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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트인사이트 제1회 기획전 《틔움》은 Mia|나른|대성|유사사|은유 

 

다섯 명의 작가가 싹을 틔운 내면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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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당장의 맥을 짚어볼 때 저마다의 정서는 외롭지만 필연적이고, 침체된 동시에 희망적이다. 어떤 결론이나 특정한 어휘로는 정의 내릴 수 없을뿐더러, 그럴 이유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뭉툭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감정들이 갈망하는 것은 해소가 아닌 시선이다. 그 눈빛은 완고하게 닫혀 있었던 마음 한구석의 단단한 벽을 틔우고, 메마르고 굳어진 땅 위로 새순을 틔우며, 마침내 막혀 있었던 숨통을 틔워낸다.


- '일상 사이에서 움트는 무명의 감정들' (전시 소개글)

 

 

회화 및 일러스트, 리소 인쇄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작품과 그림을 비롯하여 도서, 책갈피, 엽서 등으로 구현된 굿즈는 전시장 곳곳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전시장의 문을 통과하여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서 차분하게 작품을 바라볼 때면, 불쑥 일렁이는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상 사이에서 움트는 무명의 감정들'이라는 문장은 어느새 《틔움》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기도 전에 깊이 각인된 듯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자주 들었던 생각은 일상에서의 통찰, 빛과 어둠의 대화, 내면적 감정의 공간들, 이를테면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주하는 감정의 순간을 양껏 사색하고, 지금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가장 솔직하고,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는가?

 

이 물음은 언제든 감정이 싹트는 찰나에 생성된다. 또한, 이 질문의 근원은 꽤 오랜 시간 쌓아온 감각의 총체이다. 눈앞에 놓인 일상은 장면마다 생동한다.

 

 

 

수풀에서 발견한 일기장, 유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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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마음과 투명한 햇빛 사이에서 쓰고 그리는 작가 '유사사'의 작품 <하루>와 <수풀>은 일상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환상적인 장면을 그려낸다. 펜화로 작업한 무채색의 작품은 오롯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선의 굵기를 가늠해보고, 여러 갈래로 엉있는 선을 찾아서 두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렇게 풀잎, 열매, 새, 나무, 빛 등의 형상을 띠는 <하루>는 각각 그림을 따라서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관객의 시선을 이동시킨다. 또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것과 풀, 나무, 덩굴 따위가 한데 엉킨 것을 뜻하는 <수풀>은 빼곡하게 채운 그림의 중앙으로 시선을 이끈다.

 

어느 순간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1.)와 같은 시의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또는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그때마다 일렁이는 감정의 모양도 달라진다. <하루>에는 따뜻함과 포근함 등의 감정이 떠오르고, <수풀>은 무언가 어렵고도 복잡한 내면의 깊은 감정이 생각난다.

 

한편 작품들 사이로 'note'라고 적힌 일기장이 놓여있다. 이 작업 노트를 '일기장'으로 부른 것은 문장마다 적힌 여러 감정과 작업의 원천이 되는 이야기들이 더욱 내밀한 것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수풀에서 발견한 비밀스러운 일기는 일상의 어느 날,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일상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여전히 깊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제가 진행하는 작업들의 핵심적인 본질이니까요."

 

- 아트인사이트, [마스터피스] 관념적 내면을 검은 잉크에 녹여냅니다, 그림 작가 유사사의 세계 - 전시 [틔움]  중에서

 

 

 

시간 속에 머무르는 편지,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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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띤 <나는, 이제>는 여러 장면에 걸쳐서 바깥은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으로, 그리고 실내에서 편지를 읽는 사람의 모습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배경이 되는 구름은 모노톤인 반면에, 내부의 색감은 리소 인쇄 형식의 다채로운 빛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관람객이자 독자에게는 작품에 더욱 몰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의 장면도 그냥 흘려보내는 것 없이, 마주하는 그림에 모두 집중하는 시간은 순간마다 감정에 더욱 솔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보여주는 물성을 바탕으로 어떤 찰나와 헛됨을 말하는 동시에, 그 헛됨도 자연스러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책이 [나는, 이제]예요. (···) 가령 독자는 실내의 이미지와 실외의 이미지를 따로따로 넘길 수 있어요. 나와 세계는 붙어 있지만, 흐름은 상관이 없죠. 이런 구조나 장면은 부조리한 상태를 어느 정도는 비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아트인사이트, [마스터피스] 아름다운 책의 형태를 그려내는 북 아티스트 MIA의 세계 - 전시 [틔움] 중에서

 

 

여러 장면을 하나의 '책'이라는 물성으로 완성했을 때, 보는 이로 하여금 각각의 장면을 보는 것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파편화된 그림은 '책'의 형태로 완성되면서 사람들에게 가닿는다. 이때 책을 펼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하며, 순간을 붙잡는다. 책의 특성을 토대로 이러한 사물의 구조는 단절하거나, 전체의 합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부분을 보기도 하고, 배경이나 인물을 중점적으로 보거나, 때로는 총체적인 관점을 내세운다.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지정할 수 없겠지만, 중요한 지점은 감상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일깨워보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인터뷰에서 작은 단서를 얻었 수 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지금 이 도서의 구조에 담겼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는 책으로 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아트인사이트, [마스터피스] 아름다운 책의 형태를 그려내는 북 아티스트 MIA의 세계 - 전시 [틔움] )

 

 

 

어둠과 빛의 경계를 그리는 그림책,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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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유영하는 별'을 그리는 작가 '은유'의 작품 <별바라기>는 개인의 감정, 즉 내면세계를 깊게 들여다보며 충분히 슬퍼하고 또한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부정적인 것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단순히 나아간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감정들을 품고 또 다른 형태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여 이를 매개로 좋은 감정을 발산할 수 있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의미는 더욱 충만해진다.

 

 

처음 본 색채와, 느낀 숨결. 나의 마음에 남은 일말의 사랑이었다. 감히 이곳에 자리 잡고 뿌리 내린 꽃의 세상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본다. 백야의 아래에서 듣는 별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 <별바라기> 04. 꽃 한 송이 중에서

  

 

시리즈 <별바라기>는 그림과 글을 입힌 이야기에서 '그림책'으로 구현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림자의 샘>과 <꽃 한 송이>는 어둠에 가까웠던 감정들을 풀어내고, 빛에 가까워진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리즈의 배경이 '사막'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두 그림이 주는 긍정과 밝은 빛이 한층 더 반갑게 느껴진다. 물에 비친 꽃의 그림자와 햇빛에 비친 꽃 한 송이의 그림자가 두 그림을 연결하듯이, 기분 좋게 피어난 감정들이 마음 곳곳을 수놓았다.

 

*

마음에 이끌리는 문장을 골라보세요.

감정을 일깨우는 작품을 다시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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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고르고, 다시 감정을 마주했다. 이렇게 마주한 감정을 따라서 작품 앞으로 향한다.

 

처음 느꼈던 감정과 조금은 달라진 점을 찾거나, 이내 사라지지 않은 감정들을 발견하기를 반복한다.

 

부유하는 감정은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향한다. 오직 이곳에서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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