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정지된 순간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어요, 시간이 정지된 그 순간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죠"] - 캐롤 구지

 

순간은 영원할 것이란 착각 때문일까. 사진을 찍는 것도, 누군가 찍은 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하게 된 것은. 폐가 터질 것처럼 웃어댔던 순간도,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이게 행복했던 순간도. 그 순간 느꼈던 햇살의 온도와 공기의 냄새까지 사진을 볼 때마다 고스란히 다시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이 순간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20250103210607_eodknnga.jpg

 


여기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쯤 가보기를 추천하고픈 전시가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퓰리처상 수상전’이다.


퓰리처상은 언론, 문학, 음악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수여되는 권위있는 상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보도 부문은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최고의 명예로 인정받고 있다.


근현대사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 팬데믹 등 최근 수상작들이 포함된다. 또한, 굶주린 수단 소녀를 지켜보는 독수리, 네이팜탄 폭격을 피해 달려가는 소녀, 베트콩 즉결 처형, 뉴욕 9.11 테러 등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담은 놀라운 이미지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분쟁의 본질은 같다

영토, 권력, 이념을 위해 싸우는 양 진영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 안냐 나드링하우스

 

 

1950년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인종차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1961년 일본 아사누마가 극우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순간과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던 오스왈드가 암살되었던 순간이 고스란히 찍힌 사진을 통해, 혼란스럽고 갈등 많았던 그 시절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쟁의 잔혹함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 베트남전의 사진들이 인상깊었는데, 영웅적으로 그려지던 이전 이미지들과 다른 ‘현실적인 전쟁’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이 그러하다. 민간인 구역에 잘못 떨어진 네이팜탄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뛰어오는 소녀의 사진이 특히나 기억에 남았다. 이 사진 속 소녀의 이름은 판 타이 킴 푸크로 훗날 성장하고 결혼해 자녀까지 두었다고 한다.


동시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함을 담아낸 사진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워싱턴디시 퍼레이드에서 윌리엄 비얼 기자는, 한 경찰이 어린 소년에게 퍼레이드가 혼잡하니 보도로 돌아서라고 허리를 숙여 친절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동시에 소년이 배시시 짓는 웃음은 그 순간을 무엇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만든다.


등번호 3번을 달고 타자석에 선, 1948년 6월 13일 미국 야구계의 전설 베이브루스가 은퇴하는 순간, 잭슨빌 정전 당시 감전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은 수리 기사에게 인공호흡을 한 순간, 전쟁이 끝난 후 무사히 돌아온 아버지를 향해 환한 미소로 달려가는 가족들의 순간까지. 잔혹하고 힘든 시기에도 삶은, 인생은 참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20250215190752_twqnhsru.png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기자가 되려 하지만

때로는 카메라 렌즈에 그저 눈물이 가득 찹니다


- 스탠 그로스펠드

 

 

요하네스버그 출신의 남아프리카 프리랜서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총격 속에서도 카메라를 조준할 정도로 목숨을 걸고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사진기자였다. 그는 1993년 당시, 일하고 있던 매체에 휴가를 내고 항공료를 빌려 기아가 극심했던 수단으로 향한다. 아요드란 곳에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기아로 인한 희생자들을 찍기 시작했고, 굶어서 죽음에 이르게 된 수 많은 사람들에게 구조의 손길이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넓은 숲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던 중, 급식소로 향하던 한 소녀가 굶주림으로 무릎을 꿇은 채 힘없이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1km 떨어진 UN 식량캠프에 가기 위해 기어가는 아이 뒤엔 까마귀 같이 생긴 ‘수리’라는 새가 그런 그녀를 노리는 듯 내려와 앉아있었다. 케빈은 셔터를 누르고 독수리를 쫓아냈고, 소녀는 다시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 급식소로 걸어갔다.


퓰리처상 수상작중에 가장 유명한 사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사진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아프리카의 ‘수단’이라는 나라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아이를 바로 구하지 않고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몇십 분을 허비한 사진작가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케빈 카터는 1994년 퓰리처상 시상식을 2주 앞두고 ‘나는 우울하다. 분노와 아픔, 굶주림과 다친 아이들, 죽음의 생생한 장면이 따라다닌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안타깝게도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어떤 상이든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에 다시 한 번 빛을 비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캐롤 구지

 

 

퓰리처상 수상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떤 한 순간, 한 장의 사진에 모든 것을 걸 정도로 고뇌하고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정도로 진심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위험하고 열악한 지역 최전선에서 사진을 찍다가 목숨을 잃은 퓰리처상 수상자들도 꽤 있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총 대신 셔터를 누르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그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그들이 기록하고자 하는 순간이란,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을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취미 삼아 사진을 찍어온 내겐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무게다. 어떤 면에선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들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대체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사진‘이 담아낼 수 있는 순간의 가치에 대해 되새기게 되었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누군가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더 나아가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전시장을 나와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던, 마지막 전시의 글귀와 함께 리뷰를 마무리한다.

 

 

그들은 떠났지만 끝은 아니다

그들이 온몸으로 세상에 쏘아올린 마지막 한 장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무기는 단지 파괴할 뿐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찍는 사진가의 카메라는

사랑, 희망, 열정을 담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 에디 애덤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