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사실과 다를 바 없이 그린 그림을, 누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려낸 그림을, 또 어떤 누군가는 색칠이 아름답게 된 그림을 보며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특별하게 정해진 게 없다. 어느 날은 몬드리안의 그림이 좋고, 어느 날은 모네의 그림이, 어느 날은 고흐의 그림이 좋다. 그림에 대한 책을 여러 번 읽어 왔지만 여전히 나에게 그림은 환상 같은 것이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해'라고 그린 그림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이 대개 그림이나 화가를 소개하는 책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도슨트처럼 생각하기>는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 어느 화가 누구누구의 그림을 얘기하는 것도 얘기하는 건데, 보다 심층적이고 학문적으로 미술에게 접근한다.
예술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일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지식을 쌓으면서 예술을 사랑하려면 바로 이 책이 필요하다. 이제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부터 시작해 보자.
이 책은 첫 장부터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 보았을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것도 예술일까?"
아주 먼 과거 사람들은 예술이란 아름다워야 하고, 훌륭한 것이어야 한다는 등의 정의를 두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예술을 훨씬 광범위하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기준이 파다하다고 하지만,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주관적인데, 옛 사람들은 어떤 객관성으로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했을까. 짐작하건대 예술이라고 정의되어서 예술이 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어떠한 것을 예술로 받아들이기에, 그것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창조자조차도 그것이 예술이 될 줄 모르는 상태로 그 작업을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그림을 두고 '욕망'이라는 말로 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 내면에는 실용성이 없는 무언가를 그저 창조하려는 욕구가 있다. 갇혀 사는 유인원이 주변에 보이는 재료로 그린 그림이나 거미줄, 비버가 만든 둑에서도 예술적 기교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욕구는 아마도 우리 인간의 고유한 특성일 것이다. 예술의 정의를 내리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그것을 예술로 여길지 판단하는 행위는 확실히 인간만의 특성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오래된 이 동굴벽화들을 우리가 자각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욕구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어둠 속에서 어렵게 불빛을 비춰가며 미래의 후손들이 볼 거라는 확신도 없이 그들이 사는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을 것이다. 창조의 욕구는 모든 기본욕구가 충족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충족되지 못했을 때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창조적 욕구에서 시작된 모든 것은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더라도, 혹은 잘난 어느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무언가라면 그게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심미적이고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그건 주관적인 것이지 않은가. 더불어는 시대에 따라 '아름다운 것'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다른 걸 보면 어느 것이, 어디까지가 예술인지는 확실히 명확하지 않으면서 다채로운 듯하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방금 언급한 시대에 따라 아름답다 여겨지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우리는 미술 사조로 정리해 두었다. 사조란 '한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을 말한다. 모더니즘,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다양한 것이 있는데, 미술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때로 우리를 예술과 몇 걸음 멀어지게 만든다. 한두 개도 아닐 뿐더러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해 모르는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런 건 그 시대의 역사와 함께 공부하면 쉽다지만 막상 공부하려 하면 그 방대한 내용에 또 한 번 거리를 두게 되곤 한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에는 각 사조를 설명해주면서, 그 시대의 작품을 보여주는 장이 있다. 동굴벽화로 시작하여,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벽화와 건축 양식 혹은 사상들을 알아볼 수 있다. 책에 나온 여러 작품 중 개인적으로 '낭만주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카스타프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이다.
계몽주의와 관련된 이 사조는 인간이 가진 이성의 힘 그리고 자연의 숭고한 위엄 앞에 연약한 인간 존재와 육체를 강조한다. 사랑, 희생, 가난에 대한 멜로드라마 같은 주제를 다룬다. 심금을 울리기 위해서라는 다분한 목적이 담겨 있다. 경외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자연의 세계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 절벽을 건너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자연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무한한 반면, 인간은 보잘것없다. 이런 느낌을 숭고함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연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열정, 인간을 작고 보잘것없게 느끼도록 하는 존재를 그리는 낭만주의 전통의 일부다.
