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도저히 못 보겠다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영화 <멜랑콜리아>를 관람했다. 이상한 아름다움과 숨을 틀어막는 힘을 가진 영화였다. 뭔가 느끼고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니 순식간에 버거워졌다. 저스틴의 푸르다 못해 검은 눈동자와 클레어의 허탈하게 패인 볼이 도저히 언어로 묘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의 모든 부분에 압도되어 엔딩 크레딧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었다. 영화를 감내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멜랑콜리아>는 희망과 웃음이 전소한 대저택을 배경으로 1부와 2부에 걸쳐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1부에서는 주인공 저스틴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초반의 저스틴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파티를 즐기지만, 영화 전반부가 전개될수록 저스틴은 가장 행복해야 할 자신의 결혼식에서 심한 우울감으로 인해 점점 흐트러져간다. 저스틴의 우울이 심연과도 같은 눈빛으로 관객에게 전염되는 가운데 다른 인물들은 행복한 주인공을 만들어내고자 여러 방식의 압박으로 그녀의 미소를 강요한다. 저스틴의 상사는 그녀에게 승진 소식을 전하며 축하하다가 돌연 그에 대한 보답으로 광고 문구를 떠올리라고 협박하고,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는 자신이 기획한 이벤트를 망치는 저스틴을 노골적으로 답답해한다. 저스틴의 형부 존은 결혼식에 들인 돈을 들먹이며 감정을 숨기라며 강요한다. 모든 언어적 폭력은 저스틴의 귀에, 그리고 우리의 귀에 속삭여지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스틴이 숨을 쉴 수 있게 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게 되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자신이 자신이어서 행복하지 못하는 저스틴은 감사한 줄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존재로 전락한다. 모두가 자기 할 말만 하기 바쁘고,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불쑥불쑥 드러나는 저스틴의 우울은 주변 인물들의 명백한 경멸과 나지막한 폭력으로 지워져간다.
저스틴의 엄마, 가비와 저스틴의 관계 또한 영화의 입체성에 한몫을 한다. 누구보다 솔직하고 무례한 가비는 결혼식장의 그 누구에게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우울을 토해내는 딸에게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 그러나 영화 내내 저스틴과의 유사점을 지닌 인물은 놀랍게도 가비이다. 둘은 똑같은 심연의 눈으로 정신없는 식장을 빠져나와 각자의 욕실에서 반신욕을 한다. 어쩌면 저스틴이 걷고 있는 안개 낀 길을 가비도 걸어보았거나, 아직 걷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저스틴을 볼 때마다 자신을 보는 것만 같을 가비에게, 고통의 눈을 가진 가비에게 딸을 위한 진심 어린 위로를 바라도 되는 것일까. 사회적인 활동이나, 남에 대한 공감이 불가한 냉소의 상태인 가비라는 인물은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입체적이다. 저스틴과 유사한 우울을 공유하기를 거부한 그녀는 종말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영화는 저스틴의 우울이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누군가의 우울에는 어떠한 무의식적인 착취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착취적이고, 지배적이며, 나약하게 묘사되는 주변 인물들의 폭력을 보고 있으면, 우울이 그녀의 기질 때문이리라는 추측 따위는 시작부터 버리게 된다. 저스틴의 남편, 마이클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하찮음을 상징하는 캐릭터이고, 형부 존은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지만 결국 마구간 건초더미에 묻힌다. 결혼식을 마치고 꽉 조이던 드레스를 벗고 조금 편해진 저스틴을 보며 바로 탈의하는 마이클의 모습은 애원해야만 멈춰지는, 사랑이라는 이름 뒤의 착취를 상징한다. 영화 속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모든 강압의 장면이 탄식이 나올 정도로 잔인하다. 마이클이 그곳에 있는 이상, 그녀에게 침실은 이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저스틴은 꽉 조이는 드레스의 지퍼를 다시 올리며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밤공기 속으로 도망친다.
저스틴이 현실 세계에서 붕 뜬 캐릭터성을 지녔다면, 가장 현실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건 클레어이다. 언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모든 역할을 부여잡고 살아내려고 낑낑대는 모습은 우리가 아는 이들과도 닮아있기에 어쩌면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저스틴만큼이나 우울했을 여자 클레어. 그런데도 클레어가 삶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이미 우울에 잠식당한 동생을 애써 부정하며 눈앞에 존재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순응한다.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이 그녀에게는 미지와 공포의 영역이었을 수 있다. 자신이 평생을 외면했던 그 모든 것이 뭉쳐져 발광하는 모습, 즉 우울의 행성을 마주한 그녀의 마지막 몸부림이 기억에 남는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 귀를 막고 꿈틀대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
지구 종말을 맞이하기 위해 저스틴, 클레어, 레오 세 사람이 모여앉았을 때, 저스틴과 클레어의 어린 아들 레오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올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살면서 죽음을 경험한 자와 죽음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는 어쩌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결고리를 지니지는 않을까.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이 허술한 마법 동굴 안에서 이들은 눈을 감은 채 의연하다. 가끔 저스틴이 별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무한한 우주를 그릴 때, 현존하는 고통의 하찮음을 깊숙이 느끼고 편해지고자 고군분투하는 저스틴에게 공감했다. 죽음의 넝쿨을 발목에 매달고 살아온 저스틴에게 충돌하는 행성의 일시적인 섬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욕조에 들어가는 것, 밥 한 술 뜨는 것조차 버거운 한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돌진해오는 종말의 행성을 편안히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