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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색다르다. 이제껏 읽어왔던 미술 감상 안내서와는 다르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 몇 개를 예시로 보여주며,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고 작가의 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던져주는 방식이 아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공식을 배우는 것처럼. 객관적인 그림의 감상법들, 그리고 그 객관성을 뒷받침해 주는 여러 이론과 실험을 함께 제시한다. 논문과 인문학 저서 그 경계의 어딘가에 있을 이 책은. 그림 앞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딱 맞는지도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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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심리학은 예술을 심리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인 시대적 우연의 산물이기에 분석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예술을 실험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일반감상자들이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서울대에서 약 10년간 예술 심리학 강의를 진행한 오성주 교수의 <감상의 심리학>은 심리학이나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건네며,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감상을 함께 제시한다. 트렌디하고 대중적인 자료들을 곁들여 설명하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분야 너머에서도 충분히 적용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넓고 근본적인 접근방식을 알려줌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전시를 적지 않게 다녔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유럽 여행을 다닐 때도 미술관은 빼놓지 않고 갔다. 그럼에도 당당히 '나는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당당히는 무슨, 우물쭈물 말하라 해도 못 하겠다. 많이 보다 보면 보일 것이라는 믿음하에, 마치 인공지능의 딥러닝처럼 최대한 많은 자료를 보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보이지 않고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나만의 소설만을 쓴다. 움직이는 영화와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줄글과는 달리 그림은 멈춰 있지 않는가. 정적인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상자가 훨씬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여 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여기 <감상의 심리학>이 제공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 그리고 그림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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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선을 그대로 들고 그림에 가져오면 안 된다고, 둘을 분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실 세상과 그림은 그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세한 예시로 '색과 형태'가 등장한다. ‘검은색 네모’와 ‘네모난 검은색’. 검은색 네모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지만, 네모난 검은색은 어딘가 잘 와닿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행위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형태를 먼저 파악한다. 색은 그저 부가적인 속성일 뿐이다. 그러나 그림 세계에서는 색이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형태를 넘쳐서 존재하는 색. 색이 더 이상 형태 안에 갇혀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특히 라울 뒤피의 <로열 애스콧의 끌림>을 제시하며, 색깔이 형태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에서도,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태를 사용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질감과 색상 그 자체를 대상으로 인지하는 시도. 현실 세상을 바라보는 논리를 잊어버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그림을 바라본다면.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음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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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유독 생동감 넘친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넘쳐흐르는 생동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고흐는 피아노를 칠 때마다 자꾸 색이 떠올라 치기 힘들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감각의 연결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결과, 즉 공감각은 주로 창작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역시 예술가는 타고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던 참에, 후천적으로도 공감각이 발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다.

 

또한 뒤이어 등장하는, bouba 와 kiki 라는 이름이 각각 어떤 물체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대답 (왼쪽이 bouba, 오른쪽이 kiki) 을 했다는 자료. 이는 바나나와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과 매운맛처럼 학습된 결과일 확률이 높으며 이처럼 특정 감각과 짝지어진 대상을 잘 활용하면 그림 감상에 효과적이라 이야기한다. 그림이 어떤 공감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예측하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나의 전공인 경영학 그리고 마케팅 속에서의 브랜드 네이밍과 연관하여 이 심리학적 지식을 마음껏 확장하여 활용해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로테스크 그리고 기대 오류


 

고어물을 꽤 좋아한다. 그로테스크한 영상, 그림, 심지어는 글도 좋아하는데. 왜 그럴까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었으나,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그럴듯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로테스크함이 사람의 신체와 강하게 관련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대상의 내용이 평소의 친숙한 경험과 일치하지 않을 때 불쾌함과 기괴함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A(사람)과 B(움직임)처럼, 신경 간 강한 결합이 깨질 때 (사람인데 전혀 움직이지 않음) 그 갈등이 공포와 충격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시체인데 뛰어다니는 좀비, 혹은 박수를 손등으로 치는 사람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겠다.

 

이 책에서는 에곤 쉴레, 프랜시스 베이컨, 생 수틴 등 그로테스크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까지에 기여한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그로테스크, 그 심리적 감정이 정확히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아는 것은 영화와 소설을 즐겨 보는 나에게 더 넓은 관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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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게 다가오는 그림들의 한 가지 공통점. 그것은 바로 기대 오류이다. 감각 자료들에 대한 추측과 다른 것, 쉽게 말하면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예상을 깨는 요소들은 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장치로 기능한다.

 

세 가지의 기대 오류를 제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인지적 기대 오류가 흥미롭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를 보자. 이 작품 속 대상들의 배치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단순히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대상들을 배치함으로써, 기대 오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데페이즈망 (dépaysement) 기법이라고도 하며, 러시아문학 이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제안한 '낯설게하기 (defamiliarization)'이라는 개념과도 닮아 있다. 배치뿐만 아니라, 크기나 색 그리고 형태들 속성들을 예상치 못하게 왜곡시키고 변형시킴으로써 유발할 수도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그로테스크 또한 이 '낯설게 하기'의 하위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림을 재밌게 만드는 것들은 이러한 반전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일 테니 말이다.

 

현실과는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그림. 우리는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림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그 새롭고 톡톡 튀는 발상들을 최대로 느끼고 마음껏 누려야 한다. 그리고 연습해야 한다.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그 관점을! 오성주 교수가 말했듯, 인공지능은 그림 감상을 대신해줄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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