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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아무도 아닌』 을 넘겼을 때 나오는 첫 문장이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황정은은, 필요한 말을 빼고 모두 지웠기에 더 시적인 소설가이다.

 

그는 아무것도 없이 하얗고 폐쇄적인 세계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짜 소외를 완성한 사람들. 황정은은 그러한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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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편들은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에 수록된 단편들이다.

 

 


1. 「上行」


 

황정은의 「上行」은 제목과 반대로 주인공 오제가 下行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야기의 플롯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그러나 고추를 따러가는 단조롭고 짧은 플롯 속에서 세계의 무심함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인식이 특유의 흐릿하고도 아름다운 분위기로 독자를 집중시키는 점이 훌륭하다.


오제는 도시의 무심함에 지쳐 귀농하였으나 그가 깨달은 것은 그런 무심함은 도시뿐만 아니라 세상의 것임을 깨닫는다.


그런 오제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의 환상 경험은 간절히 바란다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어렸기에 가능한 바람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잔혹함에 오제의 믿음 또한 파괴되며 그는 소외되어간다.


소외되어가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믿지 않는 세계의 따뜻함을 잠시 빌어보는 것뿐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비애를 자아낸다. 소외의 끝은 죽음이다. 고추밭 주인 남동생의 최후가 그를 암시한다.

 

 
다음에 오냐.
네.
정말로 오냐.
네.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
 
P.33
 

 

또, 황정은의 작품에서 ‘유령 화자’로 불리는 흐릿한 존재감의 화자는 그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이며, 특유의 흐릿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하기에 존재감이 옅다고 무조건 아쉬운 점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뒤따라 읽은 두 작품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화자의 비교적 뚜렷한 목소리로도 충분히 그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上行」 속 화자가 좀 더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 이후 황정은의 소설관도 변화의 양상을 보인다. 2013년에 발표된 「上行」이 환상 소설의 성격을 지닌 것과 달리, 2014년에 발표된 「양의 미래」와 「상류엔 맹금류」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이다. 소외된 자들에게 환상으로서 세계를 비판할 용기를 주었던 황정은이었다. 그러나 소외의 끝으로 상정되었던 죽음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인간성과도 연관된 문제임을 황정은이 실감했기 때문이다.

 

 

 

2. 「양의 미래」 


 

「양의 미래」는 그러한 개인의 인간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어릴 적부터 양, 아가씨 등 신분에 맞지 않는 ‘아무도 아닌’ 이름으로 불리어 오며 존재 자체가 지워져 온 존재이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었다.
비정한 목격자.
보호가 필요한 소녀를 보호해주지 않은 어른.

나는 그게 되었다.

 
「양의 미래」 P.56

 

 

화자는 진주의 실종 이후 비정한 목격자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아무도 아닌’ 존재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은 개개인으로서의 윤리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여태 세계로부터 소외되었던 화자는 그에 분노를 느끼고 결국 서점을 그만둠으로써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진주를 찾으며 이러한 행동은 애도를 내포한다.




3. 「상류엔 맹금류」


  

「상류엔 맹금류」또한 「양의 미래」와 굉장히 비슷한 성격을 띈 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아무도 아닌’ 화자가 주인공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화자는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돈독한 옛 연인 제희의 가족에 대한 질투를 느낀다. 그 가정에 결속되기를 원하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나 제희네 가족이 지고 있는 부채와 가난에 계속해 염증을 느낀다.


결국 화자는 제희네 가족과의 수목원 나들이에서 그들의 가난과 비참함을 직면시킬 망치는 결정적인 말을 던지고 그 관계로부터 도망친다.

 

 

이따금 생각해볼 때가 있다.

차라리 내가 제희네 부모님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흔쾌히 그 비탈에서 내려서서 계곡 바닥에 신나게 돗자리를 깔았다면 어땠을까. 그편이 모두에게 좋지는 않았을까. 그러는 게 옳지 않았을까. - P.87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 P.88

 

 

두 소설 개개인의 인간성과 세계의 불합리를 다루고 있으며 상당히 비슷한 구조를 가진 소설이다.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인 황정은은, 독보적인 문체와 정서로 이러한 개인들의 소외를 무심하게 그려내며 그들의 세계를 완성시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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