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고 그것으로 세계는 성립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중략)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한다면,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 사실이 있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라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이지만 그동안 이 말의 진의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이 되어라’, ‘나만의 길을 걸어가라’ 같이 타인이나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살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고, 심지어 예전에 창업할 때는 슬로건으로 내걸 정도로 동의하고는 있었지만, 마음 깊이 공감했던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실상은 거의 항상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내가 아닌 남이 되려고 했다. 친구들이나 미디어 속 연예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면 성급하게 흉내 냈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기를 얻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나를 모르는 새로운 집단에 들어갈 때마다 호탕하고 스스럼없는 척 굴었던 적이라야 무수히 많고. 유행하는 옷이나 주변 친구들이 많이 입는 스타일이 있으면 내 취향에 정말 부합하는지 따져보지 않고 냅다 비슷한 것들로 사들였다. 옷이든 취향이든 사고방식이든, 언뜻 보기에 좋은 것 같으면, 나의 기질과 취향은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모방하려고 들었다.
노상 숨 가쁘게 남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닌 것이다. 나를 두고 갈까 봐 앞서가는 아이들을 다급하게 쫓아가던 중학생 시절처럼. 동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리를 바짝 쫓아가야 했던 시절의 감각이 몸에 밴 것인지. 아니면 다들 말하듯 남과 동화되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회 특유의 분위기 탓인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남들 뒤에 따라붙어 동족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남을 따라 해서 만족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남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긍정하게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올해 초까지도, 나는 왜 주변 사람들처럼 하지 못하는 건지 자책하고 있었다. 마음이 괴롭고 수치스러워서 거의 매일 일기를 써야 했다. 그런데 일기를 쓰다 보면 상황을 개선할 해결책이나 스스로를 위로할 문장들이 술술 떠오른다. 그날도 그랬다. 괴로운 마음을 일기에 털어놓다가 문득 깨달았다. ‘쟤는 쟤고, 나는 나지.’ 그래서 이렇게 적었다. ‘쟤는 쟤의 삶을 사는 거고,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거야. 우린 성격도 장점도 다른 사람이니까. 쟤와 비슷하게 살아갈 필요도 없고, 남들과 발맞춰 갈 필요 없다. 다른 누구의 삶도 아닌 나의 삶을 기획하자. 얘도, 쟤도, 걔도 아닌, 내 삶.’
서로 다른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세계가 이루어지는 건데 왜 자꾸 다른 색이 되지 못해서 안달했을까.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되면 된다. 나의 기질과 성향과 취향에 맞춰 나를 잘 쌓아 올리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내 모습에 흡족해할 수 있겠지. 내 느낌, 내 감각, 내 생각을 시간을 두고 차분히 들여다보며 내게 알맞은 것들을 골라내 삶에 들여야겠다.
이럴 때면 나이를 먹어가는 게 좋은 것 같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