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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졌던 지난 여름날,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전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을 감상했다. 전시를 본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전시의 시작과 끝, 그리고 벽에 새겨져 있던 북미 원주민들의 기도와 노래 구절들은 묵묵한 감동의 감각으로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부산으로 돌아온 나는 해당 전시가 교류기획으로 2월 16일까지 부산박물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에 지난 2월 7일, 이례적으로 눈이 풀풀 내리던 부산의 겨울날, 나는 다시금 전시를 위해 부산박물관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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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부산박물관 기획전시실, 2024.10.29. – 2025. 02. 16.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덴버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이다. 미국 덴버박물관(Denver Art Museum)은 북미 원주민 예술가들의 작품을 최초로 수집한 박물관 중 하나로, 기관의 소장자료 18,000여 점 중 150여 점을 엄선해 해당 전시를 선보였다.

 

추운 겨울날 평일 아침이었음에도 전시장은 몇몇 감상자들과 견학을 나온 어린아이들로 다소 붐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느꼈지만, 해당 전시는 실제로 질감을 만져볼 수 있는 미니 모형과 친절한 설명, 그리고 흥미로운 전시 작품들로 어린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전시의 구성과 연출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것과 거의 흡사했다. 다만 전시공간이 비교적 좁게 느껴졌던 것과, 전시장 곳곳에 가수 양희은의 목소리로 북미 원주민들의 격언을 들을 수 있었던 오디오, 영상물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국중박과 달리 무료로 거의 흡사한 좋은 퀄리티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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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면 태양이 당신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를, 밤이 되면 달이 당신을 부드럽게 회복시켜 주기를, 비가 당신의 근심걱정을 모두 씻어 주기를, 산들바람이 당신의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당신이 이 세상을 사뿐사뿐 걸어갈 수 있기를,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기를.” – 아파치족의 기도

 

전시는 <1부: 하늘과 땅에 감사한 사람들>, <2부: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사람들>로 나뉘었다. 1부에서는 북미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살았던 원주민 40여 부족의 의, 식, 주 문화와 그들의 삶에 녹아 있었던 예술, 삶의 태도 등을 조명했다. 2부에서는 유럽에서 이주한 이주민들과 갈등을 겪으며 흔들렸던 원주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들과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그들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동시대의 원주민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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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가 네 말을 듣고 있고 하늘과 숲이 우거진 산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너는 온전한 어른이 될 것이다.” – 루이세뇨족이 아이들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전시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였던 작품 두 점이었다. 전시는 갓난아기들을 담는 요람으로 시작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숨이 멎게 신성하고 고결한 분위기로 연출된 요람이 있다. 얼굴을 제외한 몸을 단단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 물건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눈, 코, 입으로 대자연을 느끼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원주민들의 지혜를 오롯이 녹아 든 것이다.

 

아이들이 그들의 가장 큰 선생님인 자연과 순환, 공존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여 뭉클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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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땅의 끝까지 가보았네. 나는 물의 끝까지 가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도 가보았네, 나는 산맥 끝까지도 가보았네. 하지만 내 친구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네.” – 나바호족의 노래

 

북미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모든 것을 주는 감사한 존재였으며, 삶은 잠시 모든 것을 벗삼아 살다 가는 것에 불과했다. 이들의 이러한 순환적 세계관과 자연환경의 영향은 주거 공간과 의복 문화, 공예품에서 잘 드러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문화를 꽃피워낸 40여 원주민 부족의 개성적인 디자인을 비교하며 보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모카신’은 부족마다 만드는 방법과 모양이 달라, 이를 보면 부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북미 원주민들은 모카신을 신는 기간, 북미 원주민 문화유산의 달 등을 통해 이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널리 알리고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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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 수 있는가?” – 시애틀 족장의 말

 

2부는 북미 대륙으로 이주해온 유럽인들과 원주민들 간의 갈등, 그리고 오늘날 원주민들이 정체성과 전통을 위해 어떠한 예술적 재창조의 과정, 정치적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담아낸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북미 원주민 부족 출신의 작가들과 유럽 출신의 이주민들이 화폭에 담아내는 역사적 사건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주민들은 유구히 북미 원주민들을 ‘전쟁을 좋아하는 야만인들’, 또는 ‘조용하고 말이 없는 무지하고 평화로운 민족’으로 묘사하며 그들의 북미 땅을 그저 ‘개척지’, ‘신대륙’으로 명명했다.

 

이에 현대의 원주민 예술가들은 단지 그들의 전통을 재현하고 보존하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인 의도를 담아 그들의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달라졌는지를 냉정하게 보기를 권하고,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편견 없이 그 자체로 보길 이야기한다. 그들은 사라진 인종이 아니며, 여전히 북미 대륙에서 함께 살아가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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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땅일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라. 홀로 서있는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그대가 믿는 것을 지키라. 먼 길을 가야 할지라도 그대가 해야 하는 것을 하라.” – 푸에블로족의 기도

 

마치 한 권의 알찬 책 같았던 전시는 요람으로 시작해, 힘차게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어 올리는 작품, <인디언의 힘>으로 마무리된다. 원주민의 자결권과 행동주의의 상징이 된 해당 작품은 원주민의 뛰어난 문화예술,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현재의 원주민들의 삶을 위한 노력, 희망의 미래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 길을 가야 할지라도 그대가 해야 하는 것을 하라.’ 이 작품에 단 하나의 코멘트를 달라면, 푸에블로족의 기도 한 구절이 가장 어울린다.

 

원주민들의 살아 숨쉬는 역사와 삶에 관한 인상깊었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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