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의 균열에서,
그들의 시선이 틔우는 다채로운 세상을 마주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불투명한 마음과 투명한 햇빛 사이, 작가 유사사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불투명한 마음과 투명한 햇빛 사이에서 쓰고 그리는 작가 사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쓰고 그린다’고 소개해 주셨어요. 정확히는 어떤 것을 쓰고 그리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주로 마음 속,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했어요. 최근에는 마음 속의 관념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영역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상 속에서 내가 머무는 자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순간들에 집중하고 있죠. 그날의 분위기나 우연히 보인 창밖의 새, 눈앞에 놓인 사물들이 유독 오묘하게 달라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런 작은 것들에 시선을 두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처음에는 캘리그라피에서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가사나 문장을 글씨로 쓰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때도 붓펜이 아닌 얇은 펜을 사용해서 글씨를 썼어요.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다가 글씨만으로는 감정이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씨 주변에 작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저의 작업들을 확장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이 안 찬다고 해야할까요? 가사나 문장이 가진 감정선이나 느낌을 저만의 방식으로 더 잘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 작업했던 것처럼 글씨를 적거나 작게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그게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점점 그림의 크기를 키우고 그림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가사나 문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 작가님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펜화'라는 거예요. 캘리그라피에서 작업이 시작했기 때문에 해당 스타일이 확립되었던 것일까요? 컬러 그림도 시도해 보셨을 것 같은데.
맞아요,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방식이 바로 펜화로 그린다는 거예요. 물론 [젤리피쉬 모놀로그]처럼 디지털 작업도 물론 했고, 그렇게 다양한 시도와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오직 펜화 작업만 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그래도 결국 제가 하는 모든 시도가 제가 펜화을 그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펜화 작업은 제 작업의 뿌리이자 정체성과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펜화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정말 단순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마땅한 재료가 없었거든요. 종이와 펜이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였고, 저는 이미지가 장식적이고 빼곡하게 그려지는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펜화는 선이 섬세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그런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에 딱 맞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펜화 작업을 계속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컬러 그림을 시도해 보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그리는 목표는 화려하게 완성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글씨로 감정을 표현하던 방식처럼, 그 안에 담긴 감정이나 느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에 집중했죠. 그런데 색을 쓰면 신경 쓸 부분이 많아지잖아요.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아지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의 감정과 내면에 신경을 쓸 여유가 줄어들게 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색을 빼고 이미지 자체에 집중하려고 하며 다양하게 시도해본 것 같아요. 그 결과 펜으로만 그린 큰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그러한 작품 스타일을 계속 이어오게 된 것 같아요.
- 빼곡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주셨는데.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펜이라는 재료를 통해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펜화라고 하면 보통 사실적이고 꼼꼼하게 그린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제 작품에서 그리는 펜화는 그와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 것 같아요. 다른 펜화 작품들이 정교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반면, 저는 정확한 현실을 그리기보다는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인상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나무를 그린다고 해도, 다른 펜화 작가들이 실제 나무의 질감과 생동감을 표현하려 한다면, 저는 그 나무가 뭔가 멎어 있는 정적인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그리려고 해요. 마치 기억에 조금 뭉뚱그러진 채 남은 순간의 장면을 남기듯이요. 그래서 제 펜화는 더 뭉툭하고, 정교한 기술보다는 선을 겹쳐가며 쌓아가는 느낌이죠. 제가 펜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과정에서 섬세하고 오밀조밀한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작은 것들을 세밀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펜은 얇은 선을 사용해서 그런 세밀한 디테일을 담아낼 수 있는 도구거든요. 다른 매체로는 그런 섬세한 표현을 하기 어려운데, 펜은 그 점에서 정말 적합해요. 그래서 작고, 오밀조밀하며, 가득 모여 있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펜화가 끌릴 수밖에 없었고, 그 매력에 계속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불투명한 내면의 형태를 바라봅니다, [어슴푸레한 눈맞춤]
- 작가님의 대표 시리즈, [어슴푸레한 눈맞춤]은 어떤 작품이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앞서 제가 '감정을 그린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형상화하여 그린 것이 바로 [어슴푸레한 눈맞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전에 진행했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비유나 상징을 통해 형태를 부여해서 이야기하려 했어요. 마치 꿈을 바라보듯이, 혹은 동화 속 세계를 읽듯이 몽환적으로 제 마음을 표현하는데에 집중했었죠.
