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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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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를 입고 활약하는 영웅 서사에는 원체 호기심이 생기질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나 나는 같은 인간 대 인간 상태에서 이건 정말 특출나게 대단해!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 때 주인공을 더 비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늘을 날고 자동차를 번쩍 들어올려 바닥에 꽂기보단 인간계에서 활약하는 난세의 해결사가 영웅의 모습에 더 가깝달까?


최근 종영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인 양관식의 다정하면서도 무쇠스러운 성품을 높이 사는 이유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관식이 같은 사람이 내 편이라면 모진 세상 풍파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아 마음이 든든해진다. 내 사람을 끝까지 지켜 내는 그 숭고한 사랑이 어쩌면 우리한테 진짜 필요한 힘일지도 몰러! 하고 줄줄 울며 생각했었다.


전에는 가볍게 흘려 봤다면 요즘엔 다시 보이는 영화 하나가 있다. 파도 파도 끝없이 속출하는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아내느라 시간 꽤나 들겠으나 바로잡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과도기를 통과하는 현시점에서 ‘정의 구현’이란 말은 마냥 쉬어 빠진 소리가 아닐 거다.


보고 나면 살짝 묘한 여운이 남을 수도 있다. ‘인정(人情)’에서 비롯되는 진짜 강인함. 액션 장르에서 따뜻한 구석을 따지는 게 좀 실없긴 한데 영화적으로나 캐릭터적으로나 그런 면모를 상당 부분 갖추고 있어 타 작품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그 희소성은 결국 나를 신나게 만들었고 지금 난 이렇게 떠들고 있다.


어느 정도는 정의롭고 어느 정도는 비겁한 우리. 평범한 우리에게 쌓인 그간의 앙금을 시원하게 박살 내 줄 액션 영화 <더 이퀄라이저>를 데려왔다. 전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서 대신 극노해 주는 ‘로버트 맥콜’의 사이다 액션을 보며 잠깐이라도 후련해지시길!




사필귀정 액션의 정수 <더 이퀄라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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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으면 벌을 받지만 요즘 세상엔 운 좋게 벌을 피할 수 있지"

 

모든 일은 반드시 정당한 길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사필귀정’. 영화 <더 이퀄라이저>는 범죄에 철저히 보복하는 복수 액션이자 죄를 밥 먹듯 일삼는 천하의 인간 쓰레기들을 일망타진하는 덴젤 워싱턴만의 참교육 액션이다. 뒤에서 남몰래 약자를 돕는 그의 정의로운 활약상은 영화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이 글은 영화 <더 이퀄라이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편]

“법이 지켜주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

 

DIA요원(국방기밀요원)이라는 과거를 지우고 죽은 사람이 된 로버트 맥콜(덴젤 워싱턴). 허나 이 사실은 그를 아는 사람들 얘기고 보스턴 도시에서는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 새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낮에는 건축 자재 마트에서 일하고 밤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카페에서 사별한 아내의 습관을 따라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 리스트에 있는 책 한 권을 읽는다.


카페에서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걸어 오는 소녀와 안면이 있다. 질 나쁜 이들에게 그녀는 그저 어린 콜걸 ‘테리’일뿐이고, 맥콜에겐 가수라는 꿈을 간직한 평범한 십대인 ‘알리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춘업소 사장 슬라비에게 알리나가 심각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맥콜은 분노가 폭발하게 되고 그녀를 대신해 복수를 실행하기로 한다. 맥콜이 슬라비 무리들을 처단한 소식은 러시아 레드 마피아의 두목인 푸쉬킨에게까지 닿게 되고, 푸쉬킨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킬러 테디에게 이 사건을 케라고 지시한다.


그래 봤자 이들은 맥콜의 손바닥 안이다. 맥콜은 푸쉬킨이 운영하는 불법 사업의 씨를 말리기 위해 그를 돕고 있는 부패 경찰의 대비책 메모리와 마피아 조직과 연관되어 있는 미국의 정치 인사 명단까지 FBI에게 넘긴 다음, 푸쉬킨이 소유한 원유 밀수 배까지 모조리 폭파시켜 버린다.

