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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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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건 어렵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흐릿한 이야기들은 이상하게도 손을 거치고 나면 전혀 다른 문장으로 완성되고 만다. 여러 번 읽고 고쳐 봐도 완벽히 마음에 드는 글은 나오지 않는 것만 같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보다 어려운 건, 그러한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스탠바이, 웬디>는 자폐증을 가진 웬디가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지역 재활 센터 반경 내의 좁은 세상에서만 살던 웬디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리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몰두해 힘들게 글을 쓴 자신을 위해 혼자 LA로 가는 여정에 나선다.


웬디의 여정은 험난하다. LA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반려동물인 피트 때문에 쫓겨나고, 우연히 만난 커플에게 강도를 당한다. 바가지를 씌우려는 점원에게서 친절한 노부인이 구해주지만 그를 따라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힘들게 쓴 시나리오의 절반을 잃어버려 수기로 다시 작성해야 한다. 부족한 버스비 때문에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창구 직원은 웬디의 요청을 거절한다. 겨우겨우 파라마운트 픽처스에 도착했더니 담당자는 무조건 우편으로 전달된 시나리오만 받는다며 웬디의 시나리오를 거절한다.


이 여정을 보다 보면 웬디의 이틀이 꼭 삶의 축약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좋은 일만 일어나지도 않고, 무작정 나쁜 일만 일어나지도 않는다. 웬디를 이용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웬디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타트렉’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친절한 경찰관도 있다. 길을 찾는 웬디에게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땅에 흩뿌려진 시나리오를 주워와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좌절 사이에 포기하지 않는 웬디가 있다. 시나리오를 잃어버려도 수기로 다시 쓰는 사람, 표가 없으니 짐칸에라도 몰래 올라타는 사람, 시나리오를 거절당해도 다른 시나리오들 사이에 끼워 넣는 사람.

 

위기가 닥칠 때마다 웬디는 스스로에게 ‘스탠바이’를 읊조리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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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청난 모험이 끝난 후 웬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웬디가 쓴 시나리오는 결국 당선되지 못하지만, 상관없다. 자신을 위해 리믹스 CD를 만들어준 사람에게 웬디 또한 CD를 선물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시나리오를 읽어주었고, 웬디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조카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피트의 모습을 보면, 아마 웬디는 언니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웬디의 남은 삶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웬디가 어린 시절처럼 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들어할 수도 있고, 언니가 다시 웬디를 재활 센터에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시련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만 괜찮다. 위험천만한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가장 솔직한 모습을 글로 쓰고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문제도 헤쳐나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논리적인 결론으로 나아갈 때까지, 스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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