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은 매우 운치 있다. 건물의 외관을 뒤덮은 무성한 식물들은 흐린 하늘의 푸른 기를 잔뜩 머금은 채, 연휴를 맞아 미술관을 방문한 시민들을 반겼다. 철새 도래지와 습지대가 있는 지역적 특성을 잘 살린 조경으로 평가받는 부산현대미술관만의 개성 있는 수직정원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은 2018년 개관한 이래로 꾸준히 종료전시의 폐플라스틱 판재, 팜플렛 등을 재활용하며 지속가능한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동시대 미술의 주요 화두인 환경과 신체, 뉴미디어를 비롯한 기술에 대한 확장적 사유가 돋보이는 전시들을 다수 기획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30일 개최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시 역시 동시대 예술계에서의 기술과 환경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물음의 연장선이었다.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부산현대미술관, 2024.11.30. – 2025. 03. 16.
백남준아트센터와 부산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국내 미술관 최대 규모이자 경남 지역 최초로 열린 거장 백남준의 회고전이다. 설날 연휴의 막바지를 맞아 전시장은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보기위해 몰린 꽤 많은 시민들로 북적이었다.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진부할 정도로 매우 다양하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쳐왔다.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그의 예술세계를 보다 다면적으로 조명한다. ‘첫 번째 백남준’ 에서는 196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그의 작업을 총망라하여 보여준다. ‘두 번째 백남준’은 필름 속의 백남준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연출하고 출연한 아트필름과 관련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건물 1층의 ‘세 번째 백남준’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6년 사망 전까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손과 얼굴>, 백남준.
전시장으로 들어선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보는 이에게 묘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백남준의 <손과 얼굴> 퍼포먼스 영상이다. 중년, 노년기의 백남준이 익숙한 이들이나, <다다익선>과 같은 유명 작품만으로 그를 알았던 관객들에게 청년의 백남준은 자신을 하나의 매체로서 내보인다.
호기심을 품고 들어선 강렬한 붉은 방에서 우리는 아주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행위예술가 백남준과 조우한다. 그가 ‘플럭서스 Fluxus’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들과 실제 퍼포먼스에 활용되었던 소품들, 아카이브 자료들이다.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만프레드 레베.
피아노를 연주하다 울면서 뛰어다니고, 피아노를 부수던 백남준이 객석으로 달려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낸다. 백남준과 존 케이지는 1960년대 결성된 국제 아방가르드 예술가 집단, 플럭서스로 함께 활동하며 다양한 작업들을 시도했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과 문화에 반대하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유머러스하고 실험적인 ‘안티예술(반-예술)’을 추구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줄에 매달고 쾰른의 길거리를 걷거나(<걸음을 위한 선>, 1961), 잉크를 찍은 머리로 바닥의 종이 위에 선을 긋는(<머리를 위한 선>, 1961) 등의 퍼포먼스들을 선보였다.
<머리를 위한 선>, 백남준.
<머리를 위한 선>을 바라보면 ‘붓은 너무 감정적이다’고 이야기하며 발가벗은 신체에 물감을 묻히고 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이브 클라인의 <인체 측정>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색이라는 매체에 열중하며 항상 실험적인 작업을 해 나갔던 이브 클라인과 행위예술, 기술매체 분야에서 전위적인 작업을 시도했던 백남준이 닮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과 지향점은 1차 세계대전 직후 기존 인간이성에 대한 냉소에서 시작된 반-예술 운동 운동 ‘다다이즘 Dadaism’과 흡사하면서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플럭서스, 그 중에서도 백남준의 작업은 보다 매체적 실험, 기술적 시도를 중점에 두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플럭서스 시절 유희성, 놀이성이 가미된 작업방식은 그가 새로운 예술매체로서 텔레비전에 주목하며 점차 더욱 독창적인 노선을 걸어갈 때에도 계속되었다.
활발한 플럭서스 활동 시기 사진과 오브제들을 지나 전시는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와 1965년 미국에서 열린 첫 개인전 <백남준: 사이버네틱스 예술과 음악>을 회고한다. 이 당시의 그의 작업은 행위음악, 안티음악이라는 표현으로 정의되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청각적, 시각적으로 낯설고도 즐거운 감각을 깨웠다고 평가받는다.
<자석TV>, 피터 무어
낯선 기술매체에 대한 거부감 없이, 긍정을 넘어 텔레비전 비디오, 채널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입지를 가질 것을 확언한 그는 본격적으로 이 매체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전시장에서 우리는 그의 TV 작업들을 마주하며 일렁이고 요동치고 번쩍번쩍 빛을 내는 화면을 바라보며 생경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백남준은 이렇게 항상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는 한편, 자신의 예술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그 근원을 탐구했다. 그는 이를 스스로 “아방가르드의 고고학”이라고 불렀다. (이수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하면서 (아방가르드) 이러한 전위성의 토대가 되어준 과거의 것들에 대한 발굴 작업(고고학)을 하는 것이다. 과연 그의 복합적인 예술세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 TV부처 >,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 TV부처 >는 특히 그가 전위적인 작업 방식으로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면, 철학에 강하게 접근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각각 다른 달의 모양을 화면에 담고 있는 13개의 채널이 벽을 두르고 있는 가운데, 시간은 공간 속에 재구성된다. TV로 자신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부처의 모습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 지기도 한다. 한편 이렇게 고요하면서 경건한 느낌을 주는 작품은 기술매체의 예술이 자동화된 인간 삶의 치유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이버네틱스 예술’의 방증이기도 하다.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백남준.
자연의 일부로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23대의 모니터에서 사운드와 함께 다양한 장면들이 송출되고 있는 작품이다. 기술과 자연이 충돌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백남준의 철학이 돋보인다. 음악과 설치, 비디오 등 범-예술적 결합을 넘어 전세계 예술가들의 경계를 허문 협업, 그리고 기술과 자연의 공존까지 이루어 냈던 융합적 아티스트의 이름에 가장 걸맞는 작업이었다.
<108 번뇌>, 백남준.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한 작품 <108 번뇌>는 백남준 예술세계의 정수가 담긴 작업이다.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처음 소개된 작품으로, 108개의 모니터를 통해 한국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동시대의 문화적 사건과 인물들을 담아낸 것이다. 현란한 화면의 움직임과 음악은 작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그저 실험적이고 유희적이고 혁신적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손꼽히는 백남준을 회고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그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오롯이 담아낸 충실한 전시였다. 백남준은 오늘날 동시대 예술계의 우리를 향해 이렇게 질문한다: 예술은 무엇인가? 범람하는 기술과 매체의 시대에 예술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우리 모두는 그의 위트 섞인 질문으로 가득한 전시장을 나오며 각자의 답을 어렴풋이 찾아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