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거인국 이야기만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걸리버 여행기> 4편에 나오는 후이늠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가? 후이늠 나라는 말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다. 후이늠 세상에서 인간을 상징하는 야후는 더럽고 어리석은 존재이고, 말을 상징하는 후이늠은 깨끗하고 지적인 존재이다. 걸리버는 후이늠 나라에 가서 그들의 말을 배우며, 후이늠의 생활 방식을 배운다. 걸리버는 곧 후이늠을 섬기게 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자신이 야후라는 사실에 절망하며 후이늠을 찬양한다.
<걸리버 여행기>는 ‘17,18세기 영문학’이라는 수업에서 함께 읽었던 책이다. 수업에서 교수님은 ‘야후로 살 것이냐 후이늠으로 살 것이냐’고 물으셨다. 내가 야후냐고 묻는다면, 난 당연히 야후이다. 야후처럼 욕심도 많고, 많이 먹고,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야후가 될 것이냐, 후이늠이 될 것이냐 묻는다면 나는 야후가 되겠다고 말할 것이다.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당연히 후이늠의 세계를 선택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나는 야후의 세계에 미련이 남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로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욕심 많은 야후임이 증명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후이늠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것도 내가 후이늠의 세계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야후로써 야후의 세계가 왜 매력적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야후의 세계는 걸리버가 말한 것처럼 모두 욕심이 많고, 돈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섭 없이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소극적 자유가 작동하는 곳이다. 반면, 후이늠의 세계는 매우 이성적인 세계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행해지는 사회이기에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이다. 모두가 옳은 것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적극적 자유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후이늠의 상상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후이늠은 타고 다니는 배를 상상할 수 없고, 병이 걸린다는 개념도 모른다. 모두가 2명의 아이를 낳기 때문에 외동이라는 개념도, 비혼이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내가 야후의 세계에 남고 싶었던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다. 후이늠이 병이나 돈, 탐욕, 거짓말의 개념을 모른다는 건 솔직히 부럽기도 했지만, 배의 개념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할 때는 조금 놀랐다. 저 먼 곳엔 무엇이 있을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지루해 보였다. 우리는 상상력 없이 살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더 넓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우리에게 수많은 선택지를 만들어준다. 그 선택지는 우리를 타락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타락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후의 세계는 욕심 많고 타락한 세계이지만 그게 그 자체로 지옥을 상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학에는 happy fall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John Milton의 <실낙원>에서 이브가 결국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지만, 그건 이후에 오실 예수님을 초청했다는 점에서 그저 단순한 타락이 아니다. 또한, Herbert의
나는 그 새로운 세계가 꿈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꿈꾸는 것은 오로지 야후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후이늠의 세계는 기다리지 않고 사랑과 완벽한 관계를 얻을 수 있는 세계이다. 하지만, 야후의 세계에서 사랑을 받거나 베풀려면 아주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하고, 그렇게 기다리더라도 결국 얻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림과 분투는 꿈꾸게하고, 그 기다림 덕분에 우리는 특정 가치를 더욱 사랑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수많은 기단동안 노력했기에, 그 가치가 소중한 것을 알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또한,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싸운 움직임도 마찬가지이다. 치열하게 싸우고, 꿈꾸는 시간이 있기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후의 세계에 가장 큰 꿈이 존재하고, 가장 큰 소망이 존재한다. 이 소중한 마음이 우리가 사랑하는 가치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고, 이 사랑은 나를 야후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것 같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기다리고 꿈꾸는 시간이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