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마인크래프트 무비>를 관람하러 영화관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굉장히 애용한다. 오버월드에 건축물을 건설하는 것이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일 정도다. 그래서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감도 들었고, 불안감도 들었다. 게임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띄고 있으면 어떡하지. 과연 실사 영화로 마인크래프트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기는 할까. 그런 온갖 생각들을 하며 영화관 의자에 착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웃기다. 웃기고 유쾌하고 귀엽다.
단, 개연성을 생각하면 안 된다.
스토리적 측면에서 영화를 감상하려 하거나, 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면 안 된다. ‘웃기고 유쾌하고 귀엽다’는 관람평은 앞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후 나올 수 있는 관람평이다. 그만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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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오버월드의 실사화
전체적으로 마인크래프트 게임 유저들을 위해 신경 쓴 구석이 보인다. 네모난 블록들로 이루어진, ‘무엇이든 상상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오버월드의 풍경은 게임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으며, 특히 초반 빠르게 보여주는 주인공 스티브(잭 블랙)의 오버월드 적응기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장면이다. 처음 짓는 집과 나중에 지은 집이 퀄리티 차이가 극명한 것부터, 레드스톤 회로를 이용한 선로, 네더로 가는 포탈을 여는 방식 등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나, ‘삼림 대저택’, 악역이 살고 있는 ‘네더’등 마인크래프트 유저들의 눈을 돌아가게 할 공간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밤이 되면 나타나는 좀비, 거미, 스켈레톤, 크리퍼는 그 특성에 맞게 잘 구현되어 있고, 작업대에서 이리저리 재료를 조합해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대로다.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 들려오는 마인크래프트 배경음까지. 그래픽과 미술적 측면에서는 아쉬울 게 없을 정도다. 주민이 처음 등장할 때는 그 귀여움에 놀랐더랬다.
두 번째 장점은 ‘유쾌하다’는 점이다. 물론 웃음이라는 게 개인차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나는 충분히 웃으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제이슨 모모아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 쓰레기맨 ‘개릿’과, 잭 블랙의 ‘스티브’ 콤비가 좋다. 오버월드 초보인 개릿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웃긴 모습이 있고, 자신만만한 점이 어딘가 웃긴 스티브만이 보여주는 유머 포인트가 있다. 포탈이 열린 틈을 타 빠져나가 지구에서 사랑을 찾은 한 이상한 주민의 모습도 킬링 포인트 중 하나다.
이걸 웃어야 해, 말아야 해?
다만,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장점은 여기서 끝난다. 영화라 하면은 보통 스토리적인 측면이나 캐릭터의 매력에서 그 흥미를 따져 보게 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따질 게 없다.
어린아이들을 겨냥해 단순한 스토리를 짰다기에는,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에게도 한참 부족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창의력을 혐오하는 네더의 마녀, ‘말고샤’가 오버월드를 점령하려 하고, 말고샤를 막기 위해 힘을 합쳐 저지한다는 스토리는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다.
그렇다면 특이점을 주기 위해 말고샤의 이야기라도 좀 더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 영화의 메시지를 던져 주는 역할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말고샤는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남는 건 ‘창의력’도 ‘개연성’도 아닌 웃음 뿐이다.
다른 캐릭터의 매력도 그다지다. 영화의 주 등장인물은 제이슨 모모아와 잭 블랙을 포함해 다섯 명이나 되는데, 캐릭터가 많다 보니까 이 인물 하나 하나의 서사를 설명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최대한 압축해서 설명하고, 인물끼리 연관 지어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점은 느껴지지만 그게 느껴져서 더 문제다. 더 보여줄 게 있는데 관객들이 지루할까 봐, 빨리 오버월드에 들어가기 위해 생략했다는 게 보인다. 설정 자체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인데 아쉽다.
그렇다고 이렇게 도입부에서 보여줬던 서사를 오버월드에서 다 풀어 주지도 않는다.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헨리’는 오버월드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했지만, 정작 헨리의 창의력을 보여주는 부분은 스티브의 노련함에 가려진다. 힘든 현실에서 도피해 오버월드에서 마음껏 창의적으로 살던 스티브는, 결말에서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것을 선택하지만 그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스티브가 현실로 복귀할 이유가 있을까, 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나마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캐릭터는 쓰레기맨 ‘개릿’이다. 한때 잘나가는 게이머였지만 지금은 망하기 직전인 게임 가게를 운영하는 남자. 인생을 반쯤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한 이 캐릭터는 오버월드에서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게 된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 다시 이름을 높이게 되는 결말은 이 캐릭터를 위한 결말이 아닐까 싶다.
영화 중후반부부터 이 다섯 명은 두 무리로 나눠져 활동하게 되는데, 제이슨 모모아와 잭 블랙이 껴 있는 세 명 무리에만 비중이 꽉 차 있다. 결말에 가까워서야 나탈리와 던이 갑자기 다시 합류하고, 얼렁뚱땅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두세 명으로 영화를 전개하기엔 너무 조용할 것 같아 일단 끼워 넣고, 필요 없어지니 넣어뒀다가, 결말이니까 다시 데려온 느낌이 강하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좋다고 웃어야 하는지, 실망이라고 울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팬이라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게임 유저라면 관람을 추천한다. (단, 개연성에 민감하다면 비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