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강사로 일하고 있는 ‘영은’을 괴롭게 하는 존재는 7살 딸 ‘소현’이다. 영은은 키우던 개의 죽음에 이상하리만치 무감하고, 유치원에서는 섬찟한 장난으로 다른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소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주기적으로 정신병원 상담까지 받아보지만 소현의 기이한 행동은 멈출 줄 모른다. 영은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소현을 다그치고 통제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다. 동시에 엄마로서 딸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써 보지만 소용없다. 사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결국 영은은 소현을 막기 위해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
영화의 배경은 20년 뒤로 향한다. 특수청소업체에서 일하는 ‘민’은 타인과 단절된 채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업체에서 만나게 된 ‘현경’과 몇 마디 나누는 것이 관계의 전부다. 그러나 최근 합류한 신입 ‘해영’이 거슬린다. 실없는 미소를 띠며 자꾸만 자신의 생활을 침범하려는 모습이 달갑지 않다. 지나치게 밝고 능청스레 행동하는 해영에 의뭉스러움을 느끼다 그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침범>은 소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20년 전의 과거와 현재를 단단히 엮는다. 타인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릴 정도로 통제가 불가능한 악, 소현이 두 이야기의 중심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어가는 어린 소현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소현은 저수지로 향하고 이내 물속 깊은 곳을 바라본다. 겉으로는 실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의 특성처럼 쉽게 파악하기 힘든 존재임이 암시된다.
1부는 영은의 시점에서 소현을 바라보는 형태다. 파악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딸을 마주하는 엄마의 두려움이 내내 선명하다. 아이를 두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과, 감당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느끼는 좌절감이 거세게 맞부딪친다. 갈수록 예측 불가한 소현의 행동과 그에 따른 영은의 심리 변화를 촘촘하게 배치한 연출이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이어 2부는 민과 해영 중 누가 소현인지 추리해 나가는 미스터리의 방식을 취한다. 민은 항상 모자를 눌러쓴 채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두운 얼굴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와 대면하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의심을 자아낸다. 미심쩍은 건 해영도 마찬가지다.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으려 하는 민이 불편함을 표출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계를 비집는 모습이 꽤 꺼림칙하다. 두 인물의 의심스러운 모습이 교차되며 심리 스릴러 장르에 걸맞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뒷심이 약하다. 두 인물 중 누가 소현인지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소현의 정체가 명확해지기 시작하는 하이라이트의 분위기가 전반부에 비해 오히려 느슨하다. 탄탄히 형성된 긴장감이 다소 이르게 흩어진다는 인상이다. 후반부로 향할수록 극으로 치닫는 소현의 폭력적인 광기만큼은 인상적이나, 1부부터 쌓아 올린 미스터리가 대번에 풀린다는 점이 아쉽다.
다만 <침범>이 집중하는 지점은 따로 있는 듯하다. 세상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 소현이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끈질기게 고민해 봐도 결론은 납득하지 못함에 가까워질 뿐이다. 1부에서 관객은 어떻게든 딸을 이해해 보려는 영은의 입장에 몰입하게 된다. 소현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엄격한 훈육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지. 물론 이유를 찾는 건 소현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고, 특정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저 영은이 소현을 이해해 보려 애쓰는 것은 엄마로서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은의 시도는 당연하게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2부에 다다르면 관객은 느끼게 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병명을 떠나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흉포한 악이 분명 존재한다. 무고한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까지 일말의 망설임이 없고, 자신을 감추면서도 과시하기 위해 무표정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소현의 모습이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의 본성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악 때문인지, 혹은 성장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도 단정하기 어렵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건 악독하고 흉악한 존재라는 것뿐이다.
만일 남편의 말처럼 영은이 소현을 일찍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해도, 이혼하지 않고 다른 훈육 방식을 택했다 해도, 과연 소현은 다르게 자랄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말하는 애초부터 악마로 태어난 아이였다면, 그리고 그런 소현과 같은 악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의 가족과, 주변과, 사회는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찌할 수 없는 딜레마가 두려움을 더한다. 그렇게 영화는 불가해한 인물을 내세우며 통제 불가능한 악의 파괴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끊어내고 싶어도 결코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질문 역시 선명하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죽기 직전까지, 아니 심지어는 죽고 나서도 그 연결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 끈덕지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혈연에 대한 보편적 논의를 다시금 환기한다.
영은이 소현을 홀로 내버려두고 도망치지 못한 이유는 혈연 때문일 것이다. 엄마로서 아이를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영은을 추동한다. 같은 핏줄로 묶인 가족이기에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조치를 취해본 것일 테다. 소현의 악행이 불러온 재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마지막 결단을 감행할 때도 영은은 소현과 함께하려 애쓴다.
민 역시 엄마에 대한 신경을 온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겉보기엔 남보다도 못한 관계지만 민이 엄마를 모른 체하며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증오 뒤에 감춰진 일말의 연민 때문인 듯하다. 원한이 맺힐 정도로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놓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반면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음에도 혈연으로 묶여 있지 않은 인연은 때로 너무나 쉽게 흩어진다. 일로 만나게 된 현경과 민의 사이가 그렇다.
이렇듯 모순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이 러닝 타임 내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악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와, 가족이라는 관계의 모순. 두 가지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애초부터 악으로 태어난 사람을 통제할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아무리 끊어내려 해도 끊지 못하는 관계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해 불가능해 보이는 물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강단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