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기념공연은 매끄럽고 정돈된 시각적 미를 체험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오랜 기간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며 한국을 대표한 창작 뮤지컬인 만큼 노련한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 장면마다 미장센이 뛰어나 한 장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뮤지컬은 노래와 대사를 무대 위에서 함께 하는 공연 장르인 만큼 어느 한 요소라도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배우들의 컨디션이 안 좋은 경우 무대가 부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생동감과 현장감이 크게 느껴지는 만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성황후 30주년 기념공연은 달랐다.
이번 공연은 모든 연출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배우들의 연기와 동선, 노래하거나 대사를 뱉을 때의 숨소리까지 튀거나 불편함을 주는 부분이 없었고,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장면에서 고도로 계획되고 계산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수학적으로 계산된 패턴이나 수열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바라볼 때와 같은 안정감과 묘한 만족감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호화로운 라인업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는 장소의 영향도 있다고 느꼈다. 주연인 명성황후 역을 맡은 김소현, 신영숙, 차지연 배우부터 고종 역의 강필석, 손준호, 김주택 배우 등 노련하고 경력 많은 배우들이 이끄는 편안함이 있었다. 또 세종문화회관은 국내 공연장 중에서도 손꼽히는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좌석의 형태와 단차 및 층고, 음향시설까지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연 경험을 선사한다.
박동우 무대감독이 강조했던 영상의 영향도 컸다. 공연 장면마다 높은 퀄리티의 영상이 함께 사용됐고, 영상들은 장면의 몰입도를 높이고 작품의 연출 의도를 선명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벽이나 스크린에 띄워진 영상을 바라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서사의 영향도 크다. 명성황후라는 한국 고유의 인물과 비극적인 역사 소재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뮤지컬로써는 차별 있게 다가간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한 견해가 분분해 역사 미화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해석의 한 갈래로써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지점도 있었다. 오랜 기간의 공연을 통해 꾸준히 수정되며 발전해온 스토리와 연출이 가지는 힘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초반에 언급했듯 뮤지컬 특유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둥글고 정제된 느낌이 취향에 맞지 않는 분들도 있겠다. 특히 연출이 무대 장치보다 영상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었고 대사와 연기보다는 음악과 노래에 치중되는 면이 있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의 현장성보다는 잘 그려진 이미지들의 슬라이드쇼처럼 정돈되고 계획된 미장센이 강조되는 작품이었다. 깔끔하고 아름답지만 연출의 느낌이 다소 반복되거나 꾸준히 흥미를 이끌어가는 힘이 떨어진다고 느껴질 여지도 있었다. 일부 칼군무 장면이나 액션 장면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련한 대형 뮤지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점들이 더 크게 남는 공연이다. 생동감보다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깔끔한 공연을 선호한다면 기대할만한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생각했을 때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기에도 적합하다.
명성황후는 2025년 1월 21일부터 오는 3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된다.