 

야비한 테디가 맥콜의 마트 동료들을 인질로 삼아 그를 유인하면서 둘은 한판 뜨게 된다. 허나 홈마트는 맥콜의 구역. 마트에 있는 자재를 활용해서 만든 트랩으로 테디 조직을 전부  제거한다. 맥콜은 모스크바로 날아가 최종 보스인 푸쉬킨까지 처리하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온다.


길가에서 우연히 알리나를 마주친 맥콜은 그녀의 행복을 빌어 준다. 떳떳하지 못한 인생이었지만 떠난 아내에게도, 자신에게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약자를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2편]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고통이 있어. 괴롭기만 한 고통과 변화하게 하는 고통”

 

맥콜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을 더 활발히 돕기 시작한다. 이번엔 택시 운전기사로 일하며 비공식적 행보를 이어간다. 단골 서점 주인의 딸아이를 이혼한 전남편에게서 구해 내고, 여자를 성폭행하고 자신의 택시에 태워 보낸 정신 나간 부잣집 도련님들을 두들겨 패 주고,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친누나와 이별한 택시 단골 손님 노신사의 가족 상봉을 돕고, 방황하는 학생 마일스를 다시 예술학교로 인도하며 이중생활을 꾸려 나간다.


그러던 중 그의 오랜 동료이자 소중한 친구 ‘수잔’이 갑자기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급작스러운 비보는 맥콜의 분노 버튼을 제대로 눌렀다. 사건을 추적한 끝에 드디어 배후의 인물을 찾아낸다.


자신과 같은 정보국 요원인 전 동료가 부인과 함께 자살한, 일명 브뤼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벨기에로 떠난 수잔이 호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남자들에게 피습을 당했고, 수잔을 피습한 괴한들은 사실 그녀의 파트너이자 자신의 후배였던 ‘데이브’와 한패였다는 것. 브뤼셀 사건 또한 누군가에 의해 자살로 위장된 살해 사건임을 알게 된 맥콜은 모든 것을 다 걸고 데이브와 그의 요원들을 소탕하기로 한다.


맥콜은 데이브 무리에게 대놓고 “내가 너희를 다 죽일 거야” 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태풍이 거칠게 몰아치는 날, 맥콜은 아내와 살던 예전 집 동네에서 데이브 무리와 최후의 소탕전을 벌인다. 데이브가 수잔의 심장을 겨냥했던 것처럼 맥콜도 그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며 복수를 이룬다.




맥콜식 정의 구현


 

캐릭터가 끌고 가는 힘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강강약약이라는 단순한 이야기에 입체감이 생기는 건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힘 때문일 거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그 정의를 실천하는 것도 결국 작품 속 인물이 해내는 일이다.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로버트 맥콜’이라는 인물은 참 흥미로운 캐릭터다. 양극단의 기질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고요하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면모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었던 과거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타인에게 인정을 베푸는 따스한 면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날의 회의감을 다른 사람을 돕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걸 테다. 좋은 뜻으로 참 복잡한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사회악을 처단할 때에도 자신만의 철학에 기반하여 움직인다. 신박해서 정리해 보았다.


 

1.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리로 가게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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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쁘다. 인간 쓰레기를 처리하는 동시에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까지 챙긴다. 그를 보고 있으면 불철주야 일하는 cctv 같다. 누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발견해 낸다. 맥콜은 모든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관용은 가망이 보일 때나 베푸는 것. 폐기물 급 인간은 빠른 처리가 답이라 믿고 있다.


그는 백프로 약자의 편에 서서 범죄자를 처단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하려 한다. 경비원 채용시험을 준비하는 마트 동료 랄피의 다이어트를 돕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알리나에게 그럼 네 세상을 바꾸라고 조언하기도 하며 그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바로 그 부분이 맥콜을 더욱 강강약약스럽게 만들고 있다. 불의에만 가차없으면 된다. 사람대접은 사람한테만 하면 된다는 그다.