하지만 [어슴푸레한 눈맞춤]은 관념적인 내면, 즉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려던 작업이었어요. 저는 이러한 [어슴푸레한 눈맞춤]이 제가 그림을 그려온 이레로 시도한 가장 관념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해당 작품을 작업하며 여태 머물렀던 마음의 관념적인 영역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연작을 마친 후부터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 [어슴푸레한 눈맞춤]이라는, 시적인 제목이 무척 인상 깊어요. 해당 제목은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나요?
제목을 정하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것은 저의 형체 없는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어요. 감정이라는 것은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인지 저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제가 뚜렷한 대상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뿌옇고 흐릿한 안개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 헤매고, 보려고 하면서도 보지 못하는 저의 느낌을 제목에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어렴풋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보려고 한다는 마음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죠. 이 모든 것을 합쳐 '어슴푸레한 것과 계속 눈을 맞춘다'는 의미로 '어슴푸레한 눈맞춤'이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 [어슴푸레한 눈맞춤] 시리즈를 통해 관념적인 영역에서의 작품 활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해주셨어요. 작가님의 ‘관념적이다’의 의미도 궁금한데. 작가님께서 다 풀어냈다고 생각하는 작가님의 관념적 세계란 정확히 어떤 세계인가요?
간단히 말하면, 제 안에 고여 있는 마음을 '관념적'이라는 단어 하에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마음은 저만 알 수 있고, 그 안의 미묘한 지점들은 저만 느낄 수 있는 것이잖아요. 저는 그런 미묘한 감정들을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저의 마음을 객관적인 언어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제 마음이 있는 그대로의 표현이 아니라 비유나 상징이 덧붙여진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어요. 내면을 ‘정원’으로 비유함으로써 우울의 감정을 여러 장면과 사건으로 표현하고 이야기했던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처럼요.
그래서 저는 특히 [어슴푸레한 눈맞춤] 연작을 이어가면서는 제 마음 속에 담겨있는 것을 어떤 객관적인 이미지나 표현에 의지하지 않고, 제가 가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런 게 정말 가능할까? 의심하기도 하고, 여러 모순에 부딪히기도 하면서요. 이처럼 거의 2년 반이란 시간 동안 마음을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고, 보이지 않는 제 안의 이야기를 하고자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저의 작업을 설명할 때 “관념적”이라는 표현을 안 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을 표현한다”는 말이나 “내면 세계”를 다룬다는 의미로 말이에요.
- 그렇다면 [어슴푸레한 눈맞춤] 중 대표작을 하나 꼽아준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어슴푸레한 눈맞춤] 시리즈 중에서도 두 번째 작업인 [선잠]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사실 관념적인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에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많이 달라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선잠은 제가 처음 구상했던 그대로 거의 그대로 나왔던 작품이에요. 특히 해당 작품은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그 이미지가 가장 뚜렷하게 떠오른 작품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선잠]을 제 작업 중 대표작으로 뽑고 싶어요.
또, [선잠]에 그려진 풀들은 제가 좋아하는 형태의 풀이에요. 가느다란 풀들이 우수수 자라난 듯한 모습을 좋아해서, 그런 풀의 형태를 혼자서 ‘우슉푸슉’이라고나름의 애칭을 지어서 부르고 있어요. [어슴푸레한 눈맞춤]은 작업 하나하나 장면을 구상하는 데에 오랜시간이 걸렸는데, [선잠]은 장면이 단번에 떠올랐던 유일한 작품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선잠]을 그릴 때는 ‘아주 얕고, 아스라이 일렁이는’ 느낌을 물씬 담아내고 싶어서 바람 한 점 없이 멎어있는 물가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차분히 일렁이는 물가와 가느다란 가닥의 풀들이 한 데 멎어 있는 모습이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선잠]의 느낌을 잘 드러내 주었던 것 같아요.
- 시작과 끝이 다르다는 표현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어요.
