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미소 짓게 했고, 그 따뜻한 마음은 나를 울게
했다. 왜 나는 선한 이야기를 마주할 때, 눈물을 흘리는가. 그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적 경향이라고 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고 여겼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착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최근 <테드
래소>라는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테드 래소>는 축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식축구 코치 테드 래소가 영국 축구팀 AFC 리치먼드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코미디 시리즈다. 처음에 드라마를 볼 때 나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마지막 화를 볼 때쯤엔 펑펑 울고 있었다.
줄거리를 들으면 당연히 축구 이야기가 메인일 것 같지만, 의외로 이 드라마에서 축구는 별로 중요치 않다. 테드 래소는 매일
밤 직접 구운 달콤한 비스킷을 우리 손에 쥐여주고,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웃게 하며 시청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단숨에 줄인다. 리치먼드의 현 구단주인 리베카는 전 구단주이자 전남편인 루퍼트에게 복수하기 위해 구단을 망치고 싶어 했다. 리베카는 그 계획의 일부로 테드를 고용했지만, 그가 지나치게 좋은
사람인 탓에 계획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계획의 실패가, 리치먼드의
우승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테드 래소>는 그들의 승리보다 패배로 가득 차 있다. 축구에 대한 기초
지식조차 부족한 테드는 시즌이 진행되어 간다고 해서 갑자기 천재 감독으로 바뀌거나, 축구에 해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리치먼드는 매번 처참하게 패배하고, 강등되며,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광경을 보고 있으면, 테드를 계속 코치 자리에 앉히는 게 맞는 선택일까라는 의문까지 든다. 테드
래소는 분명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정말 지금 리치먼드에게 필요한 감독이 그저 좋은 사람인 테드 래소일까?
마음속에 자라나는 수많은 의문에도, 나는 매번 눈물을 닦으며 테드 래소라는 사람을 믿고 싶었다. 그는
과할 정도로 선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면전에 욕을 퍼붓고,
대놓고 무시하는 말을 해도 그는 웃음과 농담으로 되받아친다. 리베카와 구단 선수들, 자신에게 못되게 구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며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하고, 심지어 그를 배반해도 테드 래소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두 번째 기회를 믿는다며 다시 손을 내미는, 비현실적으로 선한 사람이 테드 래소다.
"내가
뭘 이루든 못 이루는 난 중요하다는 믿음. 우리가 상처를 받았든 상처를 줬든, 우리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 희망에 대한 믿음은 어때? 이런 것들에 휘둘리고 싶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 내가, 우리가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신을 믿는 것, 서로를 믿는 것.
이런 게 살아가는 것의 밑받침이 되는 거야. 그리고 자네들 하나하나가 진심으로 믿으면 아무도
그 믿음을 찢을 수 없어."
언제나 선함의 힘을 믿는다는 내게, 누군가는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거라며 담배 한 까치를 물고 대답한다. 테드가 비록 팀의 승리에 기여를 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선함은 분명
리치먼드를 바꿔놨다. 전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구단을 망치려 했던 리베카가 리치먼드를 집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선수들이 자기 자신을 믿고, 테드를
믿고, 서로를 믿게 했다.
시즌 2에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테드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했다. 그
트라우마는 그의 마음속 깊숙이 남아있다. 큰 상처를 입은 그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는 걸 택했다.
울음을 참았고, 농담과 웃음으로 여린 속을 감췄다. 내가
선한 사람들을 볼 때 이토록 눈물이 나는 건, 그 선한 마음 뒤에 숨은 상처와 선하려고 노력하는 다정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테드 래소를 보며 생각했다.
일본 드라마 <사이온지
씨는 집안일을 하지 않아>의 주인공 사이온지 역시 테드 래소 못지않게 심각하게 선한 사람이다. 심지어 사이온지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다. 그의 전 직장 동료였던
카즈토 요코이는 일명 유튜버-스타가 되어, 몇 년 만에 그의
앞에 나타난다. 요코이는 자신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
사이온지 덕분이라고 말한다. 사이온지는 요코이가 매일 정성스럽게 싸 온 도시락을 보고, 인터넷에 만드는 법을 올리면 무조건 뜰 거라고 말해줬다. 뜬다는
건 여러 사람의 힘이 되어주는 거라고, 보잘것없던 자신이 누군가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그 말에 요코이는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사이온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이온지의
선함은 그렇게 요코이의 인생을 바꿨다.
우리는 선하기 위해서, 대체로
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이기에, 노력하지
않으면 우린 타인에게 쉽게 무심해진다. 그 무심함은 또 쉽게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한 선함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는
걸 넘어 누군가를 성장시키고, 운이 좋다면 구원까지도 할 수 있다. 작은 칭찬으로 카즈토 요코이의 인생을 바꾼 사이온지처럼 말이다.
당신을 구원하는 것 역시 누군가의, 혹은 나 자신의 선함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