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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콘클라베>는 말 그대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그렸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가십, 파벌, 정치싸움을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이미지를 가진 가톨릭을 비판한다. 내 기준에서는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최대한 상냥하게 말해준 것 같지만 가톨릭 신자가 봤을 때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교황의 선종으로 콘클라베를 위해 소집된 추기경단 중 교황 후보로 언급되는 몇 추기경들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교황이 직접 임명한 추기경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후보들은 가톨릭을 위해 봉사는커녕 교황이라는 자리가 가진 권력을 노리기 바쁘다. 유력한 교황 후보 중 하나인 진보파 알도 또한 교황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결국에는 교황이란 자리는 추기경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라며 욕심을 드러낸다.
크게 진보파와 보수파로 파벌이 형성되어 각 파가 미는 후보를 교황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진보파는 보수파를 이해하지 못하고 보수파는 진보파를 이해하지 못하니 각 파에서 미는 후보가 교황이 되는 걸 필사적으로 막는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시민들을 비롯한 전 세계가 다음 교황이 선출되기만을 기다리는데 의견은 계속 좁혀지지 않고 재투표의 재투표를 거듭한다. 투표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후보들의 사생활이 밝혀지고 교황이라는 자리를 탐내지 않던, 오히려 지금의 자리에서도 물러나고 싶어 했던 로렌스도 개판으로 굴러가는 상황에 저런 놈을 교황 자리에 앉힐 바에는 내가 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영화를 보고 2013 콘클라베에 대해 찾아보니 교황은 종신직임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토 16세가 자발적 사임을 하고 콘클라베를 통해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거라고. 자발적 사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보수파 베네딕토 16세와 진보파 프란치스코의 파벌싸움이라고 추측하는 걸 보면 영화와 현실이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유튜브에서 2013 콘클라베 다큐멘터리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들과 그 내부의 상황만 다루고 있어 외부의 상황은 소리나 등장인물의 입으로만 전달되는 게 끝이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바티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시점으로 다뤄져 이미 누가 교황이 됐는지 다 아는 상황인데도 긴장됐다.
가톨릭의 보수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던 두 장면이 있었는데, 하나는 추기경과 수녀의 역할분담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시끄럽게 얘기하면서 밥 먹는 건 늙은 추기경들이고 연령대도 다양한 수녀들은 요리나 잡무만 하고 정작 중요한 회의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게 거슬렸다. 아직도 저 시대에 머물고 있다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군말 없이 저걸 그대로 따르나? 그런 역할분담 속에서 추기경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혼란을 중재시키기도 하는 게 수녀였다는 것이 역설적이었다.
또 하나는 정작 교황이라는 가장 권위적인 자리에 욕심 없이 오로지 주어진 사명에만 열심히 힘쓰는 베니테스가 여성의 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어떤 죄악보다 더 나쁜 죄악처럼 다뤄지는 장면이었다. 만약 로렌스가 교황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를 먼저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성별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깨어있는 편인 로렌스도 다른 후보들의 추문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게 보여 아직까지 가톨릭은 저런 시대착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베니테스가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가톨릭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적 허용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톨릭도 계속 백인만 교황으로 선출되는 걸 의식하고 있기는 하구나 싶었다. 그걸 좋게 이용한 게 아니라 안 좋게 이용하려 해서 문제였지만. 보수파는 인종적 다양함을 미끼로 보수 중에서도 보수 스탠스를 취하는 아프리카계 흑인 추기경을 교황 후보로 민다. 사생활로 인해 교황은 진작 물 건너갔지만 만약 진짜 교황이 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동아시아의 한 반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톨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해 스토리를 못 따라가고 그냥 끝날 때까지 멍만 때리다가 오면 어쩌지 했는데 그냥 종교의 탈을 쓴 정치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톨릭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직급과 이름들이 어려웠다는 것만 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딱히 해석이 필요한 영화는 아니라고 느낀 게, 종교에 관한 내용이지만 보편적인 사회를 그리고 있어서 오히려 직관적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를 가나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것. 2명 이상이 모이면 파벌이 형성되고 정치적 싸움이 생긴다는 것이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던 신을 섬기면서 성별, 인종 앞에 망설이는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