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늦여름, 영국의 유명 밴드 오아시스(Oasis)가 재결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록밴드의 전설로 여겨지는 그들의 재결합 소식이 반갑게 들려왔다. 그 기쁨에 힘입어 오아시스의 여러 곡을 듣던 중, 한 곡이 유독 귀를 사로잡았다. 바로 이번 글의 제목으로 차용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다.
1995년 발매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에 수록된 "Wonderwall"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회자되는 명곡이다. 이 곡은 단순한 사랑 노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수많은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이자 주요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는 당시 아내였던 메그 매튜스(Meg Mathews)를 위해 이 곡을 썼다고 밝혔지만, 이후 인터뷰에서는 꼭 특정 인물을 지칭한 것은 아니며,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구원자'와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Wonderwall"은 사전적 의미가 없는 단어였지만, 이 곡 덕분에 ‘구원자’, ‘가장 소중한 존재’, ‘선망 혹은 갈망의 대상’ 등으로 해석되며 마치 하나의 관용어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곡을 들으며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구절은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였다. 이 가사를 곱씹다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구원자는 누구일지 떠올랐다. 스무 살이 넘었지만, 아직 정신적, 경제적으로 불완전한 성인인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존재는 부모님이었다. 특히, 아빠의 죽음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나에게 남아 날씨 같은 사소한 변화에도 쉽게 우울에 빠지게 만들었다. 특히 아빠가 떠난 가을이 되면 그 쓸쓸함이 배가 되어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기억 속 따뜻한 가정은 나의 구원이 되어주었다. 네 명의 가족이 함께했던 그 시간들은 나의 원더월과도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이 나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서로의 원더월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구원자였기에, 나 또한 그 사랑 안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는 무너져 내렸고,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깊은 혼란을 겪었다. 어린 시절 강인했던 엄마가 사실은 연약한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가 이제는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빠를 잃은 슬픔에 빠져 엄마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스스로가 미워졌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일상을 새롭게 채우는 나와 달리, 엄마는 여전히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홀로 빈 집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깊어만 갔다. 그 후로 나는 엄마에게 집착적으로 연락을 했고,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도 늘 본가에 마음을 두었다. 집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채 미래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이유 모를 미안함을 느끼며, 끊임없이 과거를 복기했다.
그러나, 이런 내 모습을 다시 구원해준 것은 결국 엄마였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한 통의 편지였다. 이상한 책임감에 얽매여 젊은 날의 호기를 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편지를 한 통 보내주셨다. 그 편지에는 인생은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내 인생의 구원자는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결국 각자의 길을 걸어가다 겹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만났기에 겹치는 길이 잦고 길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결국 모두가 각자 고유한 길을 잘 걸어가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큰 버팀목이었던 아빠의 죽음으로 내 인생이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깊은 우울에 빠져 내 삶을 끌어가고 있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선택이자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인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그 길이 겹치는 순간에는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로 나는 원더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게 있어 원더월은 부모님일 수도, 가족일 수도, 혹은 내 안의 신념일 수도 있다. 결국 내 인생을 비추는 빛은 외부의 구원자가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Wonderwall"의 마지막 가사처럼, **"Maybe,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는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오아시스의 이 노래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것이다. 원더월이 단순한 구원자가 아닌, 내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빛이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