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아유무의 <러브 앤 프리>라는 책에 나온 ‘돌고래 시간’은 언제나 평온한 돌고래처럼 마음을 정화하고 충전할 수 있는 일상의 공백이라는 의미가 있다. 자신에게는 어떤 것들이 그 역할을 해주는지 잠시 생각해 보고 손으로 적어 보는 것은 약간의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 기분이 안 좋았다면 좋아지진 않더라도 그저 그런 상태로 말이다.
요즘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발견하고 향유하는 이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외부 세계의 무언가가 나를 공격하더라도 언제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안식처를 하나쯤 만들어 두는 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것이겠지. 나에게는 제철 식재료로 직접 만든 요리와 사계절의 색이 그 역할을 해준다.
투박하지만 내 손으로
마당에서 딴 팬지꽃으로 팬지꽃 파스타를 만들고 아카시아 꽃은 튀김이 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모든 요리 재료는 주인공 혜원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 직접 채소를 기르고 수확하는 과정, 그리고 그 채소로 손수 요리하는 과정. 모두 제힘으로 해내는 것이다. 요리의 처음과 끝을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하는 것이 때론 번거롭게 느껴지지만 번거로움을 상쇄시킬 만큼의 뿌듯함을 같이 맛볼 수 있다. 내 손으로 만든 것에는 애정이 깃들기 마련이라서,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최면을 걸기도 하는 듯하다.
특히나 3월의 제철 음식은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냉이, 달래, 쑥 등 겨우내 건조해졌던 입안을 향기롭게 해줄 봄나물이 쏟아지니까. 제철에 나온 식재료로 계절을 즐기는 일은 어쩌면 제철의 행복을 꼭꼭 씹어 잘 소화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겠다.
계절의 팔레트
무슨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초여름의 나뭇잎 색이요.”라고 대답한다면 어떤 시선이 쏟아질까.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낙인찍히긴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초록색이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초여름의, 특히 5월의 나뭇잎 색은 초록색도 아니고 연두색도 아닌 그 어디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렇게 계절마다 색감 힐링 포인트가 하나씩 있다. 계절을 색깔로 기억하며 또 다른 나만의 달력을 채색하는 셈이다. 봄에는 5월의 푸릇한 나뭇잎 색, 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의 푸른 듯 흰 듯한 바다색, 가을에는 집 근처 산책길의 은행나무 색, 겨울에는 쌓인 눈 위에 신발 자국이 남아 살짝 거뭇해진 흰색. 색상 코드표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팔레트가 올해도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올해는 봄과 가을이 예년에 비해 짧을 것이라고들 한다. 대개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는 깊은 애정을 쏟지 못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봄과 가을은 우리와 몇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다. 우리는 따뜻해지는 날씨에 괜스레 마음에 설레 봄옷을 사곤 했고, 가을바람을 맞고 센치한 기분을 느끼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스치듯 지나갈 계절 속에서 나만의 돌고래 시간을 잘 포착한다면 사계절은 기억 속에서나마 완전한 모습이지 않을까? 모두에게 그런 2025년이 되기를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