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는 치히로와 함께 진짜 이름과 정체를 기억해내며 말한다.
“치히로 고마워.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야.”
이후 둘은 잠깐동안 서로를 기억해낸 추억을 공유한다. 푸른 밤하늘에 몸을 맡기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하늘을 비행한다. 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날의 강(The River that Day)’. 잊고 있던 진실을 기억한 두 사람이 서로의 연결을 확인하며 흘러나오는 곡은 두 사람의 서정적 장면을 더욱 희망차게 이끈다. 손을 맞잡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날 때 음악이 고조되며 뭉클한 감정을 섬세하게 이끌어낸다.
작품의 끝에서 하쿠는 치히로를 인간세계의 경계로 데려다주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또 만날 수 있어?”
“응, 약속해.”
“약속이야!”
그렇게 두 사람은 잡았던 손을 놓은 후 치히로는 하늘과 구름이 가득한 푸른 벌판 위를 힘차게 달려간다. 너무 보고 싶었던 부모님을 만나러. 재회를 약속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치히로의 등 뒤로 ‘어느 여름날(One Summer’s Day)’이 흘러나온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잔잔하지만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 속의 따뜻함을 연상시킨다.
기대한 엄마 아빠를 만나 상기된 목소리로 그들을 부르지만, 부모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없어지면 어떡해. 가자”
“엄마 아빠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이삿짐 트럭이 벌써 도착했을 거야. 빨리 오렴.”
신비로운 경험처럼 그 시간은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느끼며 치히로는 발걸음을 옮긴다. 울창한 숲을 지나고 지나 빠져나오는 그 세계. 그렇게 천천히 화면이 어두워지며 이후 ‘언제나 몇 번이라도(Always With Me)’가 흘러나온다.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며 현실을 자각하지만, 그 현실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잠깐이나마 매우 평온하고 따뜻하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지브리 페스티벌’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해설가와 함께 지브리 음악의 모든 것을 표현해냈다. 피아노와 해설을 맡은 송영민 연주자에 따르면, 클래식이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던 중 지브리 음악이 떠올랐다고 한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지브리 OST는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고 진솔하게 다가서기에 충분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때론 어렵고 지루해서 일부 향유층에게만 적합하다고 느껴졌던 클래식이 지브리 음악과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결합해 편곡해낸 것이 놀라웠다. 새롭게 재해석한 곡은 하나하나 느끼기에 공연의 깊이감과 이색을 더해주었다.
연주가 한곡 한곡 진행될 때마다 달라지는 조명의 색깔도 눈에 띄었다. 푸른색 조명은 밤의 깊이감을 더해주기도, 노란색 조명은 지브리 특유의 밝고 따뜻한 생기를 전해주었다. 무대 위쪽에는 큰 스크린이 있었는데, 곡이 흘러나오는 초반부에 음악과 걸맞은 영화 속 장면을 짧게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과 함께 더해지는 여러 인물과 캐릭터들이 나와 새삼 반갑고 정겹기도 했다. 영화를 처음 볼 때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이나 향수가 더해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며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다양한 악기와 함께 다채로운 선율이 온몸으로 와닿았다. 그중에서 특히 피아노 연주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열 손가락만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능력은 행위예술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손가락만으로 예술을 그려내는 이들을 상상하며 어릴 때 잠깐 피아노를 배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배움이 오래 가진 못했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 그 시절 좀 더 피아노를 배워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직접 건반을 두드리며 느끼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멈췄지만, 아직도 다양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영상을 찾아보며 소소한 행복과 위로를 경험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에서 유독 피아노 연주자를 눈여겨봤다. 공연의 중반부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인 ‘인생의 회전목마’를 피아니스트가 단독으로 연주했음에도 곡의 웅장함과 깊이가 잘 느껴져 경이로웠다.
<지브리 페스티벌>을 감상하며 왠지 모를 감정으로 인해 울컥했다. 따뜻한 음악으로 인한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지브리 음악은 그 추억과 아기자기함 속에 늘 희망이 담겨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정은 오롯이 슬픈 장면과 순간만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희망이 담긴 순간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한다. 희망은 언제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이 있으면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그 희망이 얼마나 위태롭고, 지켜내고 싶기에 얼마나 간절한지 알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와 하쿠가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하며 희망을 그려내는 것, <이웃집 토토로>의 아이들이 엄마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틔워내는 희망,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 때 피워내는 용기는 단순한 감정 하나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믿음, 용기와 성장 같은 단어들은 표현하기도 어렵고 딱히 볼 수도 없지만, 이번 공연에서 연주자들은 그런 느낌들을 훌륭하게 표현해 주었다.
때론 이성과 논리가 결합된 지식만으로 감정을 확연하게 표현할 수 없을 때 글 쓰는 이로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감정을 그 자체로 느끼고 그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이날의 공연이 익숙한 감정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그런 순간이었기를, 추억을 발산하며 행복을 그려내는 시간이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