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예년보다 빠르고 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고가 따끔하다.
겨울을 언제부터 보내주어야 여름을 맞을 준비가 되는 것인지 도통 알아내질 못했는데. 긴팔이 짧아지는 시간을 체감도 못하도록 무섭게 쫓아오는 여름은 눈으로 하얗던 세상을 금방 푸르게 물들일 테다. 지나온 시간만큼 곱절로 빨라지는 시간의 속도란 매순간 새롭다.
유독 무서운 새하얀 겨울을 맞아야했던 어떤 유대인 소녀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읊조리던 아이에게 삶을 지속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세어도 세어지지 않던 하루하루가 아이를 어둠에 가라앉지 않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더 깊은 어둠이 온다 해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
불편한 다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소년 ‘줄리안’은 어느 날, 깊은 어둠에 갇혀버린 소녀 ‘사라’를 구한다.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줄리안’과 가족들은 ‘사라’를 끝까지 지키려 한다.
“넌 나한테 잘해주는 구나. 난 네게 잘해 준 적 없는데” / “그래도 넌 항상 달랐어”
하지만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사건이 그들에게 다가오는데… 서로를 비추는 유일한 빛이 된 소년과 소녀. 세상을 바꿀 단 하나의 러브 스토리.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전쟁의 잔악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인간성은 무엇에서 비롯하나. 평화와 일상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떠오르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가라앉는 지점에는 늘, 결국 용기와 기억이 자리한다.
다정할 용기
부잣집에서 잘 자라난 티없이 맑은 아이였던 사라. 그녀가 할머니가 되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영화의 메인 플롯이다.
나치의 억압 속에서 가족이 흩어지고 갑작스럽게 들이친 군인들로부터 도망치는 사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의 은신을 도운 것은 한쪽다리의 장애로 외면받던 아이 줄리안이었다. 또래로부터 받아본적 없던 친절을 능숙하게 베푸는 아이의 맑은 심성은 사라의 삶을 반짝 열어준다.
전쟁으로 어지럽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종종 상상한다. 대단한 승리를 도모하지는 못하더라도, 안타까운 이를 숨겨주고 배 채울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줄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이름을 남길 투사는 아니더라도 조용하고 따뜻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 친절 위에서 사라와 줄리안의 사랑은 어지러운 세상과 대비되어 더 아름답고 예쁘게 움튼다. 처음 줄리안이 건넸던 친절에 배었던 풋풋한 호감은 우정이, 사랑이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아 더없이 다정하고 용기있던 시간들은 사라의 상상 속 세계를 따뜻하게 물들인다.
무려 3년을 줄리안 가족의 보살핌에서 살아낸 사라는 쓰고 그리고 사랑하며 동화같은 평화를 누린다. 불안은 늘 도처에 도사리지만 현실에서든 환상에서든 자신을 지켜줄 하얀 새를 믿으며 그 새가 어찌할 수 없는 어둠을 몰아내주길 소원한다.
그럼에도, 긴긴 슬픔 뒤에 비가 개듯 영화는 어느 정도 해피엔딩을 맞는다. 엄마와 줄리안을 잃은 안타까움이 이 이야기가 단순한 동화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소 평면적인 플롯이지만 메시지를 전하려는 배우들의 연기, 로맨스의 주역이었던 두 십대의 감정선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무엇이 사람을 구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구원의 동의어를 헤아려본다.
다정, 친절, 배려, 공감, 용기, 미소.
그 모든 것을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될까. 그렇다면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좀더 쉬워져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