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견고딕걸_poster_0311.jpg

 

 

2022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뜻하지 않게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한 연극

 

 

연극 [견고딕걸](작 박지선/연출 신재훈)이 극단 작은방과 두산아트센터 공동 기획으로 오는 3월 29일부터 4월 1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2022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어 평단의 호평을 받은 연극 [견고딕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 그 뒤에 남겨진 이들의 갈등과 고통을 다룬다. 남겨진 짐을 짊어지고 은둔했던 삶과 이별하는 견고딕걸, 수민을 통해 현실 대면의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 견고딕체로 말한다. 볼드까지 넣는다. 내 면상에 신경 꺼! 내 인상 내 인성 내 인생에 신경 끄라고!"

 

연극은 온통 까만 고딕룩, 고딕메이크업을 한 김수민의 포효로 시작된다. 수민은 '어떻게 인생을 끝낼지' 고민하지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2년 전, 쌍둥이 동생 수빈은 전철을 기다리던 한 사람을 철로로 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타살과 함께 자살이 벌어진 사건으로,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공소권은 소멸되었고, 사건의 당사자는 이 세상에 없지만 피해자의 가족도, 가해자의 가족도 여전히 그날 이후를 살아가고 있다.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가치들이 세상을 도배하며 펼쳐지는 동안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가늠할 수 없도록 검은 고딕 메탈 스타일에 숨어 있는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 수민의 여정을 통해 뜻하지 않게 세상에 던져진 우리의 삶이 미래에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아갈 것인지 질문하고 그 대답을 마주한다.

 

수민의 여정에는 피해자 한지은의 각막을 이식받은 화이트 해커 '윤미나'와 심장을 기증받은 '강현지'가 동행한다. 이들은 수민이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러 가는 여정을 돕는다. 수민은 가해의 이유를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 피해자 앞에 마주 서려고 한다.

 

[견고딕걸]은 단순히 가해자 가족이 겪는 갈등과 비극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비극 이후에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살아갈 방법으로 마주한 대답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민은 남겨진 짐을 짊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은둔의 삶과 이별하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견고딕걸]은 발화하는 지문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를 건반·타악·베이스의 라이브 연주가 더욱 극대화하고, 인물의 심리는 리듬감있는 대사로 표현된다. 특히 타악기는 인물과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더 많은 이들을 위한 무대를 위해 전 회차 스크린을 통한 한글자막이 제공되며, 소리의 효과를 자막을 통해 감각할 수 있도록 그래픽적인 부분이 가미되었다. 일부회차(4.8~4.13)에는 시각장애 관객에게 FM송수신기로 폐쇄형 음성 해설을 제공한다.

 

[견고딕걸]은 연극 [은의 혀], [누에] 등을 통해 뛰어난 연극적 상상력을 보여준 바 있는 박지선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총기로 인한 참사를 일으킨 가해자의 가족이 쓴 책을 읽고 '만일 가해자 또래의 형제가 있다면 그 아이는 이 거대한 진앙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연출은 뮤지컬 [맥베스], 연극 [틴에이지 딕], [금조 이야기] 등을 연출한 극단 작은방의 신재훈 연출이 맡았다. 연출은 사회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리드미컬하게 풀어냈다.

 

신재훈 연출은 "[견고딕걸]을 오랜 시간 품고 있을 수 있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안간힘이 삶의 유일한 방편이라는 고통과 위로 때문입니다. 뻔뻔한 얼굴 뒤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떤 마음의 소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나와 얽힌 세상을 마주 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작품의 여정을 통해 배웁니다. 지금 빠져있는 구멍이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도박 같은 희망을 품어봅니다."라고 말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절망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고 용기를 내는 연극 [견고딕걸]에는 배우 서지우, 문가에, 임예슬, 김채원, 박세정 등이 출연하여 퇴장 없이 열연을 펼친다.

 

 

박형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 ART insight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