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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론 뮤익(Ron Mueck)의 개인전은 한국 최초의 회고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관람객을 깊은 몰입의 세계로 이끈다.

 

대상을 왜곡된 스케일로 확대하거나 축소한 그의 조각은 그 자체로 강렬한 시선을 붙잡지만,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표면을 넘어선 감정과 분위기에 이끌린다. 신체의 구조적 정밀함, 표정과 자세에 담긴 복합적인 정서,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인의 초상'을 담아내는 방식은 한없이 생생하고, 또 기묘하다.

 

그 생생함이 불러오는 기묘한 거리감, 감정의 간극, 일상과 이질의 충돌이 전시의 전체 톤을 형성한다. 조용하고 눅눅하게 가라앉은 전시장의 분위기는 현실과 꿈의 경계, 감각과 무감각의 틈을 걷는 듯하다.

 

 

 

경계와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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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젊은 연인>(2013)은 그 정교함 속에 감정의 해석을 여지없이 남긴다.

 

처음엔 평범해 보이던 두 사람. 그러나 연인의 등 뒤로 닿은 손은 ‘손을 잡고 있다’기보다는, 어딘가 일방적이고 불균형적인 제스처처럼 느껴진다. 마주한 손끝에서 위화감을 느낀 순간,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의 표정을 바라보면 작품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결로 읽힌다.

 

단순한 조각을 넘어, ‘관계’라는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이토록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드러낸다.

 

 

 

모성의 고단함을 고요히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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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상적인 작품인 <쇼핑하는 여인>(2013)은 론 뮤익의 날카로운 시선이 ‘모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양손 가득 장을 본 여인의 모습은 무심히 스쳐보면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르게 읽힌다. 갓 태어난 듯한 아기는 엄마를 향해 무언가 말을 건네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아기와 마주치지 않는다. 정면을 향해 있지만, 어딘가를 보지 않는 눈빛 — 텅 빈 듯한 그 표정은 육체의 무게보다 더한 감정의 피로를 드러낸다.

 

“모성애”라는 단어 하나로 이 시기를 정의하긴 어렵다. 이 조각은 그런 표면적인 의미를 거부하며, 역할에 짓눌린 여성의 정체성과 공허를 말없이 들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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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응시하게 만드는 두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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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작품은 단연 (2016-2017)다. 100여 개의 해골이 촘촘히 쌓여 이루어진 이 조각은 단순히 물리적인 ‘덩어리’ 그 이상이다. 무게와 부피,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죽음의 총량.

 

해골이라는 이미지는 서양 미술사에서 전통적으로 바니타스(vanitas), 즉 삶의 무상함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으로 쓰여왔다. 뮤익은 이 전통을 그대로 따르되, 이를 집단화하고 덩어리화함으로써 개인의 죽음을 넘어선 ‘집단적 죽음’, 혹은 ‘사회적 무감각’을 드러낸다. 해골 하나하나의 해부학적 디테일은 경이로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그것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만들어내는 시각적으로 압도되는 양과 질량은 오히려 감정을 마비시킨다.

 

죽음의 형상이 이렇게까지 거대해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관람자는 경외와 불쾌, 무감각과 각성 사이를 오가게 된다. 그것은 마치, 너무 많이 반복된 참사와 상실 속에서 무뎌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감각을 은유하는 듯하다. 죽음을 ‘의식’하게 만들기보다는, 죽음 속에서 무엇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순간까지를 시각화한다. 단일한 개체로 보자면 생명 없는 해골이지만, 이들이 모여 있는 상태는 오히려 우리에게 끊임없이 감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요구 앞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감정을 잃고 멍하니 응시하게 된다. 그 자체가 이 작품의 가장 섬뜩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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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하며 가장 생각했던 점은 작품과 관객 사이의 물리적 거리다.

 

론 뮤익의 조각은 눈가의 잔주름, 손끝의 핏기, 입술의 주름까지 살아있는 디테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디테일을 더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면, 관람의 경험은 훨씬 더 몰입적이었을 것이다. 작품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는 이 전시의 테마와도 묘하게 맞물린다.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인간 사이의 거리감, 감정과 몸 사이의 간극, 그런 요소들이 공간 안에서 또 다른 감상을 만든다.

 

론 뮤익의 전시는 '보기'의 경험을 넘어서 '응시'의 상태로 관람자를 이끈다.

 

매우 사실적인 묘사로 시작되지만, 너무 사실적이기에 질적인 감정과 풍경을 마주하게 한다.

 

론 뮤익은 ‘현대인’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공허, 피로, 긴장, 고립 같은 감정을 실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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