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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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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것에 죄책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어느 동네의 아무개가 길고양이를 학대했다는 뉴스를 보는 것은 차라리 괜찮다. 그 사람을 비난하면 되니까. 하지만 나쁜 인간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문명과 그 속에서 내가 누리는 삶 자체가 다른 존재를 극한까지 착취한 결과라는 것을 실감할 때,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곤 한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그 수많은 착취의 역사 속에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로 나간 최초의 개 라이카의 이야기가 있다. 우주 진출을 놓고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냉전 시대, 수개월의 훈련 끝에 인류의 선택을 받은 라이카는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 안에서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았다. 개 한 마리를 지구로 귀환시킬 기술을 위해 우주 진출을 지연시킬 수는 없었기에 처음부터 예고된 희생이었다.


뮤지컬 <라이카>는 이 라이카가 죽지 않고 우리가 잘 아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속 왕자의 별 B612에 불시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신선한 상상으로 시작된다. 다만 우리가 알던 순수하고 애수 어린 ‘어린 왕자’는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인간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인간말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설정이다. 라이카를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키고 싶어 하는 왕자와 그를 만류하며 중재자를 자처하는 장미, 그리고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 인간들의 계획이 아니라 그저 사고였다고 믿는 라이카. 이 개성 뚜렷한 세 캐릭터의 이야기가 1막을 이룬다.


1막의 라이카를 관통하는 테마는 기다림이다. 라이카는 “기다려” 명령을 참 잘 듣는 개였고, 그래서 우주견으로 선택받았다. 1막 초반에서 캐롤라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불렀던 ‘기다려’가 후반부에서 ‘기다리지 않아’로 변주되는 대목은 기발하면서도 슬픈 전환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라이카는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인간들은 라이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는 뼈아픈 진실이 밝혀진 후에 라이카의 절규가 담긴 ‘인간처럼Ⅱ’는 1막의 마지막 넘버이자 클라이맥스로, 2막에 관한 기대감을 높인다.

 

2막은 왕자가 인간을 증오하게 된 사연, 그리고 인간말살 계획을 둘러싼 왕자와 라이카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을 말살하기 위해 지구를 소행성과 충돌시키려는 왕자. 그는 더 큰 목적을 위해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방식은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인간과 닮았다. 이와 대립하는 라이카는 인간이 나쁘다고 한들 그들을 심판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소행성과 지구를 충돌시킨다면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체들 역시 죽는다는 점도 라이카가 왕자의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망설이는 이유다.


둘의 갈등은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에게 징벌을 내리려는 왕자와 그것만이 유일한 답일까 고민하는 라이카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2막 내내 이어지던 둘의 첨예한 갈등이 해소되는 지점은 다소 허무하다. 인간을 무작정 용서하거나 말살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라이카의 말 한 마디에 왕자가 너무 쉽게 설득되기 때문이다. 라이카가 말하는 제3의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왕자가 마음을 바꾸는 모습은 더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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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설득이 와닿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라이카가 인간의 방식과는 다른 제3의 방법을 추구하면서도 사실 극에서는 내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B612에 불시착했을 때 라이카가 이족보행과 말을 하며 자신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자 왕자는 인간이 아니라 ‘존재’가 된 것이라고 바로잡아 준다. 장미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넘버 ‘나는 아름답다’에서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존재는 <라이카>에서 중요한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존재’라는 것의 특성이 인간과 흡사하다. 네 발로 다니고 멍멍 짖던 라이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도 하며 살았을 텐데.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게 된 다음에야 왕자로부터 ‘존재’로 호명되고, 존재가 되니 이전과 달리 생각이 많아졌다고까지 말하는 라이카의 모습을 보니 사람과 비슷해짐으로써 더 고차원적인 무언가로 ‘승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왕자, 장미, 로보케트도 비인간존재를 표방하지만 이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하는 동기는 모두 인간을 닮았다. 게다가 우주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이라는 단일종에 너무 관심이 많다. 왕자의 인간말살 계획을 세우는 동기에 갸우뚱하게 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과 한계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라이카의 이야기도, 『어린 왕자』 원작도, 이 뮤지컬도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며 인간의 틀로 세상을 보는 우리가 다른 관점을 상상해보기란 쉽지 않다. 개는 개의 방식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르므로 개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언제나 개는 의인화된다. 그러니 우리가 비인간존재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이카의 상황을 포함해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관점이 아닌 제3의 다른 관점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연해 보이는 명제조차 인간중심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 ‘다른 관점’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오랫동안 뿌리박혀 있던 우리의 인식을 뒤집고 사회의 구조를 뒤흔드는 일에 가까울 테다. 그래서 <라이카>는 그 답을 유보한 채 좀 더 쉬운 이야기로 돌아온다. 라이카가 양심을 가진 선한 인간 캐롤라인과 조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라이카를 비롯해 우주기술 발전을 위해 희생된 개들을 기리며 이야기의 문을 닫는 것이다.


비인간존재에 관해 좀 더 깊은 담론을 기대한 관객에는 다소 싱거운 결말일 수 있겠다. 하지만 ‘비인간존재’라는 단어조차 아직 생소한 데다가 1차원적인 동물학대 뉴스도 끊임이 없는 지금 사회에 <라이카>는 충분히 필요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도 높다. 개성 있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넘버는 중독성이 있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인류말살 지구파괴라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할 방법이 자전거 타기라는 것도 극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서사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의 동화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운 우주 배경 역시 무대에서 아름답게 구현된다.


이처럼 비인간존재가 표현되는 방식이나 왕자와 라이카의 입장 차이가 봉합되는 과정은 다소 아쉽지만, <라이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충분히 던져주는 탄탄한 작품이다. 작품이 다 말해주지 않은 ‘우리를 구할 라이카만의 방법’에 대해서는 극이 끝나고도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이미 착취가 시스템의 바탕인 이 세상에서 인간인 내가 인간 아닌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이카>는 인간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홍보되었지만, 나에겐 그보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묻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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