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돌리며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어도, 달력에 차곡하게 쌓여가는 할 일들을 끝내놓는 것에 몰두하는 날들을 보내다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생긴다. 늦은 밤을 맞이하다 잠이 들고, 이른 아침을 맞이하며 깨는 날들이 익숙해진 탓이다. 한껏 머리를 쓰며 할 일을 하다 부하가 걸렸던 날, 계획을 해서라도 쉴 틈을 만들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일상에서 다른 쉴 틈을 찾는 방법을 찾다,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아트인사이트 제1회 기획전 ‘틔움’에 가게 됐다.
일상 사이에서 움트는 무명의 감정들
전시관 MarMul(이하, 맷멀)에 들어서면 전시 소개 글이 바로 입구에서 맞이한다. 소개 글 종이를 집어들고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가자 5명의 작가들의 전시가 보였다. 이번 작가는 5명의 작가로, '북 아티스트 Mia / 일러스트레이터 나른 / 일러스트레이터 대성 / 그림 작가 유사사 / 일러스트레이터 은유' 작가가 이번 기획전에 참여했다.
작가마다의 색채가 돋보였던 이번 전시는 특히, 아트인사이트에 기재되었던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시간이었다. 먼저, ‘북 아티스트 Mia’의 작품은 리소 프린팅으로 제작되었고, 책 속의 삽화는 선과 명암이 섬세하게 표현된 에쿼틴트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이었다. 특히, ‘The blue: bench 벤치, 슬픔에 관하여’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왼쪽에는 동사를, 오른쪽에는 부사로 된 단어나 문장을 적고 책장을 넘기면 사람들이 벤치에 머물렀다 사라지는 과정들의 반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더 테이블이라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작가는 이를 우리들의 인생에서 마주하는 사건을 은유하는 것을 표현하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머물렀다 가는 벤치와 카페 테이블처럼 마치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주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작가처럼 슬픔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공감이 갔다. 여전히 어렵지만 살아가면서 앞으로도 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은 ‘몸의 언어’와 ‘이름 없는 마음’ 작품을 통해 인연간의 깊은 사랑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냈다. 특히, ‘몸의 언어’에서는 작가는 스킨십 자체가 메세지가 됨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직접 겪었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경험했던 사랑을 되짚어 정리하고 싶었다며, 마음은 그냥 두면 흘러가버리니 이를 종이에 담고자 한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 없는 마음’은 정의 내리지 못했던 마음들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것들을 모아 이름 없는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리하고자 했다. 마음에 이름을 붙임으로서 흘러버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작별과 인사를 하며 위로와 위안을 주는 작품을 그렸다.
‘일러스트레이터 대성’은 ‘꼬임(2023)’이라는 우리 삶의 통념에서 발견한 모순이나 아름다움을 담은 연작으로 천에 디지털 프린팅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그림체로 위트있게 모순들을 꼽아내는데, 바쁜 현대인들의 사회와 탐욕으로 인한 결과 등 꼬임이라는 주제로 다양하게 그려냈다. 또한, ‘선물(2025)’은 귀여운 토끼와 동물들의 그림체로 절로 웃음이 지어지게 했는데, 작가는 이 귀여운 그림체 안에 과시와 탐욕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어둠에서 시선을 돌려 소통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주목했다. 동화적인 이미지 속 우리 사회의 어둠을 극복하는 여정을 여러 동물들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작가 유사사’는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2023)’와 ‘어슴푸레한 눈맞춤(2024)’로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 전자의 경우에는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우울의 감정을 사색하고 형상화한 연작이다. 내면세계를 우울이 밝게 빛나는 하나의 정원으로 상상하고 그곳을 거닐며 채집하는 몽환적인 풍경들을 그려냈는데 얇은 펜으로 무채색 정원들의 모습과 그에 붙인 제목들이 깊은 내면의 감정과 사색을 느끼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유사사 작가를 이전 아트인사이트 모임에서 본 적이 있어 반가웠다. 이전에 소개해주셨던 개인 책 또한 전시를 통해 다시 보고 일부를 읽어보며 말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대한 울림을 받았다. 한편, 후자의 작품의 경우에도 내면의 감정을 담았는데, 비유나 상징에 의존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옮겨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총총’이라는 작품은 초면은 아니지만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잠시 사색에 잠기며 감상해보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은유'는 ‘별바라기(2024-2025)’는 3부 연작 작품으로 작가는 세상을 살아가며 내면에 세워진 또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 1부와 찬란하지 못했던 10대 시절의 기억을 황량한 사막과 백야의 그림자, 어둠 속 별의 이야기에서 담아낸다. 그늘로 가득했던 과거를 현재의 빛으로 비추어 표현했다는 작가의 작품 설명을 바라보며, 어두웠던 과거를 현재의 희망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의 감정을 깊은 해저로 빠져버린 듯 표현한 작품은 내면 깊은 곳의 감정을, 잎 하나 없는 나무와 풀과 꽃 하나 없는 사막 같은 땅 위에서 걷는 한 사람에게서는 고독함과 쓸쓸함을, 탁 트인 바다와 큰 선인장의 그늘 아래 서 있는 한 사람의 그림에서는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다에 깊이 빠졌다가 바다를 옆에 두고 서있는 작품을 보며, 서서히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햇볕을 온전히 바라보고 마주하는 모습이 마음을 울렸다.
5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작가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에서 작품을 보았던 작가들의 작품을 이렇게 대면으로 볼 수 있어 신선했고 반가웠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회들이 다양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졌다. 제 1회 기획전 ‘틔움’ 전시를 보고 나오며, 새롭게 맞이하는 봄처럼 오래간 만에 나의 일상에도 새로운 ‘틔움’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