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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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존중으로 이어진다. 존중하는 관찰을 하기 위해선 바로 판단하기보다는 기다려 주어야 하고 한 번의 관찰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찰을 해야 한다. 또한 비판할 점이나 못하는 부분, 도와줘야 할 부분만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잘하는 점, 뛰어난 점, 칭찬할 점 등도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일부의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행해져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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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어원은 라틴어 'observare'이며 이는 ob- (-을 향하여) + servare (-에 주목하다, -을 바라보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관찰자가 무엇인가로 향하여 몸을 돌린다는 의미, 즉 관심을 가지게 하는 대상, 현상, 혹은 사건으로 몸을 돌리는 지향성과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의지와 노력을 말한다.


관찰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 사물, 현상 등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즉, 무엇인가를 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하여 관심 깊게 주의를 기울여 사람, 사물, 현상 등에 주목하여 찬찬히 살펴보고 연구하는 것이다.




시작


 

제대로 관찰하는 방법 중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선입견과 고정관념 없이 보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자신이 배운 것과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분류하고 판별짓는다고 해도 의식적으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통해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에 경험해봤던 것이더라도 시간이 지난 것이라면 다시 경험해보고 판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과거의 경험이라면 그 사이에 취향이나 입맛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시 재경험했을 때 이전의 경험과는 달리 긍정적인 판단을 내린 적도 있고, 유지된 적도 있고, 부정적인 판단을 내린 적도 있다.


긍정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면 샐러드와 나물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전에는 부모님이 샐러드와 나물을 아무리 맛있게 먹고 계셔도 그닥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샐러드는 그 특유의 아삭아삭함과 드레싱이 입맛에 맞지 않았고 나물은 씹을 때 질겨서 먹기 힘들어해서 싫어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는 맛있게 먹고 있다. (아직 일부의 발사믹 드레싱과 마요 드레싱은 취향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드레싱들은 잘 먹는다) 어릴 적부터 나는 질긴 걸 느끼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다. 그래서 같은 고기를 먹어도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먹는데 나는 계속 질기다고 했고 먹기 힘들어 했었다. 연장선으로 나물도 질기다고 느끼는 것이 많아 어릴 적에 비벼 먹을 때는 무나물과 콩나물, 시금치 정도만 비벼서 먹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의 나물을 잘 먹는다.


유지된 것으로는 긍정적인 것이 유지된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으로 유지된 것도 있다. 긍정적인 유지로는 내가 좋아하는 대다수가 있으니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클'이다. 피클은 오이로 만들어지는 절임인데 그냥 오이는 잘 먹으면서 피클은 정말 싫어했다. 평소 잘 먹던 음식에 피클이 들어있으면 입도 대지 않거나 일일이 다 골라내면서 먹을 정도로 말이다. 햄이나 스팸도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볶음밥에 들어간 것처럼 걸러내기 힘들 땐 영 입맛에 맞지 않아도 참고 먹었었다. 그렇지만 피클은 다르다. 그렇게 썰려서 들어가 있어도 최대한 걷어내고야 만다. 하지만 얼마 전에 올리브로 만든 피클에 한 번 도전을 해봤었다. 가족과 함께 간 식당에서 올리브 피클이 식전에 나왔고, 요즘 입맛이 바뀐 것도 있고, 요리가 나오는 시간도 있겠다 한 번 시도해 봤었다. 올리브도 그렇고 피클도 그렇고 아예 먹어보지 않은지 꽤 되었기도 하고 오이 피클과는 달리 올리브 피클이라는 점에서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입에 넣고 씹는 순간 표정을 찌푸리게 되었고 억지로 삼켰다. 그러고 바로 무절임으로 입가심을 했다. 하나만으로 입가심이 되지 않아 한 서너개를 먹고 나서야 멈췄다.


부정적인 것으로 입맛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어릴 적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심하게 단 것이 있다. 전에는 디저트를 먹으면 초콜릿이 많이 묻어 있거나 초콜릿 맛을 자주 먹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 '맛있다'가 아니라 '너무 달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취향도 점차 비교적 덜 단 맛으로 바뀌었다. 디저트류 중에선 플레인이나 바질, 말차, 녹차 등의 맛을 좋아하고 너무 초콜릿이 많이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몇년 전부터는 매콤한 맛에 땡겨서 자주 매콤한 맛이 나는 메뉴를 먹고 있기도 하다.




일상의 모든 관찰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일상의 모든 관찰은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이라면 짧게 지나간 것도 관찰되고 기억에 남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내 시야에 들어오더라도 관찰되지 못한 그저 그냥 그런 것에 지나지 못하게 된다.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이 실험이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하버드 대학 연구팀이 진행한 이 실험은 농구장에 집중한 관중들이 고릴라가 지나갔다는 것 자체를 눈치채지 못한 실험이다. 흥미로운 이 실험은 농구장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은 팀과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팀에게 같은 색의 사람들에게 농구공을 패스하게끔 하고 관중에겐 흰색 팀원들이 얼마나 많이 농구공을 패스하는지 세도록 한다. 그리고 경기 중에 고릴라가 경기장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게끔 하였다. 놀랍게도 관중들은 흰색 팀의 농구공에만 집중한 나머지 걸어가는 고릴라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에만 과도하게 집중해 다른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무주의맹시’나 ‘선택적 주의’라고 한다.


물론 이 실험은 흰색 유니폼을 입은 팀원들이 얼마나 많이 농구공을 패스하는지 세도록 하는 특수한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다른 것에 관심을 끄자 그러한 것이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것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관찰력이 떨어졌다는 걸 말할 수 있는 실험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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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것을 관찰하는 나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에는 정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차이가 꽤 크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해 봤었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기도 하고 관심의 유무에 따라 관찰되는 범위가 너무 차이가 나서 그러한 차이를 줄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글쎄,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해야겠다. 관찰은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잘 관찰하지 않는다고 억지로 내가 흥미가 없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너무 많은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고 억지로 내가 관심을 줄이거나 덜 관찰하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그게 내 마음대로 관찰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결국 그냥 살아가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흥미가 생기면 그걸 관심을 가지고 보고, 그러면 관찰하게 되는 것이지 스위치를 끄고 켜듯이 강제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관심이 없더라도 직무나 과제에 필요하다면 해당되는 것들과 관련되는 관찰은 반자동적으로 켜지기 때문에(아무래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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