무 열린 공간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소리를 듣는다’는 감각은 조금 더 아늑하고 집중하기 좋은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1층은 바깥과의 거리감이 거의 없고, 구조 자체가 오픈되어 있어 감각에 몰입하기에 다소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움직임의 영상을 먼저 관람하도록 유도하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감각의 밀도가 높아지도록 구성했습니다. 특히 2층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가장 몰입할 수 있도록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에 소리 섹션을 배치했어요. 결과적으로 이번 전시는 관객의 집중도와 감각의 흐름이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구조를 의도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시각적인 자극으로 시작해서, 점차 감각이 내면으로 향하고, 최종적으로는 자기 감각에 닿는 방향으로 동선 설계가 완성되었습니다.
- 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1층에서 본 무용수분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낯설고 묘하게 다가왔는데요. 작가님께서는 무용수들이 자신의 감각을 포착하는 순간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작가님의 시선이 궁금해요.
저는 정말 너무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하.
사실 이번 과정은 저에게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어요. 저는 감각이라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다시 같은 감각을 만났을 때, 몸이 생생하게 그 순간을 다시 살아낸다고 믿고 있어요. 감각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지금 여기에 있는 내 몸도 함께 감각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는 시간은 그런 저의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어요. 무용수들이 실제로 그 감각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지, 진짜로 ‘감각’과 연결될 수 있을지를 실험해 보는 과정이었죠. 무용수들이 그렇게 감각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촬영 당시에 무용수분들께는 일부러 사전에 레퍼런스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소리도 전혀 들려주지 않았고요. 완전히 생소한 상황을 만들었고, 그 상태에서 낯선 소리와 처음 만나는 순간 무용수의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보고 싶었어요. 소리는 무용수 혼자만 들을 수 있었고, 촬영 현장 전체는 30분간 완전히 조용하게 유지했습니다. 저와 촬영 감독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무용수의 몸에서 감각이 피어나는 순간을 속으로 환호하며 바라봤어요. 그때 저는 정말 마음속으로 "맞아, 저거야, 너무 좋다." 외치면서 보았던 것 같아요. 하하. 촬영이 끝난 뒤 모니터링하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장면들을 계속 반복해서 보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재미있고, 기쁜 경험이었어요. 누군가의 몸을 통해 감각이 살아나는 그 순간을, 그리고 제 믿음을 실제로 목격하는 일이었으니까요.
- 무용수의 움직임 중에서 기억에 남는 특정한 장면이 있었나요?
이번 작업에 함께해 주신 무용수분들은 모두 제가 심혈을 기울여 섭외한 분들이에요. 각자 뚜렷한 캐릭터와 움직임의 결을 지니고 계신 분들이었고, 이전 작업들을 꾸준히 찾아보며 고민한 끝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움직임 자체에 대해서는 모두 정말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업에 담긴 장면들은 일반적으로 관객이 ‘무용’이라고 떠올리는, 아름답게 형식화된 동작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요. 때로는 아기들이 장난치듯 움직이는 모습이나, 아주 일상적인 움직임처럼 보이는 장면도 있어요. 저는 그런 하나하나의 동작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있는 감각과 반응, 그 찰나의 몸 상태가 너무 귀하거든요.
특히 인상 깊었던 순간은 소리와 몸이 정확히 맞닿는 것 같은 장면들이에요. 그것은 소리와 움직임의 싱크가 맞는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오히려 소리를 듣고 움직임이 반박자 늦게 따라가게 돼요. 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무용수가 소리를 따라가려는 감각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순간들이 포착될 때마다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하하.
또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는 ‘표정’이었어요. 작년에 마을에서 작은 규모의 전시를 열었을 때, 소리를 듣는 공간이 아주 작아서 두세 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친한 마을 친구들이 전시를 보러 오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헤드셋을 끼고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었어요. 그때 저는 살짝 옆에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는데요, 사람들이 무언가에 깊이 몰입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표정이 있어요. 턱이 살짝 긴장된다든지, 입이 약간 앞으로 나오거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는 등의 미묘한 변화들이 포착되었죠. 그런데 이번 영상 속 무용수들의 얼굴에서도 그런 집중의 표정들이 포착되었어요. 저는 그런 무의식적이고 섬세한 순간들을 정말 좋아해요. 어떤 거창한 동작보다도, 그 작은 순간에서 감각이 생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 앞서 무용수분들을 섭외할 때 심혈을 기울이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특별히 어떤 기준이나 원하셨던 방향이 있었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이었다고 딱 잘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제 나름의 분명한 선택 기준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중 하나는, 각자 뚜렷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영상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무용수분들이 떠올랐고, 그런 분들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업은 저에게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이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 줄 수 있는 분들이어야 했어요. 새로운 접근에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분들, 무엇보다 제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들이었어요. 그런 분들과 함께해야 이 작업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있었고, 작업을 구상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고, 덕분에 이 작업이 더 깊이 있게 완성될 수 있었다고 느껴요.
- 매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듣는 소리를 개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력과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하셨던 걸까요?
네, 맞아요. 말씀해 주신 두 가지 모두 실제로 제가 무용수분들을 섭외할 때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이에요. 하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각자의 개성으로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과 움직임 스타일, 또 하나는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존재감이었거든요.
특히 이번 작업은 즉흥적인 움직임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제가 별도로 동작을 지정하거나 스타일을 정해주는 방식은 전혀 아니었어요. 무용수들이 소리를 따라가되, 결국 각자의 움직임 습관이나 감각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그런 점에서 무용수분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움직임의 특성과 고유한 스타일의 매력을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또, 모든 무용수분들이 서로 다른 개성과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제안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게 조정했어요. 기본적으로는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방식은 동일했지만, 그 반응이 겹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조율해서 그 매력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마무리 지으며, 이선아가 관람객들에게
-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관람하실 분들께, 어떤 부분에 조금 더 집중하면서 관람하면 좋을지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도 연결되는데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산책’인 만큼, 저는 ‘듣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일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에게 ‘듣는다’는 것은 곧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고, 어떤 감각에 마음을 여는 상태이며, 자기 안의 심상과 연결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넓은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이 전시에서 조금 더 천천히, 오래 머물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사실 제 작업은 러닝타임이 꽤 긴 편이에요. 짧게 보고 지나치기보다는, 느리게 머물고 천천히 감각에 다가가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자신의 감각이나 기억, 내면의 심상에 닿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평일 낮 시간대를 전시 관람 시간으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평일 낮 시간대 전시장은 무척 조용하고 한가로워요. 바깥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이곳 안에서는 햇살과 하늘, 소리와 공간을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럴 때 혼자 오셔서, 전시 전체를 하나의 ‘산책’처럼 경험해 보시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누가 나가라고 하지 않으니, 하하, 정말 하루 종일 머무르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영상 모두를 보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다만 그중 하나만이라도 조금 더 집중해서 바라보면서, 본인이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감각을 포착해 보셨으면 해요. 그리고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가 관객 자신의 기억이나 감각, 혹은 어떤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굉장히 깊은 감각의 체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옥상에서도 얼마든지 쉬셔도 좋아요.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계셔도 되고요. 책을 읽으셔도 괜찮아요. 그 순간 역시 저는 전시의 일부이자 진짜 ‘산책’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여유로운 감각의 시간을 관객분들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