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여행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도 여행을 이야기한다.
한 달 반 전에 마카오에 다녀왔고, 두 달 뒤에 일본으로 간다. 도쿄가 처음도 아니니 이번에는 여유 있게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구글맵으로 여기저기 찾아보고 남들 어디 다녀왔다 살펴보는 동안 리스트가 끊임없이 늘어났다.
참고 자료는 도쿄에 거점을 두고 한국에 자주 들어오는 사람의 블로그였는데 남의 산책 루트를 훔쳐보면서 가야 할 곳을 골랐다. 그러다가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1년에 서울에 머무는 날만 360일이 넘는데 일 년에 서울 몇 번 안 오는 사람보다 더 단조로운 풍경을 보내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채로운 서울은 저쪽의 몫이라니, 이게 좀 이상하지 않나. 누구는 머무르는 곳이든 곧 떠날 곳이든 다양한 장면을 보는데 나는 일 년에 아주 잠깐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욱여넣으려 한다. 반성할 지점이 불쑥 튀어나왔다.
최근의 동선을 살펴보자. 평일은 집, 회사, 필라테스 고정이니 나갈 때라고는 주말밖에 없다. 친구와 약속으로 송리단길, 공연으로 보러 대학로. 그전에는 내 방에서 거실까지 나가 걷다가, 부엌을 지나 안방에 잠깐 들리기.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 달에 8-10번의 주말이 있는데 반타작도 못하고 있다.
전부터 계속 맴도는 말이 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걸 사진으로 찍는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게 본인의 세상이라고. 내 세상은 인터넷을 부유하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니 나에게 못할 짓 하는 기분이다. 이 기분을 꾸준히 느끼면서 개선하지 않는 삶, 아니 나 자신에게 염증을 느낀다. 과거의 나는 이런 삶을 바랐을까, 미래의 나의 시간을 앗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앞서 말했다. 타인의 산책길을 내 여행길로 쓰고 싶다고. 누구의 일상은 나에게 여행의 순간이 되는데 왜 내 일상은 두서없이 부유하기만 하는 건지. 어쩌면 여행 같은 순간이 깃들 수 있는 일상일 텐데 가능성을 싹 틔우지도 못하게 한 건 내가 아닐지.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순간적인 도파민만 찾아다니는 중인 건지.
꾸준한 삶을 살고 싶었다. 눈에 띄는 발전은 없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삶.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모든 것들이 생각에 머문다. 아무래도 이게 문제 같다.
다음 달은, 다음 주는, 당장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난달 보다 나은 이번 달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퇴행하고 후회하는 날들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저기로 여행을 가려고 하다가 여기서 길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