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단지 미술관이라는 장소의 상징성이 좋아 가는 사람도 있다.
주말엔 문화생활을 좀 해야겠다던지, 왠지 잠자는 창의력을 일깨워줄 것만 같은 장소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들. 나는 대개 그런 편이다. 미술에 다분히 호의적이지만 예술작품이 주는 흥미보다는 장소가 주는 편의와 분위기 자체가 아직은 더 좋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11장에 거쳐 유쾌한 미술사 교수님의 직강을 듣고 나면, 미술관은 발소리마저 숨죽이는 정적인 공간에서 왁자지껄 여러 생각이 나와 떠드는 활기찬 장소로 바뀐다.
이는 예술의 정의부터 역사, 또 다양한 미술품의 제작과정을 비롯해 예술인들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롭게 일깨워주는 화자의 역량 덕분이다.
레오나르도 다비치가 사실은 ‘인턴’이었다면? 지금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인턴이지만, 실제로 다비치는 유명 화가의 그림 작업 보조를 도맡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비치의 작품이 미술관의 가장 대목 좋은 자리에 위치할 정도로 ‘명실상부’ 스타 화가이지만, 그에게도 실력과 경험을 쌓기 위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뿐만 아니다. 그의 작품 ‘모나리자’에서 미묘한 모양새의 입꼬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올라간 건지, 내려간 건지 확실히 ‘이렇다’ 하기 힘든 입모양의 비밀은 사실 여러 번의 붓 터치에 있다. 올리기도 했다, 내려 그린 흔적이 모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림에서 두 모습 모두를 보았던 것이다.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저자는 미술품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일깨워 주는 여러 작품을 소개한다.
그중 가장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작품은 단연코 ‘다비드상’이다. 다비드상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차디차게 흰 색감의 남성 조각상이지만, 실은 도니텔로, 베로키오, 베로니니 등 다른 여러 예술가들이 위의 사진처럼 다비드를 소재로 다양한 모습의 조각상을 주조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겁내던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 장군,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를 당당히 베어버린 다비드의 서사가 각기 다른 크기와 색감, 시점으로 담겼다.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다비드’를 마주하던, 책을 읽는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다른 세 명의 다비드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이끄는 미술의 세계로 발을 들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고가 확장되며, 더 너른 공간에서 예술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관에만 가면 에스컬레이터에 탄 듯이 걸음이 멈추지 않는다면 만나는 예술 작품들을 반갑게 반기고 싶다면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로 예술작품을 보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보자.
그림 한 폭, 조각 한 점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해설해 줄 '나만의 도슨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