처음 구상할 때는 머릿속에 이미지가 명확히 있는데, 그것을 스케치로 옮기고 실제로 작업을 하다 보면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오는 지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물러날 수는 없죠. 그래서 저는 작업할 때 한 번에 쭉 진행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멈추고 다시 점검하면서 진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작업을 하다 보면 그때그때 제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처음에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르게 저에게 다가오기도 하거든요. 감정이 변화하듯이 그게 그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은 아마 모든 창작자가 겪는 고민일 텐데, 작업을 하다 보면 자유도가 점점 줄어들고, 주어진 한정된 영역 안에서 계속 고군분투하게 되죠. 그래서 유독 그러한 어려움과 고민이 적었던 [선잠]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도 있어요.
- [선잠]에 그려진 식물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어요.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 특히 [어슴푸레한 눈맞춤]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식물'인 것 같아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인데, 작가님께 '식물'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식물은 제 작품에서 계속 등장하는 중요한 요소에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식물은 주어진 자리에 초연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자기 생애를 살아가잖아요. 저는 그 모습에서 존경심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는 늘 불안해하는 사람이거든요. 삶에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기복이 커거 쉽게 동요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원을 걷다 보면 식물들이 봄에 태어나 여름에 싱그럽고, 가을에 조금 시들다가 겨울에는 다 죽어 버리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끝이 날 것 같아도 결국 다시 봄에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식물들은 그저 주어진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자기 생애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굉장히 큰 위안을 얻었어요.
뿐만 아니라 저는 저의 작품을 설명할 때, 한 사람이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고는 해요. 그리고 그런 저의 작품의 존재가 식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하여 큰 관심을 두고 있어요.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특히 선호하는 식물이 있다던지, 작품 속에 어떤 식물을 담아낼지에 대한 기준도 있을까요?
기준을 두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감정에 집중하여 식물을 담아낸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내가 지금 그리고자 하는 감정에는 어떤 식물이 함께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식물의 형태를 고민하게 되거든요.
저는 실재하는 식물보다는 제가 상상한 모습의 꽃이나 풀을 가져와 그릴 때가 많아요. 물론 식물 세계는 다채롭고 방대해서 나중에 똑같이 생긴 식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경우가 잦아요. 그래서 결국엔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나는 아직 모르는 식물을 그린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조금 신기하게도 나중에 다시 그림을 보다 보면 저 식물이 내 안에, 그러니까 제 내면에 정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어요. 내가 내 안에 이런 걸 진작에 심어두었었나, 예전부터 자라고 있었던 건가 하며 오랜 시간 키워온 마음의 작은 일부를 바라보는 느낌도 들고요. 이런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그렇게 상상하고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제가 담아내고자 하는 감정과 가장 비슷한 이미지의 식물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 그 외에도 작가님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슴푸레한 눈맞춤] 시리즈 중 한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유독 어려웠거나, 유독 인상 깊은 추억이 있는 작품이 있을지도 궁금해요.
<적요>가 떠오르네요. “적적하고 고요함”의 분위기를 제 방식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오래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업 중심에 있는 꽃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다르게 실재하는 식물, ‘물매화’를 그린 것이에요. 까만 밤 속에서 작은 물매화가 새하얗게 눈뜨고 머무르는 순간이 꼭 적적하고 고요한 장면처럼 느껴졌었거든요. 사실 네모로 표현된 까만 밤 속에 있는 하얀 물매화가 그려진 이미지는 제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기에도 그렸던 적이 있는데, 이 작업을 고민하던 중에 그 물매화가 생각나서 그리게 되었어요.
정적인 느낌을 극대화하고 싶어서, 평소 그리는 장식물을 좀 더 얇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이 장식물들이 생애의 묘한 떨림을 비밀스럽게 감추고 머무는 존재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서 여러모로 애썼던 기억이 나요. 거기에 제 내면의 상징, 긴 밤을 숨어있는 그믐달도 같이 그렸고요.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적요]는 여태까지 제가 제 마음 속을 표현할 때 애정하듯 쓰는 장면과 느낌을 그러 모아 그렸던 것 같아요.
