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과 성장
그리고 또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무서운 것들이 어린이의 어떤 면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된다.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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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감싸고 키운 아이들은 나중에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요새 대학생이 되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자 부모님이 학교에 전화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생겨났다. '전화 포비아'라는 말이 있듯이 전화하는 게 무서울 수는 있다. 나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잘 전화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전화하는 건 논외로 치고) 그렇지만 무조건 전화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무서워 하면서도 꾹 참고 전화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어린이를 위해서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과 극복할 힘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놀이
어린이들의 놀이에 대한 부분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놀이'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한 일년 반 전쯤에 친구들과 놀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옛날에 비해서 어린이들이 같이 골목에서 모여 놀지 못하면서 골목을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프로젝트에 대해 영상을 보고 난 이후였다. 나도 골목에서 놀면서 큰 세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또래의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갖가지 장소에서 놀면서 컸다. 친구들과의 대화 이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 부모님이 얼마나 나의 '놀이'에 관심이 많았고 그를 위해 시간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유치원 때, 엄마는 다른 친구들과 이모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집 근처의 공원에서 모여서 자연놀이를 진행해주셨다. 낙엽이나 바닥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서 스케치북에 붙이고 발표도 해보고, 가을이 되면 발이 파묻힐 정도로 쌓인 낙엽 위를 걸어다니고 만져보면서 그 특유의 소리를 듣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낙엽 위를 걷던 시간은 내가 낙엽 밟는 걸 더없이 좋아하게 만들어주었고, 쌓여있는 낙엽을 밟을 때면 자연스레 그때가 떠오르며 내가 동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준다.
또 친구들과 많이 놀았었다. 학교에서 노는 것 말고도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고, 매 생일마다 많은 친구들을 모아서 아파트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런닝맨이 한창 유행했을 때, 반티로 런닝맨 티셔츠를 맞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반티를 입고 모여서 팀을 나눠 이름 뜯기 게임을 진행했던 적도 있다. 더 커서 중학생 때에도 영재원이 끝나고 친한 친구들과 이동해서 학원 가기 전에 10분씩 놀고 헤어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노는 시간을 가지면서 성장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논 시간도 많이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나와 오빠가 놀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데려가주셨고, 멀리 가더라도 우리에게 좋은 활동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아주셨다. 집에서 놀 때도 손과 발에 물감이 묻혀 손도장과 발도장을 찍으며 놀 수 있도록 물감과 거대한 종이를 마련해주시기도 하였고, 커다란 종이 위에 누워 있으면 색연필로 내 몸을 따라서 그려주시기도 하였다. 또 아이클레이나 옥수수 콘처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여러 촉감을 느끼고 놀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다. 그랬기에 집에만 있더라도 나는 항상 놀 수 있었고, 작은 하나의 소품만으로도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컸다고 생각한다.
오빠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 시절, 여름에 매미가 우는 시절이 되면 오빠와 나는 항상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아파트 안을 쏘다녔다. 오빠로부터 잠자리를 잡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딱지를 사서 왕딱지를 모아 딱지치기 시합이나 구슬치기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 운동을 할 때에도 항상 오빠가 많이 가르쳐주었다.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할 때에도 오빠가 나에게 직구와 커브를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농구공으로 놀 때에도 오빠가 드리블하는 방법과 슛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물론 가르쳐주면서 중간중간 나를 놀려먹었지만) 그리고 활과 화살을 만들었을 때에는 화이트보드에 보드마카로 과녁을 만들어서 활 쏘기 경쟁을 벌이기도 했고, 부모님이 당구대를 만들어주셨을 때(우드락과 골프공, 막대 등으로 만들어주셨다)에는 당구 규칙도 모르는 채로 우리끼리 규칙을 만들어서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는 놀이를 항상 하면서 커왔고, 작은 하나의 물건만으로도 수없이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컸다. 그래서 '놀이'가 어려운 것이라거나 무언가 큰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친구들은 '놀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어딘가를 찾아가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과 그 이후에도 성장하는 동안 나는 위험함이 있음에도 여러 놀이를 해볼 수 있었고 그게 분명히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크는 동안의 나의 '놀았던 경험'이 나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생각의 변화
어렸을 적엔 여러 이유로 싫어하는 음식이나 재료들이 많았다. 이건 식감이 이상해서 저건 맛이 이상해서. 나는 피망과 파프리카, 가지, 버섯을 가장 싫어했었다. 그리고 샐러드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크고 보니 달라졌다. 분명히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는데. 조금 나아지기는 했어도 싫어하는 재료가 크게 바뀌지 않았었는데.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샐러드가 맛있어졌다. 버섯도 맛있어졌다. 요즘엔 목이버섯과 새송이버섯, 팽이버섯들을 엄청 잘 먹고 있다. 가지는 모두 좋아하지는 않지만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서 그렇게 만들어 먹는다. 피망과 파프리카는 볶음밥을 먹을 때에도 아주 잘게 다지지 않으면 잘 못 먹는 편이었는데 얼마 전 식전 음식으로 파프리칸지 피망인지 모를 빨간색의 1/4 크기를 먹었다. 그날 전까지는 볶음밥에 잘게 다져서 넣던거 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그렇게 맛이 없지 않다는 것이 새로웠다. 몇 번 식감이 느껴져서 밥을 맛없게 먹었던 이후로는 항상 잘게 다져서 먹었었기에 크게 먹은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새로운 음식을 접하면 한 입을 시도해보고 판별하라고 했었다. 그러고 나서도 맛이 없으면 굳이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랬기 때문에 과거에 좋지 않은 맛과 기억으로 남아있던 음식들도 거리낌 없이 다시 도전해보고 새로운 맛있음을 찾아내는 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한다.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어릴 적 먹기 싫은 음식을 무조건 먹으라고 해서 비운 이후로 그 음식을 정말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크면서 입맛이 바뀌고 싫어하던 걸 잘 먹게 되니 정말 안 먹으면 죽는 그런 음식이 아니고서야는 강제로 먹이려 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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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읽고서 정리한 두 번째 글이다. 다른 책들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 책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내가 더 넓은 시선을 가지고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모두가 '어린이'였기에, '유년기'를 겪었기에 모든 이들이 나처럼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책은 나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책이 되었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을 하고 또 다른 해석을 내놓게 되겠지. 그때를 기약하며 이 책에 대한 글은 이만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