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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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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계와 다른 그림의 세계


 

마르크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문학 교과서에서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함께 실렸던 그림을 보고 느꼈던 이상한 기분. 그리움인지 슬픔인지 포근함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감정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흐릿하게 남아 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모든 감정들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움과 슬픔과 포근함을 동시에 안겨 준 샤갈의 그림. 경계가 불분명한 이미지들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하고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했고, 그림 속 사물과 동물들이 현실 세계의 규칙과 무관하게 배치된 방식은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내 안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던 미지의 감정들을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정돈된 언어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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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샤갈의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세계에서 이렇게 양 머리 안에 다른 물체가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물체가 같은 장소를 점유하는 것은 물리 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에 있는 집과 여성은 거꾸로 그려져 있는데, 이 역시 중력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중략) 따라서 이런 규칙들을 적용하려는 엄격한 자세를 버려야만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p.34~36)

 

즉, 실세계와 다른 그림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학습한 시각과 다른 시각을 학습해야 한다. 예술 작품을 보는 새로운 눈을 획득한다면, 그림 속 세계를 현실 세계와 다른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라고 여긴다면, 그런 믿음으로 몸과 마음을 연다면, 신비한 차원의 예술 작품 감상이 가능해진다고 <감상의 심리학>은 말한다.

 

 

 

형태와 색의 해체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보는 물체는 색과 형태가 늘 동일한 경계선 안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대 회화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종종 색이 형태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팁은 "형태를 알아보려는 습관을 중지하고, 색과 그 배열에 주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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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라울 뒤피의 <로열 애스콧의 끌림>이다. 흥미롭게도 작품 속에서 색이 형태를 넘어 존재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샤갈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라울 뒤피의 그림에 실세계의 논리를 적용하려 한다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감상법을 제안한다. “우리가 실세계에서 보는 물체들은 형태의 경계와 색의 경계가 일치하고, 우리는 이 규칙에 철저히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을 본다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볼 때는 색이 형태에 반드시 갇혀야만 한다는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형태와 색에 주의를 분산해서 볼 필요가 있고, 그럴 때 경쾌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p.54)


 

 

구성과 균형


 

구성은 요소들의 배열에 관한 것으로, 작품의 안정감, 역동, 조화, 균형 같은 추상적 성질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구성과 균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각적인 무게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심리적인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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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카라의 작품 <일몰 후>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왼쪽에 건물이 있고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에 원기둥 형태의 창고 같은 건물이 있다. 건물들의 시각적인 무게감으로만 보았을 때 왼쪽에 무게 중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림에는 없지만 오른쪽에 지는 해가 있기 때문에, 오른쪽은 점진적으로 어떤 일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오른쪽 공간이 마음을 붙잡는다면 심리적으로 그림의 무게가 오른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 그래서 시각적인 무게감과 심리적인 무게감이 평균되어 최종적으로 균형이 완벽한 상태에 도달할 수도 있다.” (p.109)

 

 

 

아는 만큼 깊어지는, 감상의 심리학


 

이 책에는 "형태와 색의 해체", "구성과 균형"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한다.

 

그림 속에 나타난 표정, 자세, 동작 등에 신체로 공감하며 그림을 몸으로 감상하는 법, 움직임과 리듬에 집중하는 방법, 이미지를 '나에게 주어진 문제'로 생각하고 문제를 푸는 과정에 몰입하며 문제 해결로서 감상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는 아는 만큼 깊어진다. 감상은 수동적 행위가 아닌 머리와 몸과 온 마음이 동원되는 능동적인 행위라는 점을 체득하고 나니, 앞으로 다가올 예술 작품 감상의 시간이 몹시 기대된다.

 

그림 앞에 서서 무엇을 봐야 할지, 무엇을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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