종이에 검은 펜으로 틔우는 긴밀한 감정, 전시 [틔움]
- 작가님께 이번 전시명, [틔움]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제 작업 과정도 어떤 틔움의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종이 위로 바깥으로 내보내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틔움의 과정이 되는 것 같거든요. 이미지로 비유하자면, 제 내면은 마치 땅처럼 존재하고, 그 위로 새싹이 튀어오르듯이 제 생각이나 감정들이 그림이나 글로 변해 세상에 나를 내보내는 방식이죠. 그 과정 하나하나가 나를 조금씩 더 드러내는 과정이자,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게 마치 틔움과 성장의 과정 같아요.
- 이번 전시에서 어떤 작품을 전개할 예정인가요?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2 년 동안 해왔던 고민들을 정리해서 보여주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나 스스로의 관념적 세계에 몰두해서 작업을 전개해왔잖아요. 아무래도 내면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까 나 자신을 탐색하는 느낌이 강했죠. 그런데 이제 그 탐색 과정을 한 차례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그 2 년간 전개해온 챕터를 마무리할 수 있는 정리의 장이 되는 동시에 제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발자국을 선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현재는 총 20 점 정도를 고려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함께 하는 작가님들이 많다보니 전체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작품 수가 변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는 모두 작품 크기가 14.8x21cm 로 고정이 되어 있고, 여기에서 작게 변동이 있을 것 같아요.
- [어슴푸레한 눈맞춤] 외에 새로운 발자국(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여 주신다고 하셨어요. 신작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
이번 전시에서 소개할 신작은 [하루]와 [수풀]이라는 두 작품이에요. 두 작품은 각각 다른 감정과 느낌을 담고 있는데, 그 차이를 통해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하루]는 실제로 제가 겪은 순간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에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햇볕이 창가로 비추고, 무화과 타르트가 놓여 있었고, 밖에는 까마귀가 앉아 있었던 그런 일상의 작은 것들이 모여서 만든, 완연하고 평화로운 순간이었어요. 이 작품은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렸어요. 앞으로도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일기처럼 계속 그려나갈 생각이에요.
[수풀]은 좀 더 내면적인 작업으로, 제 마음이 복잡하고 무성하게 얽힌 상태에서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전에도 풀을 빽빽하게 그리는 작업을 했지만, 이번에는 반투명한 트레싱지를 도입해서 더 입체적이고 미묘한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펜으로 그린 작업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서,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또 다른 분위기가 나오게 되었어요. 이 작품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두 작품은 제가 앞으로 해보고자 하는 작업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작은 시도로 시작한 변화들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서, 전시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그 변화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 앞서 소개해주신 [어슴푸레한 눈맞춤]은 관념적 내면의 표현이었잖아요. 그리고 그러한 관념적 내면에서 더 나아가 새롭게 그리게 된 작품이 이번 [하루]와 [수풀]이고요. 새롭게 그리기 시작한 작품들인 만큼 관람객들이 해당 작품을 '어떤 작품'으로 받아들이며 감상하면 좋을지에 대한 작가님만의 소망도 있을까요?
사실 [하루]와 [수풀]도 [어슴푸레한 눈맞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표현 방식에 있어 조금 더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것들,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무엇보다도 관람객들이 해당 두 작품들을 [어슴푸레한 눈맞춤]과 크게 다르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일상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여전히 깊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제가 진행하는 작업들의 핵심적인 본질이니까요. [하루]와 [수풀]도 [어슴푸레한 눈맞춤]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감상하면서 느끼실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이 작품들에선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감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어슴푸레한 눈맞춤]과 [하루], [수풀] 외에도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 시리즈 중 일부가 함께 전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에는 어떤 작품이 담겨 있나요?
사실 이 작품을 만들기 전, 제가 제 작업을 아우를 수 있는 타이틀로 [몽상가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여기서 '몽상가'는 제 가장 관념적인 자아를 의미해요. 마음속에서 떠도는 자아, 그 자아를 표현한 거죠.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는 [몽상가의 정원]의 첫 번째 작품이자, 연재적인 성격을 가졌고, 책으로도 엮으며 작업을 마무리 했던 시리즈에요.
