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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본 글은

영화 '보이 인 더 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장 영화, 성장 서사란 무엇일까? 많은 성장 서사를 담은 창작물들이 있고 그것들은 성장을 긍정하고 부정하며, 어떤 때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성장 서사는 또한 나이가 어린 주인공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물에 많다. 어릴수록 변화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 단골 캐릭터는 청춘물에 성장 서사를 입는다.

 

여름, 2007 "비밀로 할 수 있어?"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 '석영'은 물갈퀴를 가진 특별한 소년 '우주'를 만난다. '우주'의 물갈퀴는 '석영'과 '우주' 둘만의 비밀이 되고, 평생 같이 수영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우주'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으로 수영에 두각을 나타내며 헤어지게 되는데.


여름, 2013 "너만 내 얘길 들어줄 수 있어" 특별했던 '우주'의 세계는 희미해지는 물갈퀴처럼 점점 평범해지고,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석영'을 찾아가게 되는데.

 

예민한 감정 사이를 헤엄치는 소녀와 소년의 비밀과 성장을 담은 청춘 연대기가 시작된다.


영화 '보이 인 더 풀'의 시놉시스를 읽으니 이 스탠더드의 설정을 어떤 흐름으로 풀어나갈지 영화를 시작 전 용산 아이파크 CGV의 좌석에 앉아 한껏 궁금해졌다. 내가 앉은 좌석 주변에서도 이런 추측과 기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영화의 막이 내리고 예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부분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몇몇 장면이 문뜩 떠올랐다. 강렬하진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나에게도 있던 장면들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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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석영'이 도시의 학교에서 전학을 가게 되며 친구들과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사 가는 차 안에서는 수영대회 트로피를 꼭 안은 채 내내 도시에서 시외로 나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푸른 바다가 눈부시게 빛나고 청명한 여름날의 자연과 달리 '석영'의 표정은 어둡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차와 같은 미래가 걱정스럽기만 한 것 같다.


도착한 곳은 '석영' 식구의 할머니 집이다. 어쩐지 엄마는 화가 나 있고, 동생은 눈치 없이 해맑으며, 아빠는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석영' 못지않게 엄마도 단단히 불만스럽지만, 두 명의 딸이 있으니 입은 무겁다. 마치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같이 영화의 이야기는 분절되고 친절하지 않다. 강렬했던 기억들이 만들어낸 여름날의 동화책 같다.

 

모든 게 이해되지 않고 답답한 상태에서 진행된, 익숙하던 도시에서 낯선 마을로의 이동에도 '석영'은 도시에서 계속해 왔던 수영을 놓지 않는다. 이사 온 바로 첫날 엄마와 대판 싸우고 수영센터로 달려가 수업을 등록하려는 '석영'의 모습은 수영만이 '석영'의 전부처럼 보이기도 하다.


처음엔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석영'은 수영센터에 앉아 있던 '우주'라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다. 후에 바다에 빠진 '석영'을 구해준 '우주'는 '석영'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자신보다 수영을 잘하는, 이기고 싶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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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석영'의 진짜 감정들은 승부욕으로 희석되고 감춰지고 있었다. 수영에 관심 없지만 물갈퀴라는 선천성으로 재능을 가진 '우주'에게 계속 승부를 겨루자고 하거나 '우주'의 콤플렉스이기도 한 물갈퀴로 둘만의 비밀을 만드는 등 만남의 이유가 단순한 친분의 표시가 아니라 승부라는 목적이 분명하게 있다.


하지만 '석영'은 승부욕 때문에 선천적 재능을 가진 '우주'에 비해 뒤처진다는 자존심을 건드려 결국 수영을 그만두게 된다. 이에 반해 '우주'는 코치의 눈에 띄여 서울에 있는 체육고등학교로 이사를 간다. 둘의 다른 운명의 기로를 보면 '우주'의 모습이 '석영'이 바랬던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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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1부는 어린 석영과 우주, 2부는 고등학생, 3부는 어른이 된 모습으로 부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이 영화의 장점은 시간대의 편성이라고 느꼈다. 배경 이야기가 너무 빈약하지도 않으며 갑자기 시간이 십 년 가까이 흘러도 몰입감이 높았다. 또한 '우주'의 물갈퀴라는 상징이 시간이 지날수록 후퇴해 간다는 설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수영 대결로 시작된 둘의 성장과 다르게 결말에 다다르면 누구도 수영선수가 되어있지 않았다. '석영'과 '우주'는 서로에게 희망 혹은 시련이 된다. 성장 과정에서 싸워야 할 대상이 친구가 된다는 건 슬프지만 한국에서 나의 유년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런 기억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성장 서사가 가진 대결 구도에서 탈피한다. 시련이나 고통이란 관념을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수족관의 다이버라는 다른 삶의 형태로 녹여낸다.

 

그 때문에 이 영화에서 말하는 성장이라는 개념은 '더 나은 내가 된다'기 보다는 '내가 나여도 된다'라는 방향으로 말을 건넨다. 이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없었던 상황이 더 많았을 어린 시절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혹자가 말하길 살아오면서 포기한 것들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건 어른이 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한다. 흔적기관이 된 과거는 오리발이 씌워진 '우주'의 발처럼 부드럽고 느린 발차기 속에서 함께 꿋꿋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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