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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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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들과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내뿜는 그리움에 질식할 것만 같아요. 누군가는 안부조차 함부로 묻지 말라고, 안부를 듣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일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해요.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죄를 짓고 싶어요.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 <그래서> 부분, 김소연

 

 

당신은 정말 그렇게 지내고 있는 걸까요.

 

나의 죄는 나의 손을 떠나 당신의 눈꺼풀 아래 내려앉은 듯해요. 꿈에서라도 용서받고 싶어요. 용서받지 못할 죄라서 오히려 기뻐요. 이제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지금으로서는 아주 오래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아요.

 

우선 나는 내가 써놓았던 글 하나하나에 용서를 구해야 해요. 그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질 않고 그립기만 해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죄가 된다는 것을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게 되었어요. 오래전부터 받아온 벌이기는 해도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아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잔열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리움은 멀고 슬픔은 가깝네요. 멀어질수록 환해지는 그리움을 행운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허락된 그리움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 나는 한 번 더 무너져요. 어제는 분명 무너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창고의 문을 열고 내게 다가와 내 몸에 박힌 별들을 뽑아주기를. 하지만 당신이 내 최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나는 오래전에 당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신도 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창고 앞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인간으로 갈라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헤어진 바로 그 시각에 당신은 이 창고 안에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바늘 잎의 별> 부분, 박상순

 

 

내게도 마지막이 찾아올까요. 그런 상상이 처음부터 불온한 것이면 어쩌죠. 내가 그랬잖아요. 가능성의 틈을 허용하지 않는 상상은 불온하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래서 당신은 나와 멀어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걸까요.

 

다른 사람들의 그리움이 안개라면 나의 그리움은 바람이라는 것을. 당신은 오늘도 나의 죄와 가까워지고 나는 그만큼 또다시 당신과 멀어져요. 내게 다른 죄목이 추가되기 전에 눈을 감도록 할게요.

 

눈꺼풀이 아주 많이 무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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