이 작업을 시작할 당시, 제 마음을 하나의 정원으로 상상했어요. 그 정원에는 우울한 감정이 대부분 녹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 우울이 몽환적인 풍경으로 치환되면서, 우울이 머무는 정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상상했고 그걸 10편의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게 됐어요. 그게 바로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에요.
저는 해당 시리즈를 '꿈 기록집'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해요. 감정이라는 것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그 이야기의 형태가 꿈처럼 펼쳐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 작업을 하면서, 제 우울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과정을 겪었죠.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 "이런 이미지가 내 마음 속에 있구나"라는 것들이 하나하나 담기게 된 거에요. 그래서 이 작업은 제 마음 속 곳곳에 숨어 있던 우울의 형태들을 발견하고 채집해서 이를 간직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해당 시리즈 중에서는 어떤 작품이 걸릴지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시 공간에 따라 달라질 것 같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는 [그믐달의 왈츠]예요.
(...)
서쪽으로 두 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적 없는 그믐달을 읽는 방법이다.
정원 북쪽 한가운데에 솟은 절벽은 달을 읽는 척도다. 서쪽으로 한 뼘, 두 뼘, 세 뼘. 서쪽 끝에 닿으면 다 시 절벽을 지나 동쪽으로 한 뼘, 두 뼘, 세 뼘. 새로이 떠오르거나 저문 적 없이 가장 높은 하늘에서 호선을 그리며 맴돌기만 하는 그믐달이다. 덕분에 새벽은 가장 깊은 적막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 있었다.
기묘하게도 그믐달은 정원 한가운데에 고여있는 호수 위에서만 제 궤도를 그렸다. 호수가 그믐달을 제 품 에 가둔 건지, 그믐달이 호수에게 시선을 빼앗긴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호수를 무대 삼은 그믐달 의 왈츠. 총총히 눈을 깜빡이는 빛무리가 그 몸짓의 선율이 되어 주었고,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숨죽여 그 공연을 목도하였다. 영원한 관객과 영원한 무용수. 이 세계를 존재케 한 시간을 짓는 우아한 몸짓. 끝없이 시연되는 새벽. 우울의 잠긴 정원은 아름다웠다.
(...)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는 이야기와 삽화가 있는 동화처럼 전개되는 느낌이 있어요. 내 마음은 우울이 가장 밝게 빛나는 정원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여기는 내내 새벽이었으면 좋겠다, 새벽은 숨어있기 가장 좋으니까. 거기에 내게서 절대 사라지거나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우울처럼, 새벽이 영영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밤 내내 숨어 있는 그믐달을 그리게 되었어요. 그믐달은 밤부터 새벽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아침이 다가올 즈음 겨우 모습을 보이다가 저무는 달이니까요.
이 작품과 함께하는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는데, 그믐달이 여기서는 하늘 한 가운데에 떠서 동쪽으로 세 마디, 서쪽으로 세 마디의 거리를 왔다갔다 하기만 해서 지평선 너머로 지지 않거든요. 그렇게 영원히 지속되는 새벽의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제 작품관인 ‘몽상가의 정원’의 한 설정이 주제였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믐달의 왈츠]는 이러한 작품 전체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또 도서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 표지도 해당 작품이 담겨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대표작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작업은 전시할 때 꼭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관람하며, 관람객들이 집중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벗어나, 마치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진 낯선 세계에 우연히 들어선 듯한 느낌으로 바라보고 감상해주셨으면 해요. 감상자분들이 이 우연한 조우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상상하며 그런 가벼운 연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마음 가는 대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에서는 제목을 통해 제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감정의 원인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관람객들이 그 제목을 보고 자기 자신과 맞닿은 감정을 떠올리며, 그 감정이 어떤 형태일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왜 이런 형태로 이 감정을 그렸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보며, 제 의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감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낯선 사물들이나 식물들이 존재하는 낯선 장소, 공터 같은 공간에 마치 자신이 들어간 것처럼 상상하며 작품을 감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우연히 마주친 작은 세상에 잠시 들어서는 느낌으로요. 그 안에서 감상자분들이 저마다의 느낌과 생각 혹은 이미지를 자유롭게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 해당 전시를 통해 작가님께서 기대되는 점이 있다면.