낭만주의라고 해서 아름다운 것, 환상적이고 미적인 것에만 치중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성과 멀어져 감상과 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것(그래서 드라마 같다는 표현을 쓴 것인가 보다)의 표현에 가깝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사용이 그림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아름다운 것을 그렸다는 말로 쓰이기는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낭만주의라는 말과는 조금 모순되게 예쁜 것만을 그려내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점이다.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한다면 인상주의 그림이 이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이름을 언급하면 다수가 알만한 모네의 그림도 이에 해당된다.
인상주의 회화는 빛에 대한 연구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야외에서 그렸다. 물감을 지나칠 정도로 두껍게 칠해, 멀리서 보아야 형태가 드러나고 가까이 다가가면 알아보기 힘든 것이 특징이다.
사실적이지는 않고 대충 보아도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상주의 그림은 물감을 여러 형태로, 여러 색깔을 사용해, 보고 있으면 환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흐릿하고 몽환적인 느낌도 있어, 다른 시대 작품보다 매니아층이 탄탄할 듯 하기도 하다. 물감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다는 점에서 손으로 만져보고 싶기도 하다.
한편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와 사뭇 다르다.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 미학에 감탄했지만 아름다움과 빛, 색만 중시하는 측면에 비판적이었던 미술가들이 추구한 양식'이라고 한다. 색은 비현실적인 색을 선택하고, 바라보는 각도를 바꾸거나 형태를 일부러 왜곡하고 축소하기도 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같은 인상주의지만 그림을 보며 느껴지는 감상이 다르다. 두 사상의 그림을 대조하여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그리고 나는 이보다 시간이 흘러 나타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도 좋아한다.
인터넷에 다다이즘을 발견하면 당황스러운 작품 하나가 나올 것이다. 직접 보았을 때 그 감각이 살아나니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겠다.
초현실주의에 앞서 제1차세계대전 중에 생겨난 사조로, 전쟁의 공포에 맞서기 위해 일상적이면서도 기이한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뒤샹의 1907년 작품 <샘>이 대표적 예로, '발견된 오브제' 조각이다. 일상적인 물건이더라도 일상적인 맥락에서 벗어나도록 옮겨 놓으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낯설고, 새로워진다. 다다이즘은 기이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미술 사조다.
나에게 다다이즘은 해방과도 같다. 기존에 있던 것으로부터의 탈피. 새로운 것으로 향하겠다거나 바꾸겠다는 지향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파괴와 벗어나겠다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따지고 보면 다다이즘은 새롭고 신박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아름답다는 감상에 젖기는 어려운 예술이다. 기이하고 당황스럽고 암호학스럽기도 한 작품들이 의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다다이즘은 이상한 예술이라 생각될 수 있는데 그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그들이 도피하고 해방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를 역사를 통해 배우고, 작품을 통해 담아낸 의미를 찾아보다 보면 다다이즘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기이하고 참신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시각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다다이즘 작품 감상을 추천한다.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랑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용은 아주 다르다. 초현실주의는 사실적인 것보다는 무의식, 꿈의 세계 등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카를 융과 사드 후작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 미술은 꿈과 잠재의식에서 드러나는 기묘함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다다이즘 미술이 일상생활을 기묘하게 바꾸었다면, 초현실주의는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마음의 심연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면 정신이 멍해지게 될 때가 있다. 다다이즘과는 마찬가지로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기묘하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만큼 한 번 빠지고 나면 더 알고 싶어지고 궁금해지는 게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멋이자 맛인 것 같다.
미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데다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학문은 사조를 먼저 배워야 앎의 재미를 더 충만히 느낄 수 있다고 가히 말해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그 가치를 똑똑히 하고 있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외에도 미술 작품의 복원에 대해서, 가치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잘 설명해 두었다. 끝내주는 교양 수업을 전공 수업처럼 들은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미술관에 가거나 혼자 갔을 때 이 책의 내용을 되새기며 작품을 감상하면 그 가치가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