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딕걸’. 살인 사건의 가해자이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쌍둥이 동생으로 인해 은둔의 삶을 택한 ‘수민’을 묘사하는 말이다.
뜻하지 않게 ‘가해자의 가족’이자 ‘자살 유가족’이 되어버린 이후, 누구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도록 ‘수민’은 온통 까만 고딕룩으로 자신을 감춰버린다.
그런데 왜 ‘고딕걸’이 아니라 ‘견고딕걸’일까? 이 제목은 언뜻 들으면 ‘고딕 양식’보단 ‘견고딕체’라는 폰트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수민’은 외친다.
“나 견고딕체로 말한다. 볼드까지 넣는다. 내 면상에 신경 꺼! 내 인상 내 인성 내 인생에 신경 끄라고!”
그리고 그녀의 말은 묵직하고 진지한 ‘견고딕체’로 객석에 던져진다. 볼드까지 넣어진 채로 말이다.
지금까지 ‘배리어프리’를 목표로 한 대부분의 연극에서 자막해설이란, 극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은 것에 그쳤다. 즉 ‘정보의 전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견고딕걸>은 자막을 또 하나의 감정 표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수민’의 외침이 그녀의 감정을 꾹 눌러담은 견고딕체, 볼드체로 전달된 것처럼 말이다. 이 극의 모든 말은 그 강도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크기와 리듬으로 자막화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 자막은 단지 ‘배리어프리’만을 달성하기 위해 덧대어진 장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연출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자막 뿐만 아니라, 이 극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독특한 형식이 있다. 납작하게 극본 속에 누워있던 지문을 배우의 입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이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음성화’하는 작업이자,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이처럼 <견고딕걸>은 배리어프리라는 기능적 목표를 넘어서, 연극의 ‘말’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견고딕걸>에서 말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여러 형태로 변주되며 그 자체로 또 다른 연극 언어가 된다.
그래서 <견고딕걸>과 ‘수민’의 외침은 ‘누구에게나 도달 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더욱 견고하고 또렷하게 관객의 기억에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