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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일상 사이에서 움트는 무명의 감정들 《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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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맷멀의 지하 공간에 들어서자 작품들이 눈 앞을 가득 채웠다. 각자의 섬세한 감성으로, 창의적인 배치가 되어있는 모습들이 시선을 자로잡았다. 아트인사이트가 주최한 첫 번째 기획전 《틔움》은 평소 이 플랫폼에서 글과 작품을 기고해온 다섯 작가의 창작 세계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전에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던 아트인사이트는 이번에 그림을 통해 전시를 여는 새로운 시도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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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이서연), 나른(장의신), 대성(정주희), 유사사(오예찬), 은유(박가은) 등 5인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이들은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글 등 다양한 예술적 언어를 통해 내면의 여린 감각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북 아티스트 Mia는 이유 없이 닥친 내면의 변화를 담담해진 눈빛으로 살피고, 그저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듯이 과거의 아린 시간을 보듬으며 편지를 쓴다.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은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압축할 수 없는 연인 관계 속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호명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대성은 조직사회의 위선에 맞서는 상생의 공동체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 작가 유사사는 내면세계에 싹트는 감정을 깊이 사색하고 형체를 부여해 이들의 존재를 보존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은유는 상처의 시기를 환상적인 여정으로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 임했던 전진과 희망의 순간을 그린다.

 

하얗던 전시장에 테이블이나 상주스탭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아닌, 작품을 제일 먼저 마주할 수 있었다. 작품의 세계에 가장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주한 하얀 벽, 작가들의 내면을 조심스레 펴낸 서문을 읽고 고개를 돌려 갤러리로 시선을 욺긴 순간 작품들은 바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여움 속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 비평: 대성


 

귀여운 건 어느 순간에서나 가장 눈이 간다. 대성 작가의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하며 동화같은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와 동심어린 동화책같은 분위기의 그림들이 말하는 것은 물질주의, 사회 이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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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만으로 표현한 꼬임 시리즈에서는 작가 특유의 표현이 돋보였다. 집착이라는 작품은 뱀에게 묶여버린 얼굴의 이미지를, 중독이란 작품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 빠져서 수영을 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현대인의 질병 목디스크 작품에서는 고통을 시각화하여 뱀처럼 길어진 목을 보여준다. 작가의 개성적이고 유머러스한 특유의 표현이 느껴졌다. 단순한 선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 일상의 모순, 아름다움을 담았다. 시선을 달리하여 주변을 바라보고, 본인의 관점을 직관적으로 위트있게 표현한 것을 보고 장줄리앙의 심플하지만 깊은 작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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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와 탐욕이 만연한 우리 사회 속 이 시대에 되찾아야 할 소통의 가치는 무엇일까. 대성 작가는 이 물음에 대해 지본주의나 물질만능이 아닌 조력자를 의미하는 동물들을 등장시켜 동화적인 이미지로 사회의 어둠을 극복하는 유쾌한 에피소드를 그려낸다. 선물 시리즈에서는 귀여운 동화같은 순수한 캐릭터들이 동심어리게 등장한다. 각각의 작품들이 에피소드처럼 등장해 그림을 따라가며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것이 재밌었다. <나르시시즘>에서는 늑대가 망 안에 들은 금은보화를 건네면서 주인공을 살살 꼬시고 돈다발을 쥐덪 위에 올려두고 덪으로 유혹한다. 재물과 돈으로 유혹하지만 순한 양같은 주인공은 구성에 웅크리고 않아 이불을 뒤집어 쓰고 경계한다. 반면 <자유의 시작>에서는 책을 들고 있는 천사모형의 돼지가 주인공을 부르고 주인공은 그제서야 이불을 펼친채 책에게로 달려간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느 것은 돈이나 재화만이 아닌, 책과 같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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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히 담아내다 : 나른


 

나른 작가는 <몸의 언어> 시리즈에서 오직 연인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세계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침대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살며시 스치는 손길,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마음까지. 단순히 '사랑'이라는 짧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연인들 사이의 수많은 감정들이 그의 작품에 섬세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끝이 있다. 한때는 두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던 그 침대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순간들. 누군가의 체온이 남아있을 것 같은 베개를 끌어안아도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 따뜻했던 추억이 오히려 현실을 더 차갑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시간들까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마치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듯, 연인들의 가장 진실된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문득 나와 내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고, 우리만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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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언어> 에서는 옷자락 사이로 느껴지는 심장 소리,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말들, 그리고 서로의 온기가 전해주는 위로, 서로를 감싸 안는 따스한 순간부터 하나가 되어가는 친밀한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스킨십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 몸을 마주하는 순간에 흐르는 어떤 언어가 있다. 눈만 마주치고 있어도 사랑에 사무칠 수 있고, 키스하면서도 증오할 수 있다. 사랑뿐 아니라 공허 불안 증오 다양한 감정들이 담으려 노력했다. 짙은 스킨십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마음들을.'

 

나른 작가의 그림 속에는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눈을 마주할 때의 설렘, 함께할 때의 따스함, 열정적인 순간의 뜨거움, 사랑과 함께 느껴지는 증오, 그리고 이별 후의 차가움까지. 사랑을 하며 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느껴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모든 스펙트럼, 그 다채로운 감정의 풍경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다. 서로에게 기대어 나누는 작은 대화에서부터 홀로 남겨진 침대의 적막함까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번 틔움 전시에서는 관객이 컬렉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컬렉팅 방식을 도입했다. 상설 경매 시스템으로 비공개 입찰로 갤러리 내 작품 경매가 이루어진다. 낙찰 희망가를 작성해 전시 현장에서 제출하면 전시 종료 후 최종 낙찰과 함께 판매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이렇게 부담 없고 편안한 구매 과정을 통해 작품 소장의 문턱을 낮추고, 처음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미술 작품 구매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예비 컬렉터들과 더 가깝고 친근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아트인사이트의 전시 '틔움'은 작가들의 내면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관객들에게 분주한 일상 속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마주할 기회를 선사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감정과 영감이 솟아나며, 말 그대로 우리 마음속 무언가가 '틔워지는' 진정한 의미의 '틔움'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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