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5일 개막한 쇼뮤지컬 <드림하이>가 순조롭게 공연 중이다.
2011년 방영된 드라마 <드림하이>를 원작으로 하는 이번 작품은 드라마 방영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OST와, 뮤지컬로 각색하며 추가된 새로운 곡들을 무대에서 함께 선보인다. ‘쇼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퍼포먼스의 비중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퍼포먼스는 새롭게 추가된 넘버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며 잊지 말아야 할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퍼포먼스 및 넘버를 중심으로, 이번 공연의 대표적인 몇 장면을 소개해본다.
과거의 내게 보내는 응원 ‘Look in the mirror’
뮤지컬로 각색되며 추가된 넘버로, 1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곡이 바로 ‘Look in the mirror’다. 극중 글로벌 스타로 성공하지만 슬럼프를 겪던 삼동은 옛 스승인 오혁의 제안으로 기린예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잠깐 일하게 된다. 'Look in the mirror'는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삼동이 곳곳을 둘러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전신거울을 연상시키는 사각형의 프레임이 등장하고 그 속에서 교복을 입은 그 시절의 삼동이 어설프게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그를 지켜보던 오혁이 노래를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봐 할 수 있잖아"라며 노래하는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삼동에게 응원을 보내는 진정한 선생님이다.
삼동 역시 서툴지만 간절하게 꿈을 꾸던 그때의 자기 자신을 거울 너머로 애틋하게 지켜본다. 어릴 적 꿈이 어느덧 현실이 되었는데, 왜 현재의 삼동은 여전히 불안하고 외로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그 꿈을 계속 가꾸고 지켜나가는 것 또한 외롭고 힘든 일이다. 과거의 자신에게 응원이 필요했듯이 지금의 삼동에게도 응원이 필요하다.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 지금의 자신에게도 닿기를 바라며 삼동도 노래를 시작한다. 그렇게 오혁과 삼동의 목소리가 함께하는 ‘Look in the mirror’는 꿈을 품고 사는 모든 순간의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응원가가 된다.
유쾌한 빌런 송 ‘하이에나 스윙’
<드림하이>의 주인공은 옛 드림하이 4인방과 선생님인 오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그 반대편에 선 교장과 이사장 마두식이다. 케이팝의 파이가 엄청나게 커진 지금, 이사장은 투자를 받아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학교를 학원으로 바꾸고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려 한다. 거기다 이참에 눈엣가시인 오혁도 쫓아내고, 그가 주도하던 1학년 쇼케이스도 없애자며 교장을 설득한다. 교장은 죄책감을 느끼지만 돈 이야기에는 솔깃해하는 모양새다. 갈등하다가 결국 돈 이야기에 넘어가버린 교장과 마두식이 함께 추는 춤이 바로 '하이에나 스윙'이다.
넘버 제목처럼 두 사람은 재즈풍 음악에 맞춰 앙상블과 함께 스윙댄스를 신나게 춘다. 돈 냄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며 주거니 받거니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한 편의 콩트를 보는 듯 흥겹다. 전형적인 ‘빌런 넘버’이지만 마두식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허황된 꿈을 꾸는 교장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가 보여 어쩐지 마음이 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느 페어이느냐에 따라 장면의 분위기가 각양각색일 것 같은데, 박경림-김주호 페어는 최고의 합을 보여주며 이들이 악역이라는 것을 잊고 함께 즐기도록 만들어 주었다.
스트리트 댄스의 계보를 그려보는 ‘댄스의 역사’
‘댄스의 역사’는 기린예고 학생들을 만난 드림하이 원년 멤버들이 지금의 케이팝이 있기까지 큰 영향을 미친 스트리트 댄스의 흐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시작되는 퍼포먼스다. 올드스쿨에 속하는 1970년대 팝핀, 락킹, 비보잉부터 뉴스쿨에 해당하는 하우스와 힙합까지. 눈으로 보면 익숙하지만 그 이름과 연결 짓지는 못했던 다양한 춤사위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어서 춤의 황제라 불렸던 마이클 잭슨의 춤과 1990년대 한국에서 한 획을 그었던 댄스곡들도 만나보며 오늘날의 케이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 본다.
사실 이 퍼포먼스는 이야기의 흐름과는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드림하이>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을 꼽자면 많은 관객이 떠올릴 만한 장면이다.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춤 자체에 집중하며 춤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앙상블인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춤에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다 보면 각각의 댄서들이 모두 고유한 춤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좋아하는 춤선을 가진 댄서 한 명을 기억해두고, 나머지 공연 시간 동안 그가 어떻게 춤을 추는지 지켜보는 방식으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어른의 방황을 그린 ‘오혁 찾기’
2부를 대표하는 퍼포먼스다. 오혁은 교장이 자신을 해고하고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 중인 쇼케이스도 무산시킬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되고 방황한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맞설 용기는 부족하기에 일단 도피를 택한 것이다. ‘오혁 찾기’는 학생들이 사라진 그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며 시작된다. 불안한 사이렌이 울리고 어두워진 무대에 여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카드를 뒤집어 같은 그림을 찾는 게임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작되었다는 이 퍼포먼스에서 댄서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때론 빌딩숲이 되고 때론 군중이 된다.
무대 위를 빙빙 도는 댄서들 사이에서 오혁과 그를 찾는 백희, 제이슨, 진국, 삼동의 모습은 잠깐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오혁 찾기’라는 제목과 달리 이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면 찾아 다니는 사람보다 헤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찾으러 다니는 이들도 도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 댄서들의 절도 있는 동작과 거기에 어울리는 영상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다시 질서 속에서 무질서를 만들어내며 방황하는 어른의 모습을 그려낸다. 대사나 노래 없이도 무대를 이야기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커튼콜을 장식하는 ‘Dream High’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것은 <드림하이> 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바로 그 노래, ‘Dream high’다. 히트한 여러 OST 중에서도 이 곡은 드라마의 마지막화를 장식하며 작품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집 배달원 분장을 한 박진영이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철가방을 내려놓고 춤을 추면, 군중들 사이에 숨어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나와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던 플래시몹 장면. 당시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많은 추억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곡은 오랫동안 학예회나 운동회에서 단골로 흘러나왔다.
쇼뮤지컬 <드림하이>는 이 곡을 커튼콜에서 재연해 보인다. 추억 속 철가방 연출도 그대로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모든 출연진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학교에 닥친 위기는 다행히 넘겼지만, 이후 삼동이 슬럼프를 완전히 극복했는지, 오혁이 어떤 교사로 살아가는지 작품은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커튼콜이 이어질 뿐이다. 극적인 사건보다 매일 매일의 고민과 함께하는 현실의 삶과 닮은꼴이다.
꿈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꿈’ 하면 우리는 역경을 극복한 끝에 결국 꿈을 이루고 마는 기승전결을 상상하지만 현실에서의 꿈이란 있다가도 사라지고, 저 멀리서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불확실한 것이다. 어느새 너무 거창해진 꿈이라는 단어를 커튼콜의 분위기처럼 가볍게 만들어본다. 그래야 더 오래, 즐겁게 가지고 걸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