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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허리를 깊숙하게 숙인 경찰관과 그런 경찰관을 신뢰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어린 소년. 몸이 잔뜩 말라 주저앉은 소녀와 뒤에서 그 소녀를 바라보는 독수리. 퓰리처상 하면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다. 그 이미지들은 강한 감정을 남긴다. 신념, 사랑, 분노, 슬픔, 안타까움, 그리고 죄책감. 사진작가가 탄생시킨 이 이미지들은 그 창조주의 의도에 따라 선별되어 관객들에게 보인다. 퓰리처상 사진전에서는 때로는 순간에 몰입하여, 때로는 카메라를 잡은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어 몇십 년간의 수상작들을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다.


 

[공식포스터] 퓰리처상 사진전.jpg

 

 

 

역사, 어쩌면 전쟁의 흐름을 따라가다


 

전시는 수상작들이 수상한 연도순별로 소개되어 있다.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을 보면 그해의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1940년대로 시작하는 전시는 그 해의 굵직한 사건을 소개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수상작은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를 폭행하는 시위 반대 세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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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 라인, 밀턴 브룩스, Alamy Stock Photo

 

 

1950년대는 냉전, 1960~1970년대는 인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1980~1990년대는 아프리카에 얽힌 사회적 문제를, 2000년대에는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다룬다. 그리고 2010년도에는 시리아 내전, 2020년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사진이 수상을 했다. 모아보면 희극보다는 비극이 많은 역사다. 이제는 정말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역사의 흐름은 도돌이표처럼 계속 개전과 종전을 반복하는 것일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은 1980년 수상한 자한지르 라즈미의 '이란의 총격대(Firing squad in Iran)'이었다. 이란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눈을 가린 쿠르드 반군의 사형을 집행하는 사진이었다. 전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질병이나 기아, 난민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직접 해하는 과정이 담겼기 때문에 충격이었다. 그렇게 여럿이 줄지어서 총을 쏘고 또 맞는다니. 살인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나 하는 것이라는 아늑하고 좁은 세계가 깨어지는 순간이다.

 

 

 

찰칵. 다른 시선으로 찍다


 

꼭 비극적인 순간만 사진으로 남겨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작가들의 시선에는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다. 베이브 루스의 은퇴식을 담은 아래의 사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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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 등번호 3번을 은퇴하다, 나다니엘 페인, Alamy Stock Photo

 

 

수상자, 나다니엘 페인은 다른 모든 작가가 그의 앞모습을 찍을 때 베이브 루스의 뒷모습을 찍었다. 흐린 날이었음에도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고 조리개를 열어 배경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은퇴하는 베이브 루스의 표정이 아닌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했던 관중과 그에 둘러싸인 선수의 등번호였으니.

 

 

모든 사진가가 앞에 모여 있었지만, 그를 뒤에서 바라보고 싶었죠. 베이브 루스의 마지막 인사여서 등번호 3번이 드러날 것을 알았거든요.

 

- 나다니엘 페인

 

 

좋은 사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남들이 보지 않는 시선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것. 1953년 수상작, '아들라이 신발 밑창을 드러내다(Adlai bares his hole)'에서 윌리엄 갤러거가 대선 후보의 하고많은 것 중 낡은 신발 밑창에 주목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은 글보다 훨씬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작가가 포착한 순간을 공유한다. 그래서 더욱 작가가 어디를 보는 가가 중요해진다.

 

 

 

인식되지 않은 일을 기록하는 일


 

퓰리처상 수상작들에 항상 따라오는 의문이 있다. 특히 고통받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이 그렇다. 왜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었느냐는 질타다. 렌즈를 통해 담긴 사진은 찍힌 순간 과거가 된다. 따라서 그 사진이 과거가 될 때까지 왜 현재의 소녀를 구하지 않고 멀리서 뷰파인더를 통해 보기만 했느냐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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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amy Stock Photo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따라서 인식하지도 못하는 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다. 소녀, 사실은 소년의 뒤로 날아온 독수리를 찍어 '수단의 굶주린 소녀(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로 1994년 수상을 한 케빈 카터 역시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기록한 참상에 대한 무기력함 속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렌즈 속 기록된 수단의 참혹한 현실은 이를 세계에 알리는 데 분명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 그렇다면 현재를 구하는 것과 현재를 구하기 위해 과거를 기록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우선일까?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기자가 되려 하지만, 때로는 카메라 렌즈에 그저 눈물이 가득 찹니다.

 

- 스탠 그로스펠드

 

 

사진 기자들도 사람이기에 감정을 배제하고 렌즈만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 큰 의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비극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것은 필히 죄책감을 동반할 터. 다만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들의 축복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셔터를 눌러 시선을 기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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