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조밀하게 배열된 세상의 순서를 쫓다보면 숨 돌릴 틈도, 미묘한 찰나를 곱씹으며 질문을 던질 겨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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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의 첫 문장은 다름아닌 현재 나의 상태였다. 전시장을 찾은 토요일 오후, 앞뒤로 겹쳐진 일정 사이 그나마 뒷일정이 성수에서 있었던 덕에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차였다. 봄비가 내리던 날, 아트인사이트 제1회 기획전 <틔움>을 찾았다.

 

가장 먼저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서 결국 겪고 있는 모습 그 자체를 담아낸다는 그는 연인 간의 사랑 역시 솔직하게 그려낸다.

 

'글쓰는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의 작가 인터뷰 중 재미있었던 부분은 바로 '그림은 적나라했으면 좋겠고, 글은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다른 말로 글은 정직하고 글은 시적이다. 전시에서는 그림이 유독 눈에 들어왔는데 글과 그림을 따로 봐도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어느 정도 현현된 것 같다.

 

유사사 작가 역시 '쓰고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른 작가와 달리 일상의 구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장식적이고 펜화 작업을 한다. 색을 빼고, 이미지 자체에 몰입하여 어쩌면 글로 감정을 표현하던 방식에서 조금 궤를 달리할 뿐이다. 그는 관객들이 제목을 보고 자기 자신과 맞닿은 감정을 떠올리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낯선 사물들이나 식물들이 존재하는 장소에 잠시 들어서서 감정의 형태를 상상해보길 권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보자.)

 

다음으로는 대성작가의 통통 튀는 작품이었다. 인물의 형태를 과장하거나 화려한 컬러감을 덧입힌 캐릭터들을 통해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한 어조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한다. 처음 마주했을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토끼의 눈빛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한 사람의 감정과 이야기가 눈빛을 통해 비춰진다고 생각하는 만큼, 티 없이 맑거나 강인해진 토끼의 눈은 유독 크거나 뚜렷하게 강조되어 있다. 늑대와 여우는 자본주의, 토끼는 그러한 자본주의로 인해 힘들어하는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관객들은 자본주의 대신 각자가 겪어온 고통을 대입하고 이를 무찌르는 토끼를 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공간에 전시되어 있던 미아 작가의 첫 그림책 [The blue: bench]는 일반적인 그림책과 달리 책장을 마음대로 넘겨볼 수 있다. 그러니까 양쪽 페이지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조합되는 장면이 총 121가지나 되기에 독자 스스로가 장면과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또 이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책 속의 풍경은 일관된 가운데 그  안의 요소들을 바꾸며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프렌치 도어(양쪽으로 열수 있는 문)'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은하수를 유영하는 별, 은유 작가의 그림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대표작인 [별바라기] 시리즈는 사막이라는 공간을 메인으로 하여 마음속 세계와 특정한 소재가 대응을 이루어 표현된다. 은하수와 사막이라니, 이 간극 속에서 사막은 당연히도 긍정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사막을 헤매면서 얻는 깨달음, 스스로를 마주보았던 경험 등을 함께 나누며 희망을 건넨다. 작품에서 보이는 꽃이나 오아시스가 바로 그 희망을 상징한다.

 

나는 지금 사막 속에 있을까?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가 사막인줄도 모르고 달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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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 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서 스스로의 말마따나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할만한 나른 작가님의 '몸의 언어', 사사 작가님의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 를 들춰보던 15분이 마치 그 오후의 전부 같았다. 물론 다시 우산을 피고 마을버스에 실려 나머지 오후를 보내는 동안 점점 희미해졌지만, 아트인사이트 제1회 기획전 틔움은 빈틈없는 일상에 지연의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좌우지간 모든 예술이 스쳐지나갈 뻔한 질문과 의문을 솎아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전시의 서문으로 돌아와, '일상 사이에서 움트는 무명의 감정들'에 관해, 시각예술은 사랑, 우울 등으로 명명하곤 있지만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한 인간의 심연을 그려내고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타의적으로 이름 붙여진 감정의 이름들이 인생의 모순을 극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감정들에 글자와 관념이라는 목줄을 풀어주었을때 작가에게는 창작과정에서 감정을 소화하는 경험이, 감상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묵은 감정을 꺼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는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그 석연찮은 감각이 쉽게 가시지 않을때 글이 쓰고 싶은데, 텍스트 이외에 선이나 면, 선율로 무명의 감정들을 표현해내는 이들은 어떤 다른 감정의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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