완성된 작품을 제가 혼자 작업한 작품만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전시해서 관람객들과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는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일정하게 정리해서 볼 수 있는 기회예요. 이번 전시에서 저도 제 작품의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제 관점을 확장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또한 전시를 한다는 것은 결국 대중들에게 제 작품을 보여준다는 거고, 대중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이 작품의 설득력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즉, 현재의 저는 제 작품의 설득력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마치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준비를 하는 기분이기도 해요. 이번 전시가 끝난 후에는 작가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현재 시 창작을 배우고 있어서 문학적인 영향도 스스로 받게 될 거예요. 저는 글과 그림을 어쩔 수 없이 병행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글로서 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하려 하고, 그림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글로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 둘이 어느 방식으로든, 얼마나의 비율을 차지하든 함께해야만 작업이 좀 더 완성도 있어지고 또렷해져서 스스로도 확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분명 글과 그림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시 쓰기를 배우기 시작하기도 해서 이 이후에는 제 작업이 어떻게 변화할 지 저도 궁금하고, 아직 잘 모르겠어요. 글이나 쓰는 문장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때 ‘묘사가 섬세하다’, ‘투명한 이미지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최근 시 합평을 받을 때 제 문장이 일상적인 영역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합평을 받았어요. 그 합평이 상당히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는데, 저는 원래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처럼 지극히 사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에서 몽환적인 이미지를 제 문장으로 표현해왔었거든요. 그래서 현실이나 일상보다는 꿈 속, 환상 속의 무언가에 대해 쓰고 그리는 게 제게 맞다고만 믿었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나 현실 속에서 제 문장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라는 가능성 자체가 제게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줬던 것 같아요. 기존의 관념적인 영역에서, 내 마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 바깥,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글을 변화시키다 보니 그림에도 분명히 영향이 갈 것 같아서, 이번 전시 이후의 다음 챕터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지고 있어요.
이번 전시가 앞으로 제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의 작품은 굉장히 사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작가님의 모든 작품이 타인에게는 작가님의 작품이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시나요?
실제로 저도 제 작업이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될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아요. 작업을 하면서 회의감을 느꼈던 적도 있죠. 예를 들어, 제가 우울함을 느꼈고 그것을 이미지로 표현해쓸 때, 그 이미지가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우울함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었어요. 제 작업은 지극히 주관적인 언어잖아요. 정말 '관념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감정이 그대로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저는 제 작업이 마치 빈 공터처럼 보이기를 원해요. 감상자는 그 공간에 들어가서 눈에 보이는 것을 담거나,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생각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었으면 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감상자들이 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저의 의도를 읽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서 제가 저의 작업이 식물과도 같다고 했잖아요. 저는 저의 작품은 정말 직접적으로 말을 걸지 않고 제 작품들을 보면 그냥 자기 방식대로 가만히 서 있는 그림들인 것 같아요. 식물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씀 드리기에 앞서, 사실 저도 궁금한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제가 내면의 마음을 꺼내 놓은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객관적으로 소통되지 않는 언어로 표현된 것인데, 이것이 과연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말이에요. 만약 다가간다면, 그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지, 어떤 방식으로 제 마음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지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보다는 '어떻게 다가갈까'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 작가님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작가님의 꿈 혹은 목표도 있을까요?
저는 항상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제 작업의 동기는 사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이 감정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돼요. 그래서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 존재를 계속 확인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제 삶의 주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그냥 꾸준히 자신만의 표현을 계속해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외부의 인정이나 반응에 대해 욕심이 날 때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제가 하고 싶은 걸 계속 간직하고, 그걸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시에 와주실 분들께, 작가님의 작품을 봐주실 분들께,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읽어주실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제 작품을 처음 보시면 아마 조금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어쩌면 정말 낯선 자세로 멀뚱멀뚱 서 있는 그림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낯선 모습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바라보시면, 그 안에서 뭔가 다른 느낌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안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지나쳐가는 느낌이나, 그냥 그 공간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느낌도 좋고요. 보이는 대로,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읽고 바라봐 주시면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시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