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단지 세상의 끝>의 지은이인 장뤼크 라가르스는 57년 2월 14일 프랑스 오토손 지방 에리쿠르에서 태어났다. 이후 브장송 국립 연극원에 등록 후 1977년 연극원 동기들과 “마차극장” 이란 아마추어 극단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는 희곡에 서사, 시 등을 첨가하여 끊임없이 연극의 언어를 찾아 연구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베를린에 체류하며 쓴 <단지 세상의 끝>은 에이즈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주인공 루이가 십 년 전 모종의 이유로 떠난 가족에게 다시 돌아오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단지 세상의 끝>은 다른 희곡 대비 조금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작품 속 루이는 가족들과 함께 일어난 일을 정리해서 말하는 서술자이자 해설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또한 루이를 이미 죽었다고 간주한 뒤, 그가 죽기 전의 마지막 일상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루이의 가족들은 그가 집을 떠나있을 동안 서운했던 점을 마구 쏟아내며 그를 질타한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반박도, 그렇다고 대답도 하지 않고 웃음으로만 상대한다. 대화 상대는 있지만 상대가 허공에 대고 외치고 있는 듯한 이런 희곡 구성 방식을 ‘솔리로키(soliloquy)’라고 한다.
또한 루이가 집을 떠난 이유나 과정이 서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들의 목소리 톤이나 연기로 루이의 사정을 추측해야 한다. 즉, 배우의 연기가 매우 중요한 작품인 것이다.
해당 작품은 함께 있지만 해체되어 가고 있는 가족의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희곡 속 루이는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 가족과 마지막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그를 원망하고 질타의 말을 쏟아붓는다. 이런 가족에게 루이는 웃음만을 지어 보이지만, 독백을 통해 내면의 괴로움을 끊임없이 울부짖는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히는 루이와 그런 그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작가는 끊임없이 묻고 있다. 가족의 정의는 혈연, 인연, 입양 등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친족 집단을 뜻한다.
우리는 때론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인 가족을 남보다 함부로 대할 때가 많다. 친구, 연인과 다르게 가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가족이 상처를 받을까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혼자 삭힐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말할 수 있는 입이 있고, 언제나 의지만 있다면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죽어가는 루이가 ‘단지 세상의 끝’에서 가족에게 찾아간 이유도, 이러한 대화를 통해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루이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가 왜 집을 떠났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아파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영원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