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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클래식만큼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도 드물다. 우리는 수많은 TV와 영화, 그리고 광고와 브이로그 속에서 클래식을 접한다. 때로는 장엄한 순간에, 때로는 일상적인 장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콘텐츠의 몰입을 더한다. 그 익숙한 선율을 들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반가움을 표현하게 되지만, 정작 그 곡이 어떤 제목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작곡했는지, 어떤 배경 속에서 태어난 음악인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익숙함이 낯설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함, 클래식은 언제나 그 아이러니한 경계 위에서 존재한다.

 

[더벨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은 바로 이 지점에 깊이 고민을 더한 공연이었다. 어떻게 해야 클래식이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을지, 그 낯섦의 장벽을 어떻게 낮춰야 할지를 진지하게 탐구한 결과 그들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우리의 유년 시절을 책임졌고, 지금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머무는 영화의 감동과 그 멜로디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그렇기에 그들은 클래식이라는 언어를 친숙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2025년, 롯데 콘서트홀에서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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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서자, 관객석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부터, 차분하게 자리를 찾아 앉아 유심히 포스터를 바라보는 중년 노부부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클래식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잔뜩 채우고 있었다. 이후 악기 조율의 소리가 들렸고, 조명이 어두워지며 오케스트라 공연은 막을 올렸다.


1부 무대의 첫 곡은 [이웃집 토토로]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과 드뷔시의 ‘꿈’을 접목한 편곡이었다. 둘 다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곡이기에, 자연스럽게 하나로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후 공연은 하나의 흐름을 따라 계속해서 이어졌다. 리스트, 쇼팽, 라벨의 고전 명곡들 위에 지브리의 음악이 가볍게 내려앉아, 새로운 결을 만들어냈다. 송영민 피아니스트는 이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와 동시에 해설을 맡아, 관객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곡과 곡 사이의 연결다리를 놓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연주자들의 호흡이 바뀔 때마다 그는 무대에 올라 이번 곡은 어떤 방식으로 편곡이 이루어졌는지, 다음 곡은 어떤 부분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지, 두 곡이 담고 있는 감정의 방향은 어떤지를 차근차근 짚어주었다. 그 해설 덕분에 나는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느끼고 해석하는’ 공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2부 무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리지널 곡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1부가 클래식과 지브리 음악의 절묘한 편곡을 통해 ‘어떤 곡이 어떤 방식으로 엮였는지’, ‘어디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지’를 해설과 함께 경험하게 했다면 2부는 그 모든 설명을 내려놓고 온전히 음악 그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무대에선 이제 더 이상 해설자가 등장하지 않았고, 대신 익숙한 지브리의 선율들이 차례차례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배달부 키키], [원령공주] 등 지브리를 대표하는 작품들의 테마곡이 연이어 연주되었고, 관객들 각자의 기억 속 영상 없이도 떠오르는 선명한 장면들을 유영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클래식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2부의 시간이 단순히 '감상'의 시간은 아닌, 우리가 처음으로 클래식을 ‘우리 안의 언어’로 흡수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1부에서 설명과 해설을 통해 배운 ‘클래식 감상의 방식’을 우리 스스로가 녹여내고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멜로디를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리듬의 변화와 화성의 흐름, 악기 간의 대화와 균형을 자연스럽게 감지하게 되는 경험까지, 설명 없이도 클래식의 구조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음악 속에 흘러들었다. 해설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 감각만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어떤 부분에 감동하는지, 어떤 순간에 심장이 뛰는지를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1부가 음악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면, 2부는 그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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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민 해설자의 말에 따르면, 과거 사람들에게 클래식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기에 30분이고 1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그들에게는 더없이 재미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손끝으로 넘기는 영상이 수백 개씩 쌓여 있고, 눈앞의 자극은 쉼 없이 몰아친다. 짧고 강한 메시지에 익숙해진 시대 속에서, 고요하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점점 더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그 낯설고 어려운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감정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주의가 쉽게 흩어지는 요즘, 하나의 음악에 집중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여운을 따라가며 오롯이 그 자리에 머무는 경험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가 이번 공연에서 다시금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어쩌면 우리는 클래식을 너무 어렵게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잘 알아야만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깊이 감상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편견 속에서 지레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생각을 부드럽게 무너뜨렸다. 클래식은 설명 없이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임을, [지브리 페스티벌]은 120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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