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나와 거리가 멀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목하길 바란다. 미술관과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대게 모두가 비슷하다. 예술을 현실과는 다른 고차원적 세계라고 여기거나, 작품을 보아도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저자는 자신있게 말한다. 예술은 현실과 시대를 반영한 것이고, 책 한 권으로 작품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예술 기초체력을 길러주겠다고 말이다.
나는 미술관에 가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낸다. 예술을 음미하며 깊은 감동에 잠기거나 작품에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어서가 아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해 벽에 붙은 설명이나 팸플릿을 꼼꼼히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모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감동이나 깨달음보다 육체적인 피로가 먼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내게 미술관은 점차 피곤한 장소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피로를 극복해 보고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펴기에 앞서 과연 믿을만한 사람이 집필한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미술에 대해 정말 잘 아는 사람에게 설명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서치해보니, 테드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정도로 아주 유명하면서 대중들에게 예술을 쉽게 설명하는 작가였다. 작품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지않고, 다양한 배경지식을 설명하며 ‘진짜 가치’를 알려주는 동영상 강의를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영상을 보면 책에서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시청을 적극 추천한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예술이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미술의 기본 개념부터 차근히 설명하고 있다. 회화와 조각이 무엇인지, 시대마다 미술 재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준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회화’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동안 그저 그림으로 ‘소위 말해 ‘퉁’ 쳐왔는데, 평면 위에 색을 이용해 표현된 그림 유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얼마나 입문자들을 위한 예술 도서인가 감이 올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그동안 모호하게 느껴졌던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 준 부분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것도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먼저 ‘이것은 좋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엉터리 정의 같지만, 누군가가 예술이라고 여기고 만들면 무엇이든 작품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쉽다. 누군가가 예술이라고 여기면 예술이다. - 그러나 ‘그것이 훌륭한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더 미묘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24p
예술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주관적인 감상평은 남겨도, 좋다 혹은 아니다로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이를 재단할 기준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훌륭한 예술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을 가져왔다.
훌륭한가?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을 잘 표현해냈는가/ 아름다운가? 물리적인 것과 더불어 도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가/ 흥미로운가? 감상자가 주관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했는가.
특히 훌륭한가를 설명할 때 키스해링의 작품을 예시로 전개한 것이 흥미로웠다. 키스해링이 막대기를 표현하고자 막대기를 그렸고, 사람들이 막대기라고 작가의 의도를 인식했을 때 이는 표현이 잘된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는 작품이 많은 현대인만큼 해당 기준은 어디까지 적용되는 것일까 혼자 고민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책의 뒤표지에 쓰여있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라는 말이 마음에 박혔다. 나는 미술관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설명을 읽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사실 며칠 후면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작품을 즐기지도, 눈에 담지도 못한 것이다. 미술의 오브제와 기법부터 미술품 구매에 대한 주의 사항까지! 한 권의 책 덕분에 앞으로의 미술관 여정이 재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