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기록하는 이가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퓰리처 사진상의 본질적인 목적을 따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 나의 꿈은 언론인이었다. 대입을 위해 치열히 모집 요강을 살피던 시절에도 신문방송학과, 언론학과를 지망하곤 했었고, 해당 과가 없는 학교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겠다며 버티던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나는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언론’하면 그 뒤에 자연스럽게 ‘탄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만큼 언론은 세상을 바꿀 만한, 또한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 자리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현장을 담아내야 하고 그렇게 우리 사회는 진실을 마주해야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80년 간 목숨을 내걸고 세계 곳곳 현장을 누빈 사진가들의 수상작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연대기별로 배치가 되어 국제 정세의 큰 흐름을 쉽게 훑어볼 수 있었으며 각 수상작 옆에는 사진 속 상황과 취재 배경에 대한 명료한 캡션이 붙어 있어 배경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입장에서도 깊은 몰입을 가지고 관람이 가능했다.
아쉽게도 전시장 내 촬영은 제한되고 있다. 그 덕에 인파가 많은 주말에 방문해 줄을 따라 관람했음에도 꽤 빠른 회전율이 가능했으니 장단점이 있는 듯 싶다. 작품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는 이라면 굿즈샵 내 엽서나 부록 구매를 추천한다. 사전 이미지를 전달 받은 몇 가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다.
성조기를 높이 건 해병들
사진: Alamy Stock Photo
여기 가히 완벽히 ‘전장의 승리’를 담아낸 작품이 있다. 로렌탈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여졌던 일본 이오지마, 여섯 명의 미 해병대가 수리차반산을 장악 후 성조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완벽한 찰나에 담아냈다.
성조기가 해병들에 의해 이제 막 자리를 잡으며 비스듬하게 뉘인 채 펄럭이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큼 극적인 순간을 프레임 안에 붙잡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해병들의 노고, 그리고 그것을 잊게 만드는 환희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극적인 장면만큼 이 한 장의 사진이 지닌 여파는 대단했다. 이미지는 우표와 엽서, 티셔츠, 모자 등으로 재가공 되었고 이들의 모습을 본 뜬 동상까지 등장하며 많은 이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전쟁의 불씨가 잦아든 이후에도 국가적 영웅으로 오랜 세월 추앙받았다.
역사적 현장의 한 순간을 생생하게 관람자의 현재로 불러올 수 있는 사진의 힘을 로렌탈의 ‘성조기를 높이 건 해병들’을 통해 여실히 느껴볼 수 있었다. 세기를 넘어 전해지는 사진은 활자로만 접해왔던 세계의 얼룩진 역사로 불리는 전장의 모습, 그 안에서 환희를 느끼는 누군가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나 싶다.
그의 등번호 NO 3
사진: Alamy Stock Photo
지난 해 프로야구의 열기가 참 뜨거웠다. 나 또한 그 열기에 탑승해 야구라는 스포츠에 입문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기에, 유독 이 작품이 올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야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모두가 하나 되어 경기를 즐기고 몰입하는 응원 문화가 두드러지는 종목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야구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어느 한 곳에 포커스를 두어서는 알아채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필드 위를 치열하게 뛰는 선수, 덕 아웃에서 이들을 격려하는 동료들, 그들을 보며 열광하는 관객 이 모두가 한 프레임에 담긴 순간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을 최대치를 보여줄 수 있다.
아마 해당 사진을 기록한 넷 페인 기자는 본능적으로 그러한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할 수 밖에 없었던 듯 싶다. 곧 영구 결번이 될 등번호 3번을 달고 환호 하는 팬들의 앞에 선 야구의 전설 베이브 루스, 그의 모습을 찍기 바쁜 기자들과 경의를 표하는 후배 선수들의 모습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진: Alamy Stock Photo
관람 중 유독 지나치기 힘든 작품들이 몇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을 담았거나, 혹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지만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아마추어 사진작가 올슈웽거의 해당 사진은 후자에 속했다.
사진 속 아이는 이제 막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 어여쁜 생명이었다.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아파트 더미에서 가까스로 아이를 찾아냈지만, 작은 생명의 불씨는 얼마 안 가 소방관의 품에서 흩어져 버렸다. 필사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은 그의 두 팔에 실린 간절함이 작품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올슈웽거는 이 작품을 발표하며 아이는 헛되이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진을 본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그들은 그 어떤 수많은 캠페인 문구를 접했을 때보다 더 절실히 화재 경보기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두 해를 지나지 못한 생명의 불씨의 힘은 약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