 


2. “시간 아깝다. 한 큐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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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콜은 열 받는다고 해서 괜히 몇 대 더 때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로지 극한의 효율로 범죄 조직을 타진하고 싶어 한다. 놈들에게 드는 시간도 아까우니 복수도 에너지 낭비 없이 신속·정확하게 이뤄진다.


그에겐 특이한 버릇이 있다. 격투 전 시뮬레이션 돌리기. 스톱워치로 싸움에 드는 시간을 미리 계산해 보고 실제로 그 시간에 딱 맞춰 싸움을 끝낸다. 주변에 있는 도구(신용카드/와인 따개/술잔/전자렌지/에어타카/베이킹소다 등)를 재빨리 스캔한 다음 괜찮은 것을 골라 즉석 무기로 활용한다. 시뮬레이션은 특유의 슬로우모션 장면으로 진행되지만 이 모든 일은 3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다 이루어진다.



3. “딱 한 번 참회할 기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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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적을 처단하기 전에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도덕적 품성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신사가 또 어디 있나. 한번 잘 생각해 보고 이실직고할 거 있음 빨리 하고 넘길 증거 있으면 후딱 넘기라며 최후의 경고를 날린다. 그가 참회할 기회를 줄 때 정신 차린 놈은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진다. 못 알아먹으니까 악당 팔자인 거다.


나름 등급을 가려 단죄에 들어간다. 구분하자면 질 나쁜 일반인들은 그래도 목숨은 붙여 놓는다. 관절 반대로 꺾기, 신용카드로 이마 긋기, 식탁에 머리 찧기, 손가락 벌려 찢기 등 맥콜이 나름 수위를 조절했겠지만 그래도 치명상인 건 확실하다. 이 사람들보다 더 최악인 자들은 이미 저세상에 가 있다.




당신에게 ‘정의(正義)’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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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보물찾기를 빼놓으면 섭섭한 1997 소풍의 현장. 같은 말로 부정부패의 축소판. 할머니가 손주 대신 보물찾기 쪽지를 찾아주거나 부모님이 손가락으로 쪽지가 숨겨진 곳을 은근슬쩍 가리키는 혈연 스파이들의 활약이 대단했었다.


당시 나는 공정이라는 단어의 뜻은 정확히 몰랐으나 ‘아니 애들 일에 어른이 왜 껴?’ 하는 공정 비슷한 뉘앙스로다 혼자 조용히 분노했다. 옆에서 왜 이렇게 못 찾냐고 말하는 어른들이 죄다 이상해 보였고 못 찾는 놈만 바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느낄 건 치사함밖에 없었다.


다음 연도에도 유치 뽕짝한 짓은 되풀이 되었고 해탈해 버린 나는 찾으면 찾는거고 못 찾으면 못 찾는거지 하다가 끝에 가서 참여상 느낌으로 주는 노트 한 권을 받게 됐다. 나는 굵고 짧게 ”흥!“ 한 다음 그 일을 치워 버렸다.


그때의 일은 깜찍한 편에 속한다고 여길 만큼 시간이 흘렀다. 영화보다 더한 게 현실이라고 느낄 만큼 머리도 커졌다. 이건 아니지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단 세상이 원래 그렇지 뭐 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 물정 모르는 소리처럼 치부되어 왔으니까.

 

상식에 부합하여 세상은 돌아가지 않았고 그 덕에 동물의 왕국보다도 못한 무법의 사태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의와 질서를 갈망했고 이를 통해 평범한 이들이 진정한 난세의 영웅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그 구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늘 관심의 끈을 쥐고 있기로 한다.


산책을 하며 무심히 지나쳤던 꽁초를 줍는다. 말보다는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정의를 실행하고 있다. 정의는 이렇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생활 밀착형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범지구적 차원의 정의 구현에 동참 중이다. 먼지만큼 작은 그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응당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맥콜은 맥콜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각자의 정의를 실천하면서 말이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단 분명 그게 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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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ch.ART
맥콜, 존윅, 전당포 아저씨~~
얌전히 지내는 동네 아재들을 건드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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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08:30:0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