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는 냉전시대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파견된 최초의 우주탐사견이다. 피와 살이 튀는 물리적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분돼 또다른 형태의 전쟁을 벌였다. 냉전이라 불리는 이 시기에 기술력은 살육 없이도 각국의 건재함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하고도 유효한 수단이었다.
특히 인간 삶의 터전인 지구를 벗어나 우주 저 멀리 낯선 땅을 밟는 건 그 적국에 과시할 수 있는 기술력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땅도 아니고 하늘, 무려 지구를 벗어나는 그 여정에 아무런 테스트도 없이 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련에서는 라이카를 생각해냈다. 인간과 유사하면서도 훈련이 용이한 생명체들을 우주 공간에 먼저 보내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확인하는 것. 조금은 잔인하고도 현실적인 이 방안은 고작 100년도 되지 않는 과거에 실제로 시행됐으며 라이카 이후로도 수많은 개와 또다른 생명체가 인간 대신 희생됐다.
여러분은 이런 우주 탐사견 라이카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나는 라이카에 대해 몰랐다. 아닌가, 어릴때 들어본 적은 있었나. 여하간 중요한 것은 그간 라이카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거다. 아마 이번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라이카에 대해 앞으로도 모르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매일의 출근만으로도 바쁘고 피곤한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우주로 떠난 개의 이야기에 관심 가질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 말에는 이런 단서 조항이 붙는다. 이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면!
3월 14일부터 오는 5월 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진행되고 있는 창작뮤지컬 <라이카>는 방금까지 설명한 우주견 라이카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라이카의 희생을 찬양하는 소련인들의 웅장한 찬가로 시작하는 이 작품 덕에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라이카의 이야기가 들어섰다.
단지 라이카뿐일까.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또 다른 무언가가 인간을 위해 희생되고 있을테다. 나는 그에 대한 자각도 없이 그로부터 발전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고 있으니 일종의 공범인 셈이다. 하지만 과도한 죄책감보다는 감사를 품고 살아가는 게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 희생된 라이카에 대한 감사를, 그것을 잊지 않고 전하며 알고 기억하도록 만드는 작품에 대한 감사를,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이 글을 빌려 전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난다. 다양화되고 복잡화된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이 모든 일에 관여하거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역할에 기대 살아가게 된다. 거리를 청소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부터 회사에 출근해 사소해 보이는 업무를 처리하고 세상을 바꿀 엄청난 연구를 수행하는 일까지 모두 그렇다.
그 어떤 일이든 세상은 연결돼있고 그 일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누군가의 관심과 양심 섞인 고찰로 인해 나는 라이카의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됐고, 과거에 이러한 시도를 했던 소련의 이야기는 시간을 넘어 미래로 이어진다. 거창하게 적었으나 이날 뮤지컬이 진행되는 내내 라이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의 덕을 보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그 사실이 참 생경하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 라이카는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우주로 떠난 라이카는 바오밥나무들과 장비와 어린왕자가 사는 별에 내려앉아 시간을 보낸다. 라이카는 섬에 나름 적응해 살아가면서도 지구에 돌아갈 방법을 찾지만 인간들은 처음부터 라이카를 다시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 기술 개발 일정에 복귀 장치까지 만들 시간과 기술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카는 그 사실을 알고난 뒤 갈등하면서도 지구와 그를 돌봐주던 연구원을 그리워한다. 그리고는 모종의 사건으로 과거의 죄책감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지구를 파괴하려하던 어린왕자와 라이카는 삶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결국 우주를 향해 떠난 제2의 라이카들을 구조하고 돌봐주는 삶을 산다.
어린왕자 이야기를 변주해 우주견 라이카와 엮어낸 이 작품에는 동화 같은 상상력과 따스함이 있다. 약간은 가벼운 면도 있지만 독특한 컨셉과 위트있는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고유의 감성이 있고 중간중간 건져올리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과 윤리적인 질문들이 존재한다.
특히 시선을 잡아끄는 무대장치와 유머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의 매력을 더해준다. 실용음악 밴드 구성이 더해진 음악도 뛰어났고 일반적인 극보다 대중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어 좀 더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정극이나 진지한 분위기의 뮤지컬을 선호한다면 고려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중간중간 들어간 유머코드나 일부 음악이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 나이대의 가족을 데리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찾는다면 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의 주제 이야기인 우주견 라이카에게도, 무대를 꾸며준 배우들과 제작진에게도, 금요일 저녁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 있다는 사실에도. 우주견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친숙한 어린왕자라는 이야기를 결합시킨 동화 같은 상상력의 뮤지컬, 라이카는 오는 5월까지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