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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디로 가야 하나


   

마지막 학기 하나만을 남겨둔 새 학기, 뭔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학기를 모두 마친다는 건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라는 것이고, 일반인이 된 나는 어딘가로 가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공부를 이어 나간다면 어떤 분야를 공부해야 할지, 만약 바로 일을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내 적성에 맞을지. 생각으로 가득 차 무거운 마음으로 휴학을 신청했다.

 

한 학기를 통째로 비우는 것의 위험을 안다. 무언가 정기적으로 할 일을 계획해 두지 않으면 허송세월하기 십상이다. ‘아무것도 없이 쉬기에는 그렇게 지치지 않은 것 같은데?’ 싶어 도전할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인턴십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또 자기소개서를 썼다. 감사하게도 들려온 합격 전화를 진로와 영 어긋난 것 같다는 이유로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법같이 눈에 들어온 것이 우리 대학 박물관의 도슨트 자리다. 다니는 학교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조차 얼마 전에 안 내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원체 전시를 좋아하는 성향에 가까운 캠퍼스 출퇴근이라는 이점이 더해지니, 지원하지 않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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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바리 신입 도슨트 일기


 

첫 시작이었던 3월은 내내 박물관의 체계와 업무에 적응하기에 바빴다. 전시된 유물들의 정보를 외우고, 언젠가 있을 전시 해설을 위해 연습했다. 돌아가며 배정되는 업무마다 약간씩 새로운 규칙과 책임에 익숙해지기에만 한 달을 넘게 투자한 것 같다. 마냥 낯설고 신기했던 한 달이었다. 사실 박물관의 도슨트라기보단 근로장학생으로서 일했던 것 같다.

 

4월은 내 첫 전시 해설이 있던 달이다. 외워도 외워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해설을 어떻게든 잘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내가 느꼈던 감동과 웅장함을 관람객들도 느꼈으면 좋겠는데, 제대로 전해졌는지도 모르는 채로 순식간에 첫 해설이 끝났다. 비로소 도슨트가 된 순간이다.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와 서툰 해설의 아쉬움이 몰아쳤다. 우리 박물관에는 국보부터 국가와 지자체에서 지정한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까지 그 가치를 전부 매길 수 없는 유물들이 가득한데, 그걸 전부 ‘알지’ 못하고 ‘외운’ 것에 가깝다보니 계속해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5월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근무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공부하는 수밖에.

 

 

 

두근두근 기획전시 타이쿤


 

4월은 내 첫 해설도 있었지만, 휴관과 기획전시 준비를 한 달이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근무하는 기수가 딱 학교 개교 기념 nnn주년 기획전시 기간과 겹치게 되어 대규모 전시 준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육체노동이 벅차기도 했지만, 자료집을 위해 인터넷과 책을 뒤적이고 또 동료 도슨트들과 회의하는 과정, 전시가 자리할 공간을 청소하고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 박물관과 이번 기획전시에 큰 애정을 가지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개막식 당일, 어느덧 진열장 안으로 다소곳이 자리 잡은 전시품들과 새삼스러운 인사를 나누며 열심히 진열장을 닦았다. 하나하나 돌아보며 덜 닦인 곳은 없는지, 떨어지거나 잘못 배치된 유물은 없는지 확인했다. 전시실을 개방하기 전, 괜히 자료집을 이리저리 들춰보고 진열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오후 네 시, 개막식과 동시에 전시실을 개방했다. 이제 정말 새 전시의 시작이다!

 

배정받은 전시실에서 개막식을 내려다보며 관람객을 기다리던 중, 해당 전시실에 있는 전시품을 기부하신 교수님과 학예사 선생님의 대화를 옆에서 듣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전시실에 놓인 물건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물건이라는 게 그때야 확 실감이 났다. 새로운 책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야기의 전달자로서 은근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던 날이었다.

 

 

 

네? 제가요?


 

이제 주황빛으로 깜빡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전시의 해설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게 참 막막하다. 아직은 상설 전시의 공부도 끝난 것 같지 않은데, 더 큰 규모의 기획전시라니! 당장 한 시간의 해설도 여러 층을 이동하며 진행해야 하기에, 관람객들의 집중력과 내 체력이 걱정이다.

 

전시된 유물과 작품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완전히 아는 것 같지가 않은 게 문제다. 물론 학예사 선생님들만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 하하, 고작 두 달 근무한 학생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시길! 그래도 자료를 조사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늘 걱정하는 것을 전달이다. 한 달간 동고동락하며 애정을 쌓아온 내가 아닌, 전시와 완전히 초면인 관람객을 상대로 내가 그 아름다움을, 깊은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버벅거리지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또박또박 말하는 연습, 당황했을 때 말해야 할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는 연습은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안다. 분명히 나는 말을 더듬을 것이고, 해야 할 말을 까먹을 것이고, 당황하여 귀 끝이 새빨개질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첫 해설인 것을! 우당탕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완벽한 해설을 진행할 날도 오겠거니, 생각 중이다. 한 학기 간의 도슨트 기간, 이번 학기의 끝자락에는 그날이 오겠지? 후회 없이 마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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