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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0년 전 일이다. MOMA라고 알려진 뉴욕현대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의 필자는 미술만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규모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여길 다 돌아야겠다'라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미술관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물화, 풍경화 등이 나왔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디선가 익숙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산뜻한 발걸음으로 미술관을 걸어다녔다. 어느 순간 동시대 미술 섹터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순간부터 필자의 발걸음은 전혀 산뜻하지 않게 되었다.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그림 사이를 다니며, 머리는 갸우뚱, 입에서는 '이게 뭐야'라는 말이 중얼중얼.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들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 그림을 계속 바라보다가 이해를 포기하고 지나치길 여러 번, 결국 10년 전 야심차게 세웠던 굳은 결심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는 바쁜 현실과 정신없는 삶에서 벗어나게도 해주지만, 난해한 그림을 마주할 땐 도대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시대 미술에서의 추상화를 보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감을 마냥 흩뿌린, 붓을 짓누른 듯한 작품들 사이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애써 작품을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가 뭔지 모르겠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혹은, 안정된 마음으로 작품을 한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그럴 때조차 우리 머릿속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감상이란, 정말 생각 없이 가능한 행위인 걸까?

 

아주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감상의 심리학>이라는 책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 발생하는 머릿속의 일들을 심리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실제로 작가인 오성주 교수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인기가 높은 내용이라고 한다. 자, 그렇다면 한 번 들여다보자.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 동그란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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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을 펼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과학으로서의 '감상에 대한 설명. 우리가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부터 친절한 설명이 나온다.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정보는 뇌로 가서 색과 움직임, 형태 등이 분석되고 저장된 기억과 통합되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저장된 기억'이다. 살다가 죽는 모든 생명들은 각자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하나밖에 없는 기억을 저장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본다'라는 행위는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같을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감상을 이해할 수 있다. 감상의, 1인칭적인 해석을 말이다.

 

이후 미술의 발전 과정을 가볍게 훑는다. 재현의 시대를 거쳐 표현의 시대에 당도하고, 그 이후로는 인상의 시대, 곧이어 찾아오는 추상과 초현실의 시대가 있다. 가장 마지막에 찾아오는 시대는 개념의 시대. 우리는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자연스레 '그림 감상의 발달' 또한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로 편애한다. 두 번째로 아름다움과 사실성을 확인한다. 세 번째로 표현력을 관찰하고, 네 번째로 스타일과 형식에 관심을 간는다. 마지막으로 자율적 판단을 통해 작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전통과 사회적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기초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감상의 심리학>은 결코 그림에 대한 어떤 특정한 해석 또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감상이 주관적임을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게끔 설명을 제시하고, 해당 설명에 따라 독자가 감상이란 무엇인지, 감상을 통해 우리 몸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림, 미술, 예술이라는 것보다도 '감상'이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감상하는 '나'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 오성주 교수는 그림의 다양한 유형과 함께 그림을 감상할 때의 과학적 흐름을 설명한다. 일컨대, 풍경화를 사람들이 유독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필자가 재밌게 본 것은 감상이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의 7장은 '몸으로 감상하기'에 대해서 나와있다. '체화인지', 즉 마음이 몸의 영향을 받는다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그 예시를 드는 챕터이다. 예를 들어, 표정이나 현장감 같은 '동적인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몸으로 그림을 감상하게 되고, 그 감상하는 과정이 마음에도 동화되게 된다. 생각해보면, 꽤 오래 전 그림들도 몸으로 감상할 수 있겠지만 최근 동시대 미술의 작품들이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관람객들이 실제로 몸을 통해 작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되면서 감상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문득 이우환 미술관에서 고요한 종소리를 귀로 들으며 어딘가 공허하면서도 오히려 꽉 찬 듯한 장소의 공간감을 필자의 몸으로 가득 안았던 경험이 떠오른다. 이런 게 몸으로 감상하는 과정이었을까. 확실한 건 몸으로 느낀 그 고요함이 마음에도 울러퍼진 경험을 했다는 것이겠다.

 

<감상의 심리학>을 읽으면서 느낀 건, 감상을 할 때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 감상을 할 때 다른 요소는 다 제쳐두고 오직 그 그림 자체에 대해서만 해석하려고 은연 중에 사고를 했었다. 그러나 <감상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포인트는 '나'라는 주체로 능동적인 감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감상을 하는 행위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며, 이 분석이 우리가 감상이라는 행위를 하며 느끼는 다양한 경험을 설명해주고 이해하게끔 한다. 따라서, 필자가 보다 자유롭게 그림을 바라보아도, 그것은 필자만의, 아주 유니크한 감상이 되는 것일거다. 필자는 그러므로, 해방감이라는 재밌는 감정을 <감상의 심리학>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감상의 심리학>은 감상하는 '나', 감상하는 행위라는 인문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싶을 때 읽으면 적격일 것이다. 그로 인해, 감상이라는 부가적